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의 엄마의 클론이라 할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마의 외모를 쏙 빼다 박았다. 체형, 얼굴은 물론이고 목소리에 다리털 굵기까지 죄다 똑같으니, 어디 실험실에서 일부러 DNA를 복제해 만들지 않는 이상 이렇게까지 똑같은 외모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외모와 달리 성격과 성향은 엄마보다는 아빠와 더 비슷한 점이 많다. 아빠는 부대 구호는 '꼼꼼하고 야무지게'라고 만들어놓고는, 실제 성격은 그 반대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조심성이 없어, 손대는 족족 망가뜨리는 사람인데 내가 그걸 닮아버렸다. 그래서 엄마에게 늘 나와 아빠는 잔소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조심성이 없으니 툭하면 물건을 망가뜨리고 깨뜨리고 잃어버려서 또 사게 만들었고, 물건뿐만 아니라 넘어지고 다치기도 잘해서 집에 있는 대부분의 약은 나와 아빠의 차지가 되었다. 툭하면 둘이서 쌍으로 사고를 쳐대니 엄마는 심심할 틈이 없었는데, 지금까지 제일 크게 쳤던 사고는 바로 집에 불을 낸 것이다.
먼저 시작한 건 아빠였다. 계룡대에 있는 군인아파트에 살 때였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18평 정도 되는 작은 아파트였다. 아파트 뒤에는 옛날 경양식 집이 하나 있었는데, 애들이 좋아하는 돈가스, 생선가스를 팔고 있어 가족 단위의 손님에게 인기가 많았다. 오래간만에 가족끼리 돈가스를 먹고 집에 들어왔는데, 엄마가 나가기 전 널어놨던 빨래를 걷으러 베란다에 나갔다가 '히익!!'하고 무언가에 놀란듯한 큰 소리를 냈다. 소리를 듣고 궁금했던 나도 베란다로 나가봤고, 거기에는 새까맣게 타버린 큰 양철통이 찌그러진 채 남아있었다. 분명 불이 났던 것인데, 가족들이 다 외출해 있던 사이 어떻게 베란다에서 불이 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양철통 안에는 엄마가 김장을 위해 어디선가 받아온 굵은소금이 가득 있었지만, 양철통이 타버리자 소금이 다 쏟아져내려 베란다 바닥을 덮고 있었다. 그 쏟아진 소금을 치우던 중 밝혀진 화재의 원인이 아빠였다.
지금은 끊었지만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애연가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베란다에 서서 담배를 피우곤 했는데, 조심성이 없던 아빠는 재떨이에 담뱃불을 제대로 끄지 않은 채로 우리와 외출을 했던 것이다. 불씨가 커져 바로 옆에 있는 양철통을 태웠던 것이고, 운 좋게도 양철통이 녹아내리며 그 안에 있던 굵은소금이 한꺼번에 쏟아져내리면서 불이 자연적으로 꺼질 수 있었다.
집 안에 사람도 없었고, 이건 진짜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밖에 없는 화재 사고였다. 만일 그 양철통이 비어있는 통이었다면 우리 집을 태우는 걸 넘어 살고 있던 아파트 동 전체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오래된 군인아파트라 타기 쉬운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고, 양 옆, 위아래 전부 이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비어있는 집도 없던 아파트였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업무상 과실이 아니더라도, 나라의 소유인 군인 아파트를 태우고 인명피해까지 났다면 우리 가족의 인생이 뒤바뀌는 재앙이 일어났을 것이다. 당연히 아빠는 엄마에게 사람 다 죽일 일 있냐고 그놈의 담배를 다 분질러버릴 거라며 호되게 혼이 났고, 변명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아빠는 타버린 양철통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2년 후에 내가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 같은 군인아파트는 아니고 이번에는 관사였는데, 부모님은 부부부동반 모임이 워낙 많았던 지라, 내가 고학년이 되고 나서는 어린 동생과 둘이 집을 지키는 일이 많았다. 요리를 할 줄 아는 나이는 아니었기에 보통은 엄마가 미리 만들어 둔 국이나 카레 같은 걸 데우기만 한 후 먹었다. 그날도 뜨겁게 데운 냄비를 옮기려는데, 손장갑이나 주방 수건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귀찮기도 하고 바보 같았던 나는 식탁 위에 있던 휴지를 둘둘 말아 뜨거운 냄비 손잡이를 잡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몇 겹으로 겹친 휴지를 들고 냄비에 다가가자, 갑자기 순식간에 휴지에 불이 붙었다. 가스불도 안 끄고 냄비를 옮기려 했던 것이다. 가스레인지는 강불로 켜져 있는 상태였고, 거기에 내가 생각 없이 휴지를 갖다 대자 마술쇼에서나 볼 수 있는 불쇼처럼 휴지가 화르륵 타올랐다. 놀란 나는 휴지를 주방 벽으로 내던졌다.
관사 안은 앰보싱이 들어간 하얀색의 벽지가 발라져 있는 집이었지만, 오래되어 본래의 하얀색을 잃고 누리끼리한 색으로 변한 곳도 많았고, 습기가 차 벽에 딱 붙어 있지 못하고 앞으로 부풀어 오른 못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내가 던진 불길에 휩싸인 휴지는 그 누리끼리한 주방 벽으로 날아갔는데, 벽지 역시 종이였던지라 0.1초 만에 주방 벽으로 불길이 옮겨 붙었다. 벽 한쪽이 다 불길에 휩싸이자 너무 무서워 동생을 데리고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타기 쉬운 벽지 재질에 집안 문부터 몰딩까지 다 옛날식 목재로 만들어진 이 집은, 내가 나가면 너무나 쉽게 불길에 무너질 게 뻔했다. 두려움을 참고, 컵에 물을 담아 타오르고 있는 주방 벽에 뿌려댔다. 당황스러웠던 건, 그곳이 주방인지라 벽에 기름때가 껴서 그런지 너무나 잘 탔다는 것이다. 동시에 주방이었기에 물을 틀고 바로 옆에서 뿌려대기도 쉽다는 건 다행이었다. 결국은 내가 힘껏 뿌려대는 물폭탄에 불이 못 이기고 꺼졌지만, 주방 벽은 매캐한 연기를 품으며 악마의 형상과도 같은 자국을 남겼다.
엄마에게 크게 혼날 줄 알고 지레 겁먹었는데, 엄마는 이런 화재가 두 번째라 그런지 그저 해탈한 모양새였다. 어떻게 껐냐고 물어보고 왜 불이 났는지는 묻지도 않았다. 그냥 나라면 그럴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주방 외에 또 태운 곳이 없는지 확인한 후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내가 주방에 들어오면 불안한 눈치를 보였고, 엄마가 집을 비울 때마다 계속 전화해 집에 불이 났는지 안 났는지 확인했다. 그 전화는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까지 이어졌다. 왜 자꾸 전화해서 집에 있냐 물어보냐고 짜증을 냈을 때, 네가 아무리 컸어도 내가 없으면 집을 태워먹진 않을지 뭘 때려 부수진 않을지 걱정된다는 답이 돌아왔으니, 무의식 중에 나와 아빠가 냈던 집안 화재가 엄마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버렸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