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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Dec 22. 2023

도로 한복판에서 엔진이 멈춰버렸다

토요일 아침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고 싶었지만 아침잠이 없는 남편이 부스럭 거리는 통에 나도 같이 일어나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으니 배가 고파왔다. 주말에는 아침밥을 밖에서 많이 사 먹는 미국인들을 따라 우리도 근처 조식 식당으로 갔다. 미국식 아침이라고 해봤자, 구운 베이컨에 빵, 계란이 올라간 메뉴지만, 내가 살림을 시작한 이후로 남이 해준 건 그냥 맨밥도 맛있게 느껴진다.

 

밥을 먹고 장을 보기 위해 마트로 바로 갈까 하다가, 세수도 안 한 채 눈곱만 떼고 나온 내 얼굴이 갑자기 민망해져, 집으로 돌아가 얼굴에 물도 묻히고 옷도 갈아입을 겸 마트로 향하던 차를 돌렸다. 마지막 신호를 받고 액셀을 밟았는데 이상하게 속도가 나지 않았다. 속도가 나기는커녕 밟을수록 오히려 속도가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갓길로 빠진 순간 차가 그대로 속도가 줄어 멈춰버렸다. 한 번 꺼진 시동은 아무리 차 키를 돌려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급히 갓길에 세운 덕에 빵빵거리는 뒤차의 부담을 안지 않아도 되었지만, 도로 한복판에 멈춰 버린 차는 오늘 내 하루도 멈췄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대로 차를 두고 갈 수는 없어 남편과 힘을 합쳐 뒤에서 차를 밀었다. 천만다행으로, 마음을 바꿔 마트가 아닌 집으로 향하고 있던 길이었기에 집까지 그리 오래 남지는 않은 거리였다. 주말 아침이라 도로가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집 앞까지 차를 밀고 왔더니, 쌀쌀한 날씨에도 겨드랑이가 흥건할 만큼 땀이 났다. 먹었던 아침밥은 이미 다 소진해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겉옷도 안 벗고 소파에 덜렁 드러누었다. 어떻게든 고장 난 차를 집까지 가지고 왔다는 안도감은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차를 잠시 살펴본 남편은 엔진 자체가 완전히 망가진 것 같다며, 엔진을 새로 교체하는 게 아닌 이상 차가 다시 움직이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한 것이다. 


10년이 훨씬 넘은 중고차에 그동안 장거리도 많이 달렸으니 차에 무리가 간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차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엔진이 아무 예고도 없이 이렇게 멈춘다는 건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게다가 차 없이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이 미국 시골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는 차가 멈춰버렸다는 건 집에 갇혔다는 뜻이다. 이곳은 택시도 없거니와, 우버 같은 공유 택시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한 번 매칭되는 데 적어도 15분~2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 곳이다. 밖에 못 나가는 거야 그렇다 쳐도 하필이면 먹을 게 똑 떨어졌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하니, 당장 오늘 먹을 것 구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낙담한 채로 집에 누워있으니 심심해진 남편이 주말인데 하고 싶은 거 없냐, 가고 싶은 데 없냐는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가고 싶은 데가 있어도 그걸 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데 그게 무슨 질문이란 말인가. 누구보다 이 상황을 잘 알만한 미국인이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게, 멈춰버린 차보다 더 어이가 없었다. 


결국 먹을 것을 구하러 걸었다. 그나마 갈 수 있는 가게가 옷이나 세제 등을 파는 잡화점인데, 간단한 냉동식품과 빵, 과자 등은 구비하고 있었다. 식료품 전문점까지 가고 싶었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하루 종일 걸리는데다, 애초에 인도도 없는 거리를 걷는다는 건 목숨을 내놓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엄두가 안 났다. 이 동네에서 보통 걸어 다니면 노숙자로 보는 사람이 많아 괜스레 지나는 차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냉동식품 몇 개와 빵을 사 와 그날 점심과 저녁으로 때웠다. 


엔진이 멈춘 차의 행보도 결정되었다. 엔진을 새로 사다 끼기에는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나, 정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처분하기로 했다. 다음 날, 지역 커뮤니티에 올리니 통역사를 동반한 어떤 외국인이 견인차를 끌고 와 가져갔다. 나의 첫 차와의 이별을 감상적으로 즐길 새도 없이 다시 집 밖으로 나가는 문제에 봉착했다. 식료품은 다행히 배달 서비스를 찾아 조달받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계속 집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틀을 버티다가, 렌터카를 빌려 제일 가까운 대형 중고차 매장으로 갔고, 거기서 바로 차를 계약했다. 적지 않은 돈을 이렇게 쉽게 써 버리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집에 발이 묶인 상황이 내게는 더 큰 일이었기에, 한국에 있던 돈을 끌어와 계약금을 지불했다. 또, 계약한 차가 한국 브랜드의 차라는 것이, 타국에 살며 스멀스멀 올라온 향수병과 애국심이 막연한 신뢰를 심어주기도 했고 말이다. 


차가 없어보니 확실히 알겠다. 미국 살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집도 먹을 것도 아닌, 굴러가는 차라는 것을. 꼭 발이 밧줄로 꽁꽁 묶여야 자물쇠로 문이 잠겨야 갇힌 게 아니라, 이 드넓은 땅에 차가 없는 것이 갇힌 것이나 마찬가지인 나라다. 이번 차는 제발 도로에서 사망하는 일 없이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어디 값싼 술이라도 사서 타이어에 뿌리며 고사라도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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