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로든 해외에서 살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은 단연 살 곳 찾기다. 회사 일 때문에 가는 거라면 알아서 회사 측에서 집을 구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우린 전혀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 내에 장기거주 할 집을 찾는 게 크나큰 퀘스트였다.
나와 남편이 집 찾기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9일이었다. 남편이 쓸 수 있는 휴가와 호텔 체류일이 그렇게 정해졌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이었지만, 다행히도 나는 동남아에서 이런 식으로 집을 찾는 게 처음이 아니다. 나의 첫 해외 생활을 베트남에서 시작했을 때는 지금보다 짧은 일주일 안에 집을 찾아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이미 이런 경험이 한 번 있어서인지 거주지가 없는 상태로 말레이시아에 가는데도 그렇게 큰 걱정은 안 됐다. 살 곳도 없이 무작정 해외 이사를 가는 내가 이해가 안 된다며 대신 고개를 저어 주는 주변인들이었다.
그렇다고 나라고 무조건 아무것도 안 하고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베트남의 경우 적어도 한 번 방문해 본 지역이었지만, 말레이시아는 여행으로도 가본 적이 없던 곳이었기에 정해진 시간 안에 어떻게든 집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는 했다.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 4년간 살았던 친구에게 괜찮은 지역 추천을 받기도 하고, 그렇게 추천받은 지역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유튜브로 검색하며 대충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다양한 후보군이 있었는데 나는 당연히 한국인에게 살기 편한 한인 타운 쪽에 집을 구하고 싶어 했다.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이 귀한 미국 시골에 있으면서 한국 제품에 목이 마른 것도 있었고, 유튜브로 랜선 구경해 본 한인 타운은 풍경도 좋고 꽤나 편리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propertyguru'나 'iproperty'같은 말레이시아 부동산 사이트를 돌며 대략적인 시세를 파악하고 남편과 월세 마지노선을 정했다. 그리고 이사 가기 2주 전에 사이트에 나와있는 부동산 업자들에게 메시지를 돌렸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전부 사용한다는 whatsapp을 깔고 연락을 돌렸지만 어쩐 일인지 아무도 내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집 찾는다는 외국인의 연락을 무조건 좋아하든 건 아닌가 보다. 불안해진 나는 페이스북 페이지까지 뒤져서 부동산 연락처를 더 찾아냈고, 전부는 아니지만 연락을 돌린 곳 중 반 정도와 매물 방문 일정을 잡았다. 보통 방문하기 전에 어떤 형태의 집을 원하는지, 거주자의 가족 형태가 어떻게 되는지, 애완동물이 있는지 등을 물어보는 데 제일 이해가 안 됐던 질문 중 하나는 꼭 국적과 인종을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외국인 세입자니까 국적까지는 그렇다 쳐도 대체 왜 인종까지 물어보는지 알 수 없는 일지만 모든 부동산 중개업자가 한 명도 빠짐없이 인종을 물어봤다. 더 나아가서 어떤 중개소는 우리가 어떤 비자로 말레이시아에 살 건지 비자 종류까지 체크하는 경우가 있었다.
미리 약속을 잡아둔 덕에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바로 집 투어를 시작했는데, 쿠알라룸푸르 중심지가 아닌 주변 지역에 집을 얻고 싶어 하는 덕에 매번 택시로 30분 이상 이동을 했다. 다여섯 곳을 돌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지역은 역시 한국 식료품점과 식당이 몰려 있는 '몽키아라'와 호수 공원이 매력적인 '데사파크시티'였다. '데사파크'에 있는 매물은 저녁에 보러 갔었는데 낮은 층수였는데도 아파트에서 보이는 경치가 너무 좋았고, 그날따라 바람이 솔솔 들어와서 엄청나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단지에서 걸어서 5~10분 거리에 상가단지가 있고, 다른 지역과 달리 걷기 좋게 길이 깔려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산책과 러닝을 하는 모습이 이상적이었다. 그때부터 이미 이 동네에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싹튼 것 같다.
원했던 한인타운 '몽키아라'지역에 있는 집도 보러 갔는데, 동네는 마음에 들었지만 월세로 나온 집이 40층이 넘는 고층에만 있다는 것과, 건물 청소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쉽게 가지 않았다. '데사파크'에 나와 있는 집은 원하는 것보다 너무 낮은 층수에 가구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더 이상 집을 보러 다닐 힘도 없고 동네 자체는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결국 그 집으로 하기로 하고 중개업자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우리의 결정을 반가워할 거란 기대와 달리, 집을 계약하겠단 우리 연락에 하루가 지나도록 답이 없었다. 호텔 체크아웃 기간이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