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할 집은 이미 비어 있는 상태였고, 살던 집도 한동안 다음 세입자가 들어올 예정이 없었기 때문에, 빗줄기가 약해졌을 때 조금씩 짐을 옮기면서 며칠에 걸쳐 이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자전거까지 옮기고, 본격적으로 바닷가 근처 작은 집에서 새 살림을 시작하자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완전히 이사를 마치자마자 다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쉬지 않고 몰아쳤는데 그걸 보며, 빨리 이사하길 정말 잘했다는 안도감도 느꼈다. 그렇지 않았다면 또 비와 벌레로 곤욕을 치르고 있을 게 뻔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집은 없었다.
새 집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3일 째였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곤히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했다는 사실을 거의 알리지 않았기에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지난날 한밤중 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쳤던 일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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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사몽 한 상태로 몸을 일으켜 짜증을 내는 사이, 거너가 불을 켜고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작은 체구의 어떤 여자가 서 있었는데, 집주인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무언가 말하고 있었지만 너무 놀랐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거너가 알아듣지 못하자, 다짜고짜 거너의 팔을 잡고 어딘가로 이끌었다. 나는 한밤중에 나타난 모르는 여자가 남의 남자친구를 끌고 가자, 이게 무슨 일이냐며 신발도 안 신고 따라 나왔다. 그 여자는 우리를 3층으로 이끌었다. 알고 보니 바로 위층에 사는 여자였다.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과 안면을 틀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이제 막 이사 온 우리를, 한밤중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 여자는 자기 방문 앞에 서서 양팔을 퍼덕이며, 안에 들어가 보라고 했다. 본인은 무서워 못 들어간다고 거너를 본인 방에 밀어 넣었다. 나도 궁금했지만 그 여자의 겁먹은 표정을 보니 덩달아 무서워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팔을 퍼덕이는 걸 보면 새를 말하는 것 같은데, 부엉이라도 창문을 깨고 들어온 건가 싶었다.
잠시 후 거너 혼자 들어간 그 방에서 ‘우어어’ 하는 외마디 외침이 들렸고, 뭔가 우당탕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나는 문을 두드리며 괜찮냐고 말을 건넸고, 거너는 대답 없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이제 아무도 없으니 들어가 보라는 말을 했다. 그녀는 고맙다고 깊이 고개를 숙이더니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대체 뭐야? 뭐가 있었던 거야? 벌레? 새?”
“새…라고 해야 되나?”
“뭔데?”
“It was a bat”
“bat? 그 배트맨의 bat?”
윗집 여자를 한밤중에 뛰쳐나오게 한 정체는 바로 박쥐였다. 나는 박쥐가 집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배트맨 할 때 그 ‘배트’가 맞냐고 물었다. 박쥐는 내게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날개 달린 쥐’였는데, 그게 오늘 밤 우리 건물에 나타났다니 기가 막혔다.
다음 날 아침 그 여자는 간밤에 고마웠다며 작은 과일 꾸러미를 가지고 왔다. 그녀도 이 건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외국인인데, 어젯밤에는 천장 구석에 이상한 게 달려 있어 한참 쳐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것이 퍼덕퍼덕 날아와 자기 팔에 턱 하니 앉더란다.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펄쩍 뛰다가, 무서워서 다짜고짜 아랫집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거너가 짐을 들고 들어가는 걸 봤다며 아랫집에 남자가 살고 있다는 게 생각났다는 것이다.
이사한 집에서 박쥐를 조우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새 집에는 박쥐가 있었다. 나중에 물을 뜨러 옥상으로 올라가 보니, 어두운 구석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죽은 박쥐 시체도 발견했다. 이 집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주변에 박쥐가 많은 것이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밤에 높은 층에 올라 바깥을 내다보면, 검은 새 무리가 도심 한편에서 빙빙 돌고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박쥐 떼였다. 소리도 무슨 쥐소리처럼 아주 요란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내가 이 얘길 베트남 사람들에게 꺼내면, 다낭에 무슨 박쥐가 있냐고 한다. 그들은 박쥐가 아니라 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게 새가 아니라 박쥐라고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굳이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말은 꺼내지 못했다. 대신 새 집에서는 초저녁부터 베란다 문을 아주 꼭꼭 잠그는 습관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