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뚝이의 체력장
자영업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일반 직장인들에게 승진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다. 근래에는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겠다며 직함대신 전부 이름이나 닉네임을 부르는 회사들이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모두 경력과 연차, 연봉이 똑같지는 않다. 매년 연봉 협상 때마다 느끼는 압박감과 긴장감은 여전할 것이다. 대기업일수록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좁아지는 건 당연하고, 거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결국은 나와야 한다.
군대에서는 승진이 아니라 진급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군 세계가 회사보다 진급에 대한 압박이 더 크면 컸지 결코 그보다 적지는 않다. 특히 장교의 경우, 나이, 근속연수, 계급 이 3가지 중 하나만 걸려도 전역해야 하기 때문에 근속정년이 없는 부사관보다 훨씬 큰 압박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정년 전에 진급을 했나 안 했나가 군복무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며, 또 전역할 때의 최종 계급에 따라 명예는 물론 연금의 액수까지도 큰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 전역을 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 장교는, 진급 심사를 받을 때마다 피가 말린다. 아니, 온 가족의 피가 마른다.
'진급'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모를 때부터 늘 엄마가 진급 시기가 되면 '아빠 진급이 걸린 문제야. 올해 진급이 돼야 할 텐데..' 하며 늘 걱정을 했고, 집에 난초가 꽃을 피우거나 하면 '꽃이 피었네! 아빠가 진급이 되려나?' 이러면서 온갖 좋은 징조를 다 '진급'이라는 단어에 갖다 붙였기 때문에, 군인 자식으로 살며 그 단어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나에게 진급이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않았어도, 아빠가 진급이 안 되면 군대 밖으로 나가야 하고, 그러면 우리 가족이 생각보다 훨씬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장교였던 아빠의 경우,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보통 3차까지 진급 기회가 주워졌는데, 1차에서 진급 실패하면 그다음 해 2차, 이때 떨어지면 다시 다음 해 3차 이렇게 진급 기회가 있었다. 이론적으로 3번의 진급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맞지만 실제로 그 기회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왜냐면 2차로 갔을 때는 작년에 떨어진 동기생, 새로운 진급 후보인 후배들, 3차 기회를 맞은 한 해 윗 선배와도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급을 해도 늦게 할수록 당연히 해당 계급에서의 경력이 적어져, 계속 그다음으로의 진급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1차에서 진급하는 게 가장 베스트였다.
육군은, 위로 올라갈수록 압도적으로 육사의 진급률이 높은데, 학군단 출신이었던 아빠는 육사들의 무시는 물론이고, 의례적으로 육사를 밀어주고 올려주는 관습과도 싸워야 했다. 하지만 아빠 진급에 제일 큰 장벽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체력 검정이었다. 지휘관이건 부사관이건 어떤 직급에 있던 일단 군인에게 체력은 필수이기에, 윗몸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 오래 달리기 주로 이 세 가지 종목으로 체력을 책정했다. 엄마는 아빠의 체력검정을 매우 우려했는데, 믿기 힘들게도 아빠는 몸으로 하는 모든 것에 소위 '젬병'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군인이 됐나 싶을 정도로 아빠는 잘하는 운동이 단 하나도 없었다. 아빠가 관심 있는 건 음악, 미술, 조각, 다도 같은 예술 쪽이었고, 취미로도 운동 비슷한 걸 하는 걸 못 봤다. 테니스와 골프는 좀 했지만 군인 세계에서의 사교 활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치기 시작한 거였다. 본래 잠이 많고 움직이는 걸 싫어하니, 40대의 나이에 이미 배가 출산 임박 직전의 임산부처럼 부풀어 올랐다. 동생은 그런 아빠를 '불뚝이'라고 불렀다. 배가 '불뚝'나와 멀리서 보면 배만 보이기 때문이었다.
체력검정 날짜가 잡히자 아빠는 연병장으로 나가 오래 달리기 연습을 시작했는데, 배가 나와 허리가 뒤로 젖혀진 채 뒤뚱뒤뚱거려, 지켜보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윗몸일으키기 하는 걸 봐도, 배가 너무 나와 팔꿈치가 무릎을 제대로 찍기 버거워했다. 마치 단단한 돌산 하나가 굽혀 세운 무릎과 가슴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듯 보였다. 희망이 안 보였다.
이 상태로면 불합격 등급을 받을 게 뻔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사람이 대신 체력검정을 치러줄 수도 없는 것을. 다른 것도 아니고 체력검정으로 진급에 누락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실제 아빠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불안감이 엄습했기에 나는 웃을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 불안감 때문에 밤마다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 종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게 있으면 신께 기도하라는 걸 들었기에, 매일 밤 108배를 하는 듯한 정성으로 아빠의 체력검정 합격을 기원했다. 약간의 잔소리와 마음속 기도가 어린 내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간절한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아니면 가장이라는 무게가 기적 비슷한 걸 만든 것일까. 아빠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체력검정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체력검정은 그때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닌, 매 진급 시험 때마다 있을 예정이었다. 아빠도 체력검정 연습을 하면서 이건 진짜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그때 이후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렇게 만삭의 배에서 임신 6개월의 '불뚝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