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찾아온 비구름은, 그동안 내려 보내지 못한 물을 얼마나 품고 있던 건지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낭의 배수 시설은 한꺼번에 내리는 물의 양을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갈 곳을 잃은 빗물은 그대로 시멘트 바닥에 고여 강을 만들었다. 비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것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불씨도 자칫하면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퍼지지만, 물이라는 것도 조금만 방심하면 순식간에 불어나는 것이었다.
창문을 통해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온통 흙탕물로 뒤덮인 거리였으며, 그마저도 쉬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잠을 설쳐가며 계속 닦고 수건으로 막은 덕에 다행히 집에 있는 집기 중 물 때문에 망가진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현관문을 통해 흘러 들어온 빗물로 거실 바닥에는 또렷한 흙자국이 생겼다. 위층 베란다는 급조로 타일을 깨고 넓힌 배수구 구멍이 도움이 됐는지 더 이상 위층에서 물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집은 나름 폭우로부터 지켰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문제는 이 집에서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비도 전력을 다해 내리다 보면 잠시 지치는 순간이 올 거라 생각했다. 비구름도 충전을 해야 다시 비를 내릴 것이 아닌가. 그러나 베트남의 구름은 한국의 것과 달랐다. 체력을 엄청나게 비축해 놓은 놈인지, 전력으로 세차게 내리는 비는 단 한순간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면 최소 종아리, 침수가 더 심한 곳들은 내 허벅지까지도 물이 차는데 어떻게 나갈 엄두를 낼 수 있을까. 그나마 전기와 인터넷이 끊기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인터넷으로 동네 상황을 살폈는데, 사람들은 우비를 입고 빗물에 망가진 오토바이를 끌고 걸어 다녔으며, 1층에 있는 가게들은 다 침수되어 더 이상 쓸모없게 되어버린 물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물이 허리춤까지 찬 곳들은 사람들이 아예 휴양지에서 갖고 노는 패들 보드를 골목에 띄우고, 침수된 거리를 이동하고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서 패들 보드가 이동 수단이 된 마당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침수된 도로에서 패들보트 이용하는 사람들, 인터넷 사진 참조
밖에 못 나가고 집에 갇혀 있는 건 괜찮았는데, 제일 큰 문제는 집에 음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마트에 장을 보러 갈 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집에 음식을 비축해 둘 틈이 없었다. 첫날은 위아래로 쏟아지는 빗물에 정신이 없어, 빵에 잼을 발라 한 끼를 때웠으나, 언제 그칠지 모를 이 비를 보고 있으니 먹을 거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가 실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만일 물에 잠긴 도로를 해치고 어찌어찌 마트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음식을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대형 마트들도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겨, 한동안 마트 문을 닫는다는 뉴스가 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남은 음식으로 버티기 작전이 시행됐는데, 무슨 무인도에 갇힌 것도 아니고 내 집에서 비 때문에 갇혀 먹을 걸 걱정하다니, 나도 참 굳이 여기까지 와서 사서 하는 생고생이다 싶었다.
언제까지 버텨야 할지 기약이 없었기에 비상식량까지 동원해 집에 있는 먹을거리를 모조리 찾아냈다. 찬장에 라면과 통조림이 몇 개 있었고, 신선 식품은 없었지만 냉동실에 꽁꽁 언 인스턴스 식품과 고기 몇 조각을 찾아냈다. 쌀도 두세 끼는 해 먹을 수 있는 분량이 있었다. 물은 전부 끓여 마셨다. 본래 마트에서 매주 생수병을 사다가 식수로 사용했는데, 나갈 수가 없으니 그게 최선이었다.
당연히 하루 세끼를 챙겨 먹을 수는 없고, 하루에 한 끼에서 한 끼 반을 먹었다. 그마저도 불안해서 배불리 먹을 수는 없었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깼을 때 그치지 않고 들리는 빗소리는 절망적이었다. 오후에는 그치려나, 내일은 그치려나 했지만 비는 더 무섭게 쏟아질 뿐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버텼다. 그동안 정말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나가지 못했다. 이제 정말 먹을 게 하나도 없어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할 때, 기적같이 한 시간 정도 빗줄기가 얇아진 순간이 있었다.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밖에 나갈 기회가 생길지 몰라, 그 틈을 타 마트로 향했다. 아직 도로는 침수되어 있었지만, 조심조심 오토바이 운전이 가능할 정도로는 물이 빠진 상태였다. 마트들도 문을 열 수 있는 층만 부분적으로 장사를 재개했다. 급하게 필요한 음식을 사들도 집으로 돌아오니 다시 또 굵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내리쳤다.
집에 물이 새고 먹을 거 없이 고립되어도, 이사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시간의 소강상태 이후 다시 시작된 폭우에서 나는 이사를 결심했다. 검은 좀비 떼가 집으로 쳐들어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