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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Dec 10. 2023

자꾸 뭘 사대는 남편의 취미 생활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그는 한국에 온 지 1년이 채 안 된 상태였다. 쉬는 날마다 한국을 배우고 도시를 탐험하느라 바쁘게 보냈던 그는, 딱히 취미라고 할 만한 걸 갖고 있지 않았다.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면서부터 혼자 코딩을 공부하고 헬스를 하면서 취미 생활을 좀 키워갔어도 그것이 그를 잡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으로 오니, 날마다 바뀌는 그의 취미 생활에 안 그래도 작은 집에 물건이 그득그득 쌓이고 있다. 


첫 번째 취미 생활은 중고 물건 사들이기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프라인 중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서 거기에 몇 푼 더 붙여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일이다. 때문에 심심하면 동네 중고 마트를 돌고, 토요일 아침마다 사람들이 랜덤으로 집 앞에서 여는 야드 세일 (Yard sale)을 찾아가고 있다. 쇼핑하는 재미도 있고 물건이 팔리면 적게나마 용돈 벌이하는 게 쏠쏠하다며 제일 오래 하고 있는 취미 생활이다. 문제는 이런 건 물건이 팔려야 좋은 거지, 안 팔리면 그냥 집에 뒹구는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좋게 말해 중고. 앤틱 물건이지, 수집가도 아니며 물건의 가치도 잘 모르는 내 눈에는 그냥 남들이 버린 물건을 돈 주고 사 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매주 이렇게 사들이는 물건들이 쌓이고 쌓여, 집에 있는 간이식 나무 창고 하나는 아예 그의 중고 물건들로 가득 차 버렸다. 때로는 물건이 팔려도 뭐가 한가득인 창고 안에서, 주문이 들어온 물건을 찾지 못해 물건을 못 판 적도 여러 번 있다. 게다가 온라인 사이트에 내는 수수료에, 포장물품 요금, 세금까지 하면 사실 이득이 그리 큰 건 아니라서 정말 취미 생활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상태다. 쓰레기 좀 그만 사라고 하고 싶지만, 즐거워하는 그의 얼굴을 보면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다음 취미 생활도 첫 번째와 비슷한데, 정부에서 하는 자동차 경매에 참여하는 것이다. 주로 오래된 경찰차가 경매로 많이 나온다. 굴러는 가지만 너무 낡아서, 공공기관에서 버리려고 하는 차들은 공식 정부 경매 사이트에 올라오는데, 남편은 종종 그 경매에서 낙찰받은 차들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 본인이 직접 탈 때도 있고, 너무 낡은 것은 도색을 새로 하거나, 부품 몇 개를 새로 바꾼 후 다른 사람에게 되팔 때도 있다. 간혹 덜덜 거리던 차를 멀쩡히 움직이도록 고치면 놀랍기도 하지만, 역시 전문 지식 없이 본인이 대충 페인트 사다가 칠하고 유튜브 보고 부품 바꾸어 뀌고 하는 거라, 놀랄만한 수익을 얻고 되팔 정도는 아니다. 


그러다 뭘 사고파는 거에 지쳤는지 이번에는 바닷가에 사는 이점을 이용해 금속 탐지기를 구매했다. 탐지기로 미국의 해변을 휘젓고 다니는 부부의 유튜브를 보더니 거기에 꽂혀서, 이번 여름에는 주말만 되면 해수욕하러 가자고 나를 꼬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수영은커녕 뜨거운 모래사장을 다니며 모래 밑에 파묻힌 캔뚜껑, 병뚜껑, 못, 나사 등 온갖 쓰레기들을 찾아내는 게 일이었다. 올여름은 해변가에서 청소 봉사를 하다 그렇게 끝났다. 


날이 쌀쌀해져 해변가에 오는 사람이 없자, 이번에 그는 갑자기 사냥에 눈을 돌렸다. 미국 물가가 너무 올라 고깃값이 비싸니 직접 고기를 잡아 공짜 고기를 먹겠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사냥을 해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다. 그런 사람이 산에 가서 산짐승을 잡아 온다는 것도 웃기는 말이지만, 막상 잡는다 해도 그 동물을 어떻게 집으로 옮겨오고 손질한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되는 발언이었다. 이럴 때만 행동력이 빠른 그는 사냥용 장총과 활을 사고, 잡아올 고기들을 보관해야 한다며 큰 냉동고까지 사들였다. 다른 취미 생활은 호기심에 나도 같이 다니긴 했지만, 도통 사냥에는 나서고 싶지 않아 남편 혼자 산에 보냈다. 호기롭게 멧돼지를 잡아 오겠다고 몇 번 숲 속에 들어간 그는, 매번 빈 손으로 돌아왔다. 당연한 결과였다. 오히려 산짐승에게 안 잡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으니까. 결국 냉동고에는 사냥 고기 대신 냉동 피자가 들어가 있고, 토끼를 잡아야 할 거대  활은 장식용이 되었다. 


그 밖에도 전자 기타, 보드 게임, 블랙잭 등 그가 손대는 것들은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물론 그의 관심이 바뀜에 따라 집에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들은 더 늘어나고 있고 말이다. 불만은 있지만 이에 대해 내가 크게 뭐라 하지 않는 이유는, 술이나 도박 같은 유해성 취미도 아닌 데다 힘들게 일하는 데 이 정도 스트레스 풀 구석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다. 한편으로는, 갈 곳도 할 것도 많지 않은 시골 생활에서 오는 심심함 때문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달마다 바뀌는 그의 취미 생활에 둘만 사는 집인데도 대가족 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를 갖추어 가는 걸 보면, 그가 우리 집을 소규모 고물상으로 만들기 전에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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