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 살면 적어도 그 나라 말을 배우려고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게, 내가 살고 있는 나라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몇 년을 살면서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 외국인들을 꽤나 많이 봤는데, 그들을 볼 때마다 내 나라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트남에 가면, 되든 안 되든 무조건 베트남어 공부를 시도해야겠다 생각했다. 베트남으로 이사 왔다고 소개하면서 기본적인 인사말도 제대로 못 하는 외국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학원을 다닐까 하고 다낭 시내에 있는 베트남어 학원을 찾아봤다. 하노이나 호치민 같은 대도시에는 많을지 모르겠으나, 다낭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은 별로 없기에, 학원 자체가 거의 없었고 있어도 가격이 생각 외로 비쌌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베트남인들이 주로 쓰는 SNS, 페이스북에 과외 선생님을 구한다는 공고를 올리는 것이었다. 페북 메시지를 통해, 친절하고 합리적인 수업료를 제안하는 선생님을 만나, 집에서 베트남어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SNS로 구한 선생님은 문제가 있었다. 본래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전문성이 부족했고, 자꾸 나를 하소연의 상대로 여겼다. 다른 상담 상대가 없었는지, 남자친구와의 사랑싸움이 있을 때마다, 수업은 안 하고 나를 붙잡고 눈물의 하소연을 했다. 선생님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로서는 별 관심도 없는 남의 사랑 얘기 듣고 앉아있는 것도 곤욕이었다. 돈과 시간을 그의 연애 얘기를 듣기 위해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공부 스트레스가 아니라 상담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만두었다.
다행히 그 시기쯤 새로운 베트남어 교육 기관을 알게 되었는데, 온라인으로 사는 지역과 레벨, 가능 시간대를 적어 제출하면, 나와 맞는 다른 학생들과 선생님을 매칭해 줘 소수로 그룹 수업을 받게 하는 회사였다. 따로 수업을 하는 교실이나 사무실이 있는 건 아니라서, 학생들끼리 정해 카페나 집 등 장소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의 전문성도 더 높은 데다가 가격까지 저렴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문제였다.
외국인들을 위한 베트남어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가르친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영어로 베트남어 설명이 가능한 수준 높은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외국어를 외국어로 배우니 남들보다 이해하는 데 두 배가 걸렸다. 내가 할 줄 아는 영어라고 해봐야 고작 일상회화 정도인데, 수업시간에는 ‘복수, 단수, 조사, 관용어’ 이런 어휘들을 영어로 알고 있어야 했다. 내가 영어를 배우고 있는 건지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함께 수업을 듣게 된 다른 학생들은 전부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인이여서 모두 수업시간이 편해보였다. 나혼자만 쩔쩔맸다. 결국에는 선생님이 나를 포기하고 수업에서 빼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너와 비슷한 레벨의 다른 학생들을 찾았다며, 새로운 그룹으로 나를 옮겨버린 것이다. 뭐 어떤 그룹이길래 나만 이렇게 쏙 빼서 넣어버렸다 봤더니, 두 명의 일본인이 속해 있는 그룹이었다. 머릿속에서 두 번의 과정을 거쳐야 수업을 이해할 수 있는, 비영어권 학생들을 모아둔 것이었다. 이해하는 데 속도가 남다르게 걸리니, 그런 사람들끼리 모아두면 그 남다른 공부 페이스가 맞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나를 포함해서 새 그룹의 학생들은 전부 가관이었다. 선생님이 영어로 베트남어 문법을 하나 설명하면, 셋 중 그 영어를 먼저 이해한 사람이 다른 학생들에게 다시 통역해 알려줬고, 그 마저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선생님을 놔두고 우리끼리 사전을 뒤져가며 이게 맞네, 저게 맞네 말싸움을 벌였다. 결국에 그 두 명의 일본인 학생들은 수업을 그만뒀고, 나는 또다시 새로운 선생님을 찾으러 다녀야 했다.
베트남에서 베트남어를 배우려 한 것뿐인데, 참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 유랑하는 꼴이 되었다. 한국에서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보다도 배는 힘들고 배는 시간이 걸리는 고난과 역경의 공부였다. 그럼에도 띄엄띄엄 공부해 둔 베트남어가 조금씩 쌓여, 드디어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겠다 싶어 졌을 때, 이번에는 내가 베트남어에 대한 의욕을 잃고 말았다.
열심히 연습해서 식당 가서 주문할 때 써먹으면, 내 구린 발음 때문에 베트남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내 얼굴을 보고 외국인인 걸 알아채고 영어로 답을 했다. 마트에 가도 계산대에 물건을 내려놓기만 하면 되니 직원과 말 섞을 일이 없었으며, 택시를 탈 때도 전부 앱으로 목적지까지 찍고 타니 이 또한 말할 일이 없었다. 친구가 되는 사람들도 같은 외국인이거나 영어가 가능한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낭이 관광도시라는 점도 한몫해서, 웬만한 가게나 식당 사람들은 기본적인 영어를 할 수 있었기에, 열심히 말을 연습해도 쓸 기회가 없었다. 베트남에서 베트남어를 쓸 일이 없다는 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현실이 그랬다. 1년 넘게 공부한 나의 베트남어 실력이 ‘여행 베트남어’ 레벨에 머물렀다는 건 좀 창피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몇 번의 베트남어 유랑을 거치면서 포기하지 않고 나름 노력은 했다는 것에 자기 위로를 삼으며 스스로에게 씁쓸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