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골에 살면서 뜻밖의 물건을 집에 들이거나, 내 인생에 연이 있을 거라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것들 하면서 지내고 있다. 확실히 두 번째 해외 생활이라고 해도, 같은 아시아 국가에 있는 것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 사는 것은 꽤 많은 차이가 있다. 거기에 동양인 없는 시골이라는 점이 그 차이를 더 부각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있는 곳은 아무리 추워도 영하로는 절대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 남쪽이라 겨울은 큰 걱정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하로만 떨어지지 않을 뿐이지, 추울 때는 1도 2도까지는 내려가는 터라, 가뜩이나 햇빛 안 드는 집에서 오들오들 떠느라 뼈 마디가 시렸다. 물론 추우면 히터를 틀면 된다. 그런데 히터가 따뜻하기는 해도 더운 바람을 직접적으로 쐬는 거라 집 전체가 건조해지는 통에, 피부는 물론이고 아침이면 뻑뻑해진 눈을 뜨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물론 소름 돋게 높은 난방비 또한 내 몸과 마음을 더 시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나무를 때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거실 한 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벽난로가 있다. 요즘에는 벽난로가 있어도 그걸 막고 인테리어용으로 쓰는 집들도 많다고 한다. 나도 설마 저걸 실제로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겨울은 춥고 난방비는 치솟으니, 이것이 우리 집에서 저렴하게 난방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캠핑 한 번 가본 적 없는 사람으로, 불 또한 직접 때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저 나무를 가져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 알아서 타는 게 아니냐는 지론으로, 집 주변의 숲에 들어가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줍고, 바삭하게 건조되어 여기저기 휘날리고 있는 낙엽과 지푸라기들을 모아 왔다. 번개에 맞아 넘어진 건지, 누군가 나무를 베다 그냥 떠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당한 크기의 나무토막들도 발견해 집으로 가져왔다. 주워 온 것들을 한꺼번에 넣고 불을 붙였는데, 이게 웬걸… 이놈의 불이 나무에 옮겨 붙지를 않았다. 마른 낙엽과 지푸라기는 순식간에 타올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불꽃은 나무토막에 그을음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피어오르는 연기가 나갈 수 있도록 굴뚝문을 열었더니, 이번에는 도마뱀 해골이 두두둑 떨어졌다. 아마도 지난해 겨울, 추위를 피해 굴뚝으로 들어간 도마뱀들이, 나올 구멍을 못 찾아 굶어 죽고 뼈만 남은 것이리라. 재는 또 왜 이렇게 날리는지 불꽃대신 잿가루만 까맣게 타올랐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오기가 생긴 나는, 어떻게든 집에 불꽃을 피워보겠다는 일념으로 마트에 가서 돈을 썼다. 벽난로를 청소하는 도구를 사고, 나무토막 꾸러미를 사 왔다. 마지막으로 도끼를 샀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연탄으로 난방을 해 도끼질은 안 하셨는데, 내가 미국까지 와서 불 때려고 도끼질을 하고 있는 게 참 아이러니 하다. 벽난로에 흩어진 도마뱀 뼈들을 치운 후, 사온 나무토막을 도끼를 찍어 반으로 갈랐다. 내 사이즈에 맞게 작은 도끼를 샀는데도 휘두르는 게 참 쉽지 않다. 날을 몇 번이나 나무에 내리꽂아야 비로소 반으로 갈라진다. 어렵게 자른 토막 아래에 나뭇잎들을 쌓아두고 비장의 무기를 가져왔다. 바로 베이컨을 먹을 때마다 모아둔 돼지기름이다. 하수구 막힐까 봐 돼지기름을 따로 통에 모아뒀었는데, 생각지도 못 하게 불 때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유튜브도 참고해 가며 나무토막을 엇갈려 두고 돼지기름까지 쓱쓱 발라 불을 붙이니, 이제야 옛날 미국 영화에서 본 것 비슷하게 불이 좀 타오른다. 성공 기념으로 사진 찍으려 카메라를 켰더니, 셀카로 설정되어 있는 핸드폰이 까맣게 변해버린 내 얼굴을 비춰준다. 바람을 불어넣느라 난로 가까이에 얼굴을 붙이고 있던 탓에 내 얼굴이 잿더미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고도 불은 10분을 넘어가자 다시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숯이 될 때까지 나무를 완전히 불태우는 건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불을 피워놓고 느긋하게 쉴 수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주시하며 나무랑 땔깜을 쑤셔 넣느라 불 피우는 게 종일 해야 하는 내 업무가 되어버렸다. 다행인 건, 꼴에 난로라고 실제로 거실이 따뜻해지기는 한다는 것이다.
낮에는 벽난로로 난방을 하고 밤에는 작은 휴대용 히터를 두고 잤더니 난방비도 아끼면서 그럭저럭 떨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벽난로를 계속 쓰기로 하고 사유지가 아닌 곳에서 나무토막을 잘라 오기도 하고, 지역 사람한테 나무를 사기도 했다. 나무를 해왔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나무토막이 잘 타게 건조하고, 그걸 벽난로에 맞게 잘게 자르는 것도 내 몫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일주일 온도를 확인하고,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있으면, 도끼로 나무 패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나무를 패고 불쏘시개로 쓸만한 것들을 주섬주섬 모아 온다. 땅에 떨어진 자연의 부산물을 쓸 때도 있고, 마을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신문지를 한 아름 들고 와 쓸 때도 있다. 여전히 불 피우는 건 쉽지 않지만, 그래도 몇 번 해봤다고 이제는 전보다 시간이 덜 걸린다. 처음 장작을 팰 때는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약간의 ‘현타’가 왔는데, 도끼질이 익숙해지니 겨울에는 이렇게 나무꾼으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