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 부부로 살림을 꾸리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동거인이라는 전제로 살림을 꾸려서 그런지 우리는 집을 활용하시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침실, 서재방, 손님방 이런 식으로 나눠 쓰는 게 아니라, 우리는 내 방, 네 방, 업무 겸 손님방 이렇게 나눠서 각자의 방을 골라 사용했다. 거너 방이 안쪽에 있어 더 조용했기 때문에, 밤에는 그 방에서 얘기를 나누다 잠드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각자의 시간을 보낼 때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핸드폰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으로 에너지를 충전했다.
거너는 체질이 아침형 인간이라, 특별한 일이 없어도 보통 아침 6시 전에 기상하고, 밤 10시 전에는 잠드는, 새나라의 어린이 같은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12시나 새벽 1시쯤에 자던 나는, 거너와 함께 살면서 그의 생활 방식에 익숙해져 나도 10시쯤 함께 잠드는 일이 많았는데,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아 내 방에서 뒹굴뒹굴하며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었다. 거너는 진작에 자기 방에서 잠이 들었고, 나도 더 길게 깨어 있을 생각이 없었기에 내 방 외에는 불을 다 끄고 문단속까지 마친 상태였다.
한창 집중해서 좋아하는 웹툰을 읽고 있을 때, 밖에서 쾅쾅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베트남 현지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 살면, 사실 그 정도 소음이야 일상적이라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밤늦게까지 집이 아닌 길거리에 테이블을 펼쳐 놓고 술을 마시는 사람도 많고, 집집마다 있는 노래방 기계는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울려 퍼지기 때문에, 이제는 나에게 웬만한 소음은 소음이라는 기준치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베트남 집들은 현관문이 철문인 곳들이 꽤 많아서, 철문 움직이는 소리는 이 집 저 집 다 나는 소리였으니, 철문이 울리는 쾅쾅 거리는 소리도 여느 때처럼 무시하고 누워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평소보다 더 가까이, 계속해서 들렸다.
3분 이상 같은 소리가 이어지는 것 같아,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창문을 밖을 내다봤다. 내 방에는 길가로 나 있는 큰 창문이 있어, 쉽게 밖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네다섯 명의 남자 무리가 우리 집 앞에 서서 닫아 놓은 철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 찾아오는 손님도 없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더더욱 없기에 너무나 깜짝 놀라 바로 옆 방에서 자는 거너를 깨웠다. 거너가 현관문을 여는 사이 나는 입고 있던 잠옷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나갔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집 안으로 들어온 이 남자들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집 안을 확인하더니,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우리는 경찰 신분증을 요구했고, 그중에 리더 격으로 보이는 사람이 본인의 신분증을 보여줬는데 베트남에서 쓰는 신분증쯤이야 쉽게 위조가 가능한 것이었기에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 그 자리에서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경찰이 이 늦은 시간에 왜 문을 두드렸냐 물어보니, 대답대신 다짜고짜 여권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우리 두 사람의 여권과 베트남 비자를 확인해야겠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이 두 가지가 내 신분증이나 다름없어 늘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두고 있었고, 내 비자 또한 전혀 문제가 없는 상태였기에 긴장할 필요는 없었지만, 네다섯 명의 경찰 무리가 밤늦게 집으로 찾아온 상황에서 발 쭉 뻗고 맞이할 여유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찰이 올 만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이 동네에서 눈에 띄는 외국인이라 최대한 조용히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경찰이 출동할 그런 위급한 상황이 뭐가 있을까.
책도 아니고 한 장짜리 비자와 여권을 뭐가 그리 볼 게 많은 지 한참을 들여다보던 경찰은, 여권을 돌려주며 집주인의 이름을 물었다.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주인의 이름은 ‘펑’이었다. 그의 이름을 말하자 경찰은 나와 잘 아는 사이라며, 이 동네 펑씨 집에 외국인들이 들어와 산다고 들었는데, 합법적인 상태로 거주하는 건지 확인하러 왔다며 단지 행정상 절차라고 말을 덧붙였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많은 의문점들이 떠다녔다.
경찰들이 찾아왔을 때는 이미 이 집에 들어온 지 7개월이 넘은 시점이었다. 이사 온 지 7개월이 넘은 외국인들의 비자를 확인하기 위해,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다섯 명이나 되는 경찰들이 문을 두드렸다고? 어안이 벙벙해 경찰들이 돌아간 다음 날, 바로 집주인에게 간 밤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연락하니, 의례적으로 경찰들이 하는 일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본래 베트남 사는 외국인들은 다 겪은 일인가 싶었는데, 베트남에서 꽤 오래 생활을 해 온 외국인 친구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처음 듣는 말이라고 했고, 심지어 여행 비자로 주변 국가를 왔다 갔다 하며, 베트남에서 3년을 넘게 살고 있는 친구도, 그런 일로 경찰이 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주변 그 어느 외국인도 겪어 본 일이 없다는 말에 ‘왜 우리만?’ ‘현지인 마을에 살고 있어 특별 감시 대상이라도 된 건가?’ ‘이사 온 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서?’라는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질문만 꼬리를 물고 따라다닐 뿐이었다.
그 일로 좀 놀라긴 했어도, 그 뒤로 다시 경찰이 집에 들이닥치는 일은 없었다. 다만 한 동안 문단속을 더 철저히 하고, 밤 중 소음에 약간 더 귀를 기울이다 잠이 들었다. 여전히 궁금하기는 하다. 그들은 진짜 여권만 확인한 게 맞을까, 아니 애초에 정말 경찰이 맞기는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