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같이 붙어 다니던 친구 ‘마리에’는 함께 살던 베트남 친구의 소개로, 어학원에서 일본어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어학원으로, 처음에는 영어와 중국어 수업만 하던 곳이었지만, ‘마리에’가 들어오면서 일본어 수업이 개설되었다. 나도 그녀가 일하는 어학원 구경 좀 해보겠다며 놀러 갔다가 갑자기 학원장에게 붙잡혀 한국어 수업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일주일에 세 번 저녁 시간에만 하면 되는 아르바이트였다. 고용계약서 같은 것도 없고, 풀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놀면서 저금만 쓰는 것보다는, 얼마 안 되더라도 해보는 게 훨씬 나았고, 언어를 가르치는 일은 사실 내게 익숙한 일이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베트남에 오기 바로 전에 한국에서 하던 일이 외국어 기업 강의였다. 그리고 한국 주재 외국계 기업에서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도 해줄 수 있냐는 요청을 받아 외국어로 한국어 강의를 해본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가 베트남이라는 것. 베트남어로 한국어를 설명할 수 없는데 어떻게 나보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초급 수업을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학원장은 걱정 말라며, 일단 약속한 날짜에 나와 보면 된다는 말만 했다.
첫 수업 날 그는 착해 보이는 베트남 여자 한 분을 소개해줬다. 나의 어시스턴트, 즉 조수라고 했다. 알고 보니 한국어에 굉장히 능한 사람으로, 수업 시간에 함께 들어가 내가 한국어로 설명을 하면 그녀가 내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통역해 학생들에게 말해주는 방식이었다. 그 정도 통역이 될 정도면, 그냥 이 사람이 혼자 수업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데, 굳이 나까지 고용한 게 의문스러웠다. 아무래도 원어민이 이끌어가는 수업이라는 게 홍보성으로 더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 보조 겸 통역사 역할을 하는 ‘디엠’은, 한국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음에도 엄청나게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했다. 그 실력으로 낮에는 다낭에 있는 한국계 회사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나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열심히 사는 처자였다. 심지어 디엠은 매번 수업이 있는 날마다 우리 집까지 나를 데리러 왔는데, 오토바이 운전이 미숙한 나를 위해서였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수업은 딱히 힘들지 않았다. 성인 대상 어학원이었기에 전부 모범생 모드로 열심히 경청하는 학생들 뿐이었고, 작은 것 하나도 디엠이 전부 통역해 줬기 때문에 말이 안 통해 답답한 일도 없었다. 수업료는 그날그날 학원장한테 직접 현금으로 받아 식료품 살 때 보탰다. 무엇보다 현지인들과 직접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게 좋았다. 수업을 통해 요즘 베트남 젊은 이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그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 볼 수 있다는 것도,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얻을 수 있는 장점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고, 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접하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한 때 해외여행을 가면, 내가 남에서 왔는지 북에서 왔는지, 내가 속한 나라가 민주국가인지 공산국가인지 설명해야 할 때가 있었다. 똑같은 여행자인데도, 미국이나 영국, 호주 같은 나라 사람보다 나는 내 나라에 대해 설명하려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지금은 내가 말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해 얘기를 꺼낸다. 어떻게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고 싶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이들을 보면, 그저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뿌듯함을 느끼게 하곤 했다. 신생 어학원에서 급조해 만들어진 한국어 수업에 이렇게 수강생이 몰린 것도 이런 사람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수업 자체는 힘들지 않았어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국인들에게 외국어 수업,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수업, 둘 다 해본 후 느낀 점은, 의외로 외국인들에게 내 모국어를 가르치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어렵고 헷갈렸던 부분은 다른 한국인들에게도 똑같이 어렵고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가 공부했던 방식의 노하우를 알려주며,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모국어라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를 체계적으로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얻게 된 알바 자리였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내가 그들 인생에서 보는 첫 한국인이기도 해, 말이나 행동 거지에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괜히 나로 인해 모든 한국인들은 다 저 모양인가 하는 오해를 할까 봐 걱정도 됐다. 그렇게 부담감과 책임감이 뒤섞인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환불 요청 없이 끝까지 수업을 끌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수강생들은 수업 마지막 날, 한국어로 고맙다는 레터링이 적힌 케이크를 내게 안겨줬다. 외국에서 스스로가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느낄 기회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 내게는 그날이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