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뺑소니를 당했다

by 라봇

걸어서 갈 수 있는 마트는 작은 편의점 수준이라, 살 수 있는 식료품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 물품도 살 수 있는 대형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거길 가려면 큰 로터리를 지나야 했다. 있어도 어차피 안 지켜서 그런지 신호등도 없고, 차선도 애매하게 그어져 있는 탓에 마트까지 운전하는 건 거의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내 뒤통수에 남의 눈이라도 박고 싶을 정도로, 사방에서 밀려오는 오토바이에 질려버린 나는, 마트에 갈 때는 꼭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했다. 양손 가득히 장을 봐도, 운전수들이 손잡이와 의자 앞부분 등 오토바이 여기저기에 짐을 걸어서 운반시켜 줬기 때문에, 짐이 많아도 굳이 비싼 자동차 택시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타는 건 택시라고 해도 자동차 택시가 아니라, 안전장치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나보다 숙달된 사람이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게 훨씬 안심이 됐다.


하지면 역시나 그 로터리에서 사고가 났다. 마트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로터리가 가까워져 오자, 운전수는 속도를 줄이고 눈치를 보다 뱅뱅 도는 오토바이 무리에 합류했다. 그런데 왼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한 아저씨가 보였다. 로터리를 돌고 빠져나가고 싶었는데 미쳐 빠져나가지 못 한 건지, 아니면 무슨 목적이 있어서 로터리를 더 돌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내게 가까워져 오고 있음에도 오토바이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나를 태우고 가던 운전수는 옆에서 뭐가 오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양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결국 내가 “어? 어..!” 하는 사이, 그 아저씨는 오토바이 앞바퀴를 그대로 내 옆구리에 내리꽂았다.


오토바이가 옆구리에 박자마자 묵직한 통증이 밀려 올라왔다. 눈물이 찔끔 나올 듯한 통증이었는데, 아프기보다는 짜증이 먼저 났다. 나를 박은 아저씨는 눈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앞에 사람이 있어도 멈추지 않았는지, 나를 태우고 있는 운전수도 이제 갓 운전을 시작한 초보도 아닌데, 왜 앞만 주시하고 있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그래서 아픔보다 화가 먼저 났던 것이다.


도저히 인상을 펼 수가 없어, 확 구겨진 얼굴로 나를 친 아저씨를 노려봤다. 그랬더니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가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오토바이를 몰고 사라진 것이다. ‘미안하다’, ‘많이 다쳤냐’는 말 한마디도 없이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라졌다. 말이 아니라 표정에서도 미안한 기색은커녕 내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의 앞바퀴가 내 옆구리에 박혀 있어, 우리는 20센티를 두고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뭐 같은 상황에 욹그락 붉으락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나를 태운 운전수가 거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나보고 괜찮냐고 물어봤다. 괜찮을 리가 있을까? 나는 아주 큰 소리로 “No!”라고 외쳤다. 그러고 나서 그의 반응은? 아무것도! 놀랍게도 그는 내가 괜찮지 않다는 대답을 듣고도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 가자는 말도, 어디를 다쳤냐는 말도 없었다. 이렇게나 손님 사고에 신경을 안 쓸 거면 괜찮냐고는 왜 물어봤을까. 아니면 ‘No’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가. 내 대답을 듣고도 운전수는 무심하게 다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고, 목적지인 우리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달려오는 오토바이에 온몸으로 맞은 건 난데, 친 사람도, 목격자도 그 상황에서 눈 한 번 깜짝이지 않는 상황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화병이 날 것 같아 내가 뭘 해야 할지 생각해 봤지만 우습게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해자는 나를 치자마자 바로 후진해 사라졌기 때문에 사진이고 뭐고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신호등도 없는 이 베트남 거리에 감시 카메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판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을 찾아간다 한들 과연 내가 당한 뺑소니를 현지어로 제대로 설명이나 할 수 있을까. 설명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 당사자들도 무심하게 사라지는 외국인 뺑소니 사건을 경찰들이 얼마나 성심성의껏 도와줄 것인가.


천만다행으로, 로터리였기 때문에 그곳을 돌고 있는 오토바이들의 평균 속도가 아주 높지는 않았다. 전력질주로 달려오는 오토바이에 치였다면, 화를 낼 정신도 없이 나는 이미 저 세상에 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달려오는 오토바이에 치였다는 것과, 사과 한 마디 없이 남겨졌다는 것은 여전히 매우 아프고 불쾌한 일이다.


이쪽 문화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사과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분명히 자신이 잘 못 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사과 =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긴다. 오히려 내가 화를 내면 ‘화낸 사람’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대체 사과해야 하는 상황은 언제인지 모르겠다. 여러 전쟁과 사회주의 체제를 겪으면서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당장을 즐기고, 지금 당장을 대충 모면하려는 성향이 크다. 이걸 모르면 도저히 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는데, 이걸 알아도 이해할 수가 없다. 다행히 다친 옆구리는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뺑소니에 지펴진 내 열불은 쉽게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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