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교실에서 쥐가 나왔다. 모두 화들짝 놀라 청소하던 빗자루를 들고 쥐를 밖으로 몰아냈다. 교실에 쥐가 등장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하굣길에 친구들과 쥐를 몰아낸 무용담에 대해 떠들었다.
"아까, 그 쥐새끼 진짜 크지 않았냐? 깜짝 놀랐어."
"응, 웬일로 학교에 그런 쥐가 있지? 급식실 잔반 냄새 맡고 온 건가."
"어디서 온 건진 몰라도, 다음에 또 쥐새끼가 나타나면 내가 빗자루로 한 방에 보내버릴 거야."
"근데 넌, 왜 쥐를 자꾸 쥐새끼라고 해?"
"응? 원래 이름이 쥐새끼가 아니야?"
좀 당황스러운 대화로 보이겠지만 여기서 '쥐새끼'라는 단어를 줄곧 사용한 사람은 바로 나다. 친구들은 왜 '쥐'를 '쥐'라 하지 않고 굳이 '새끼'라는 단어까지 붙여가며 내가 '쥐새끼'라고 하는지 궁금해했는데, 나는 내가 쓰는 언어가 잘못됐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때까지 쥐를 그냥 '쥐'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은 '새끼'라는 단어가 그리 좋은 의미의 단어는 아니지 않냐며, 쥐를 싫어해서 그렇게 부르는 거냐고 물어왔다. 나는 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쥐를 싫어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하며, 혐오 그 이상을 넘어 공포의 대상으로 여길 정도다. TV에서 조차 엄마는 쥐가 나오면 고개를 돌리고 바로 채널을 바꾼다. 당연히 '쥐과'인 다른 동물들, 예를 들어 햄스터, 다람쥐까지도 다 징그러워한다. 내가 관사에서 다람쥐를 잡았을 때도 집 안이 아니라 밖에 집을 만들어둬야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엄마가 쥐를 이토록 싫어하고 공포스러워하는 이유는 결혼하고 맨 처음 살았던 신혼집 때문이다. 엄마는 아빠와 연애결혼을 했는데도, 결혼 후 발령받은 부대로 이사 갈 때 이동하는 차 안에서 울었다고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정도로 깊이 이어지는 산골짜기로 들어가서, 도대체 어디로 나를 데려가는 것이냐며, 북한까지 넘어갈 셈이냐며 겁에 질려서 말이다. 아빠를 북한 간첩으로 오해할 정도로 아빠의 발령지는 북으로 북으로 깊이 들어간 산골짜기 시골에 있었고, 그 안에 있는 군인아파트에서 첫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거기서 두 분은 나까지 낳았으니 짧은 시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엄마가 그것들을 처음 본 날은, 갓 태어난 나를 재우고 방 안에 둔 후, 거실에서 볼 일을 보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무언가 삑삑 거리는 소리 같았는데, 애는 방금 잠든 걸 확인한 데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애가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상한 느낌에 방 안에 들어가 보니 내 얼굴 옆에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었고, 저게 뭘까 한참을 보던 엄마는 이윽고 그것들이 쥐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기겁해서 소리를 지르며 신생아인 나를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했다.
엄마 인생에 그날이 쥐를 처음 본 날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쥐를 밖에서만 봤지, 내가 사는 공간에 들어와 그것도 내 아기 바로 옆에 누워 있으니, 쥐에게 삶의 터전을 공격받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날을 시작으로 쥐들은 끊임없이 집에 나타났다. 알고 보니 신혼살림을 시작한 그 군인아파트는 쥐 소굴이었던 것이다. 이사 초기에는 안 보여서 잘 몰랐는데 한 번 사람 눈 앞에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그들은 더이상 눈치보지 않고 등장했다.
쥐를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신생아를 데리고 쥐를 쫓아 죽이기까지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급한 대로 옆집 문을 두드리거나, 부대에 전화해 일하는 아빠를 불러내거나 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언제 어디에서 쥐가 나타날지 모르니 집에 있어도 마음 편하게 있을 수가 없는 데다, 엄마는 24시간 아기까지 돌봐야 했으니 몸도 마음도 숨 쉴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음 발령지를 받을 때까지 쥐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었다. 나야 내가 뭘 보고 있는지도 모를 갓난아기였으니 쥐 트라우마 같은 게 생길 새가 없었지만, 엄마는 '찍찍'거리는 소리 비슷한 것만 들어도 긴장될 정도로 아주 오랫동안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이사 후에도 천장에서 쥐떼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꿈을 꿨던 엄마에게 쥐들은 세상 제일 싫은, 물리쳐야 마땅한 적이었기에, 늘 그들을 부를 때마다 뒤에 '새끼'라는 욕설이 따라붙었다. 당연히 나에게도 쥐들은 죽일 놈이라는 가정교육이 자연스레 이루어졌고, 그렇게 나에게도 쥐는 쥐새끼가 되었다.
지금도 엄마는 쥐라면 치를 떤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쥐 때문만이라기보다 쥐가 신혼 때의 고생스러웠던 기억을 건드려서인 것도 하나의 이유라 생각한다. 핸드폰도 없고 교통편도 마땅치 않았던 시절에 결혼하자마자 가족, 친구도 없는 깡시골에 떨어져서 쥐들과 뒤섞여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은, 굳이 경험해보지 않아도 녹록지 않은 일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그 집에서 이사를 갔다고 해서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진 건 아니었지만, 나중에는 경험치라는 게 쌓이고 아이도 자란 만큼, 거기서 느껴지는 고생의 강도는 처음의 것보다 덜 했을 것이다. 엄마가 쥐새끼들이 싫다며 고개를 저을 때마다 쥐소굴에서 고군붙투했던 신접 살림의 흔적을 엿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