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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Dec 20. 2022

아버지의 직업을 잘 밝히지 않았던 이유

내가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아이에게 아버지 뭐하시냐고 물어보는 일이 이름을 물어보듯 흔한 질문이었다. 어릴 때는 별 생각없이 ‘군인이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대답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군인’이라는 구체적인 직업명 대신 ‘공무원’이라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직업으로 대답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결코, 갑자기 아버지의 직업이 부끄러워졌다거나 말 못할 가정사로 숨겨야 할 이유가 생겨서가 아니다. 내가 대답을 할 때 마다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 때문이었다. 질문을 한 어른에게 아버지가 군인이라 대답하면, 꼭 계급을 물어왔다. 그리고 모든 어른들이 그랬던 건 아니지만, 아버지의 계급으로 어린 아이인 나를 재단하곤 했다. 그의 기준에 아버지의 계급이 마뜩잖으면 무시하는 말투로, 생각보다 높은 계급이다 싶으면 그 정도 계급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는 날 나를 훈계하기도 했다. 질문을 한 건 그들이고, 난 그저 대답을 한 건 뿐인데말이다.    


아버지의 직업을 듣고는 존경스러운 일 하신다면 좋게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그 분들은 이번엔 집에 오빠나 남동생이 있는지 물어왔다. 나와 여동생뿐이라고 하면, 하나같이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아버지가 군생활을 하시는데, 아들이 없어서 너무 아쉬우시겠다는 것이다. 남아선호사상이 아직도 팽배했을 시기였기에 나온 말인가 싶지만, 그보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이 되어야 할 아들이 없다는 것에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왜 아버지가 군인이면 그 아들도 군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지도 의문이었고, 나중에 동생이나 내가 여군이 될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한 채 그저 ‘너네 아버지는 자식 복이 없네’ 하는 듯한 눈빛을 내게 보내는 게 너무나 불편했다. 마치 나의 성별을 부정당하는 느낌, 아버지 밑에 내가 잘 못 태어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저 ‘옛날 사고 방식에 갇힌 사람들이 지나가듯 한 말이다’ 라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걸 한 두 번이 아니라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 면접 보는 자리에서까지 들을 정도로 오랜 시간 겪다 보면, 아무리 곧은 사람도 꼬이게 되지 않을까. 


또래의 선입견과 아는 척에도 신물이 난 적이 있다. 대학에서 남자 학우들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당연히 군복무다. 군대 갈 사람들과 군대 다녀온 남자 학우들이 학기가 바뀜에 따라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당연히 학교에서 만나 여러 근황 얘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군대 얘기도 하게 되는데, 어쩌다 선배, 친구들이 내 아버지의 직업을 알게 되면, 그들은 내 아버지를 직접 지켜 보기라도 한 듯 답을 이미 정해 놓고 질문을 던진다. 

여자 학우들은 “ 너 되게 엄하게 자랐겠네? “. “아빠가 많이 무섭겠다.” 등, 군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아버지라는 캐릭터에도 그대로 갖고 와 단정지었고, 남자 학우들은 “너네 아빠가 말똥 세 개래매?”, “내가 군대 갔다 와서 아는 데 너네 아빠 같은 보직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진짜 꿀빨아.” 등 무례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이 또한 그저 무지하고 철 없는 20대들의 흘려 들을 말로 여기면 될 일이었지만, 명절이어도 관사에 갇혀 군대 안팎의 사건사고로 머리를 쥐어 뜯는 아빠를 봐왔기에,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는 이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건 힘들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말 하나 하나를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며 정정하기엔, 나만 진심이었기에 나는 그저 조용히 그들을 멀리했다. 


시간이 지나고 아빠의 직급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 나를 통해 아빠를 봤다. 나를 통해 아빠와 연을 맺고 싶어했고, 아빠와의 연을 통해, 아빠의 직급을 이용하고 싶어했다. 아빠의 직급을 이용해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내가 현재 군에서 이 정도되는 사람을 알고 지내고 있다는 게 그들에게 필요했나보다. 이건 단순히 군인이라는 직업을 넘어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직급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 혹은 그런 사람들의 가족이라면 겪어봤을 일일 것이다. 부모님도 주변인들의 일부는 본인들이 은퇴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사람들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이해관계로 얽히지 않은 진짜 친구를 찾는 걸 힘들어했다. 이런 일들을 오랫동안 겪으면서 자연스레 아버지의 직업이라는 질문 앞에서 서서히 입을 닫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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