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친구가 다낭으로 가족 여행을 왔다. 거너와 함께 친구가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친구의 가족들과도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한참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친구가 내가 쓰는 한국어가 어색하다고 지적했다.
“무슨 말이야? 내 말이 어색하다니.”
“아니 뭔가 미묘하게 말이 달라. 말을 못 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쓰는 문장이랑 조금 다르게 느껴진달까?”
“그냥 착각이겠지. 한국 사람이 왜 한국어가 이상해. 여기 산 지 겨우 6개월 밖에 안 됐는데.”
“내가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이런 거에 예민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 말이 조금 이상해졌어.”
사실 내 한국어가 이상해졌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 아니었다. 일전에 한국에 있는 지인과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지인이 내 억양이 조금 달라졌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베트남 집의 와이파이가 불안정해서 전화상 말투가 불안정하게 들리는가 보다 하고 웃어넘겼지만, 실제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누는 친구 또한 내 한국어가 이상하다고 하니, 그때는 진짜 무언가 달라진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친구가 얘기하는 내 한국어의 어색함은 보통은 눈치채기 어려운 작은 부분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이따가 점심 먹으러 호이안 갈 건데, 같이 갈래?"라는 문장이 있다면, 나는 "점심 먹으러 이따가 갈래? 호이안에"라는 식으로,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문장 구조를 살짝 바꿔서 말하는 식이었다. 때문에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지만, 왠지 모를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 발음과 말투도 꼬집었는데, 내가 말을 할 때 톤의 높낮이가 강해, 나와 처음 대화한 사람은 어느 지역에서 온 건지 궁금해할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다낭에서 처음 마주한 친구의 가족들도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특정 사투리를 쓰는 지역에 오래 살아본 것도 아니고, 부모님 모두 표준어를 쓰시기 때문에, 사실 나는 제대로 된 사투리를 구사할 줄 모른다. 그런데도 내 말투가 어느 지역에서 온 것인지 궁금해하는 한국 사람을 보니, 친구가 하는 말이 아예 착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내가 현재 살고 있는 환경을 돌아봤다. 생각해 보니, 나는 제대로 된 한국어를 거의 쓰지 않는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베트남에 있으니, 당연히 매일 접하는 언어는 베트남어이며, 여기서 제일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구가 일본인이니, 밖에서는 베트남어와 일본어를 쓸 일이 많았다. 그리고 함께 사는 거너는 미국인이니, 그와 소통할 때는 영어를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또한 제대로 된 영어가 아니었다. 완전한 영어로만 소통하기에 내 실력이 너무 부족한 데다, 거너도 한국 거주 경력으로 기본적인 한국어는 할 줄 알아서, 그와 대화를 할 때는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이상한 문장으로 대화를 했던 것이다. 만일, "오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선풍기 좀 틀어야겠다"라는 문장을 거너에게 말한다면, "오늘 weather이 너무 hot이라, fan turn on 해야 돼.”라는 식의, 굉장히 교포스러운 표현으로 말이다. 진짜 교포라면 영어라도 완벽할 텐데, 나는 미국인 남자친구와 사는 토종 한국사람인지라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이상한 언어로 말을 하게 됐다.
일전에 누군가가 다국어 사용자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은 한국어 100%, 영어 100%, 일본어 100%, 베트남어 100% 이런 식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국어 25%, 영어 25%, 일본어 25%, 베트남어 25%로 다국어를 하는 거라는 말이었다. 나에게는 그 말이 백 프로 맞는 말이었다. 외국인인 거너와 만나면서, 또 한국어 쓸 일이 없는 환경에 있으면서 내 모국어는 점점 퇴화되어 갔다. 청소년기에 외국으로 온 것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해외살이 그거 잠깐 했다고 모국어 능력이 떨어져 있었다.
한 번 배워 두면 장시간 하지 않더라도, 다시 시작했을 때 금방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는 20대 중반에 처음 수영을 배울 때, 물에도 못 뜨는 상태에서 접영까지 배우느라 고생이 많았지만, 그때 한 번 익혀 두니 현재는 1년에 한 번 수영장에 갈까 말까 한데도, 물에 들어가면 금방 몸이 알아서 수영을 하게 된다. 나는 모국어도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어는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안 쓰면 금방 잊어버리는 건 비단 외국어뿐만이 아니라 모국어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확실히 오랜만에 친구와 한국어로 말을 하면서, 바로바로 생각나지 않는 단어도 많았다. 날씨 얘기를 하면서도 ‘일교차’, ‘하지’ 같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 하루 동안 변하는 온도 차이를 뭐라고 하지?”, “일 년 중에 해가 제일 긴 날을 뜻하는 말이 있었는데…” 라며, 단어를 설명해야 했다. 이쯤 되자, 진짜 한 가지 언어도 제대로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될 것 같아 조바심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전화 영어’처럼, 한국인이 ‘전화 한국어’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정말 0개 국어자가 되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국어사전을 펼쳐 놓고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는 단어라도 뜻을 검색하면서 내가 쓰려는 의미에 맞는지 찾아보고, 문법에 맞는 문장을 써 보려고 했다. 또 최대한 외래어 없이 문장 쓰기를 연습해 봤다. 예를 들어, ‘오렌지 색’, ‘페스티벌’처럼, 일상에서 한국어처럼 녹아든 외래어도 일부러 ‘주황색’, ‘축제’라는 단어를 골라 적었는데, 의식적으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정말 간단한 어휘도 말로 안 나올 것 같아서였다.
해외 살이의 어려움은 열 손가락 부족할 정도로 많지만, 그중에는 모국어 퇴화라는 문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던데, 설마 이런데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걸 느낄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