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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Dec 27. 2023

관리소 직원이 훔친 내 결혼반지

월세로 살고 있는 우리 아파트는 특정 집주인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큰 회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회사가 이 아파트 단지를 소유. 관리하고 있어서, 관리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도 전부 그 회사 소속 직원들이다. 이곳의 관리소 직원들이 하는 일은 한국과 약간 차이가 있는데, 부동산에서 하는 일과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아파트에 입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오면, 어떤 형태의 방이 남아 있는지와 가격, 관리비 등을 알려주고, 단지 내에 만들어 두고 운영하는 모델 하우스를 보여준다. 집 계약서 작성부터 이사, 월세 받기, 정원사와 청소부 관리, 단지 내 행사 공지 등을 하고 있다. 아파트 내 치안과 관련된 업무는 없기 때문인지 전부 젊은 여자 직원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사 후에는 집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 이상 관리소 직원들과 부딪힐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경찰 신고까지 고민할 정도의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관리소로 쓰고 있는 건물 안에는 입주민용으로 만들어진 아주 작은 크기의 헬스장이 있다. 워낙 크기가 작아서 기구도 많이 없지만, 가까우니 거기라도 가면 내가 몸을 좀 움직일까 하고, 한 동안은 주 4회~5회 찍을 정도로 열심히 갔다. 운동할 때 몸에 착용하는 액세서리는 집에 두고 갔어야 하는 게 맞는데, 한번은 깜빡하고 그대로 갔더니 결혼반지 때문에 운동 기구를 잡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반지를 빼서 선반에 두고 다시 기구를 잡았을 때, 사무소 직원이 한 명 들어와 운동 기구들에 소독약을 뿌리기 시작했다. 흔히 쓰는 물 같은 소독약이 아니라, 하얀 연기가 나고 매캐한 냄새가 나는 소독약이었다.  


90년대에 한국에서 쓰던 소독차처럼 독한 약 냄새를, 가뜩이나 창문도 없는 헬스장에서 다 흡입하고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헬스장 바로 옆 세 걸음 거리에 있고, 그곳에서 체감상 2분 정도 있다가 다시 헬스장으로 돌아갔다. 직원은 그 사이에 사무실로 돌아갔는지 아무도 없었지만 매캐한 냄새는 아직 남아 있었다. 연기가 빠질 때까지 기다리다 다시 운동을 할까 고민하다, 도무지 쉽게 빠질 약 냄새가 아니기에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 열쇠와 재킷을 챙기고 반지를 도로 끼기 위해 선반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잡히는 게 없었다. 눈을 씻고 그 작은 선반을 다시 쓸어봐도, 밑으로 떨어졌나 싶어 헬스장 바닥을 다 훑어보아도 보이는 건 먼지뿐이었다. 


반지를 뺀 지 오래된 것도 아니었고 그걸 둘 곳도 선반 외에는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킷 주머니를 쑤시고 오갔던 화장실을 둘러봐도 반지는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소독약을 들고 들어왔던 그 직원이 의심되었다. 내가 있을 때 헬스장에 들어온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내가 화장실에 있던 사이에 누군가 들어왔을지 모르니 섣불리 직원을 잡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관리사무소로 가 잃어버린 물건으로 들어온 것 중 반지가 있지는 않은 지 물었다. 역시나 직원들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CCTV를 보자고 요청했다. 헬스장 내에는 작은 CCTV가 달려있었고, 그들은 그것이 경고용이 아닌 진짜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 했기 때문이다. 나의 요청에 지금은 안 되고 우리가 시간 될 때 확인해 보고 연락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한 달 전 CCTV를 보여달라는 것도 아니고, 몇 분 전 화면만 돌려보자는 건데 거절이 먼저다.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 이틀을 기다렸지만 역시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가 외국인이라 무시하는 건가 싶어 현지인인 남편까지 대동하고 다시 사무소를 방문했다. 그러자 그들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녹화된 화면을 실시간으로 다 확인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건 또 뭔 소리? 화면 녹화는 되는데, 그걸 볼 때 빨리 감기, 되감기가 안 돼 일주일 치 전체를 라이브 타임으로 봐야 된다니, 미국 CCTV 기술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건가? 


기가 차는 변명에 반지를 가져간 게 이것들이라는 심증은 확신으로 바뀌었지만, 담당자인 그들이 보여주지 않는 이상 내가 강제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CCTV를 안 보여주니 경찰을 대동해 볼까도 생각했는데, 당장 다른 곳으로 이사 갈 것도 아닌 상황에서, 경찰 대동이 혹여나 남은 계약기간 동안 불이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게 이 소심한 겁쟁이의 걱정이었다. 남편은 애초에 타인들과 그 어떤 문제로도 얼굴 붉히는 상황이 오는 걸 피하는 사람인지라, 경찰을 부르려는 내 생각을 먼저 저지하고 나섰다. 그래도 그냥 반지도 아니고 결혼반지인데, 이렇게 어이없이 잃어버리는 게 너무나 분했다. 미국에는 생각보다 양심과 도덕성을 밥 말아먹은 사람이 많다고는 익히 들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대놓고 도둑 심보일 줄이야. 그래,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반지 훔칠 기미를 준 내가 제일 잘못일 것이다. 그나마 비싼 반지가 아니라는 걸 위안 삼았는데, 그래도 항상 손에 있던 게 없으니 그 허전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결국은 남편이 우울한 나를 위로하고자 다른 반지를 선물하면서 마무리되었지만, 남의 결혼반지를 가져가 놓고 뻔뻔한 궤변을 늘어놓는 이 사무소 직원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해서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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