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고, 집에 물이 찼다

by 라봇

더위가 살짝 꺾인 여유로운 주말, 셰어 하우스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 3층짜리 집에 방이 다섯 개 정도 되는 주택이었는데, 베트남 사람을 비롯해 다낭에 사는 각국의 외국인들이 거실과 주방을 공유하며 모여 사는 집이었다. 나는 주꾸미 볶음을 만들어서 갔고, 그 집에 사는 친구들은 즉석에서 튀긴 춘권과 볶음밥 요리 등을 만들어 다 같이 집밥을 즐겼다. 그날 모인 이유는, 이 집에 사는 외국인 친구들이 당분간 다낭을 떠난다는 소식에 밥이나 같이 먹으며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서였다. 약 세 네 달 정도 다낭을 떠나 다른 나라에 머물다가 돌아온다고 했는데, 왜 하나같이 비슷한 기간에 다낭을 떠나는 건지 이상했다. 나의 의아함에 그들은 비를 피해서 타국으로 잠시 피신을 가는 거라고 답했다.


“비? 비가 안 오는 나라가 어디 있다고, 나라까지 옮기면서 피신을 해?”라고 묻는 내게, 그들은 너는 아직 다낭의 우기를 겪어 본 적이 없어 모른다며, 알면 그런 소리 못한다는 말을 했다. 내가 베트남 친구들을 쳐다보자, “우기에는 비가 좀 많이 와” 라며, 슬쩍 웃어넘겼다.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장기 다낭 살이를 하는 외국인들이, 하나같이 같은 기간에 비를 피해 도망을 간다고 하자, 나도 덩달아 불안해져 어딘가로 가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갈 데가 마땅치 않아 그냥 계속 다낭에 있기로 했다.


그런데 내 우려가 무색하게 생각보다 비는 별로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낭 시에서 예년과 다르게 비가 적게 왔다며 물부족을 걱정했다. 나는 이렇게나 날씨가 좋은데 너네는 괜히 생돈 들여 피난 갔다며 메시지로 친구들을 약 올렸다. 그리고 정확히 다음 날 우기가 시작되었다.


방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기 위해 1층에 있는 거실로 내려가는데 머리 위에 무언가 후두둑 떨어졌다. 정수리를 만져보니 축축했다. 위층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도 않은 채 집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고 있자니 어안이 벙벙했다. 거너의 이름을 부르며 거실로 가니, 더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집 밖이 바다로 변한 것이다. 유리문으로 되어 있는 베트남 집 현관문 너머로, 본래 시멘트 도로가 보여야 정상인데, 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때때로 너울이 치면서 그 물이 집안으로 흘러 들어와, 거너는 대걸레로 거실 바닥을 닦고 있었다.

KakaoTalk_20230711_151404205 (1).jpg 문 밖으로 넘실거리는 빗물

하루아침에 달라져버린 바깥 풍경에 내가 멍하니 서 있자, 거너는 위층에도 물이 들어왔냐며 서둘러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세로로 긴 구조인 이 집의 위층에는 쓸 때 없이 큰 발코니가 달린 방이 있는데, 거기서 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진앙지인 발코니 문을 열자, 밖에 나가지 않고도 쏟아지는 비와 그대로 직면했다.

흔히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고들 표현한다. 하지만 이건 구멍이 뚫린 게 아니라 아예 바닷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노아’가 대홍수를 만났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늘에서 도시 전체에 물로 따발총을 퍼부어대는 것 같았다. 발코니 바닥에는 빗물이 아래로 흘러 나갈 수 있게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도저히 쏟아지는 비의 양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발코니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그 물은 방으로, 또 방에서 계단을 타고 아래층으로 흐르고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맑은 날씨였는데, 갑자기 빗 물이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집안으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믿기 힘든 상황이 펼쳐지자, 신기하게도 화가 나지도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차분해졌다. 이미 벌어진 일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도 없다는 생각에 그냥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수건을 여러 개 가지고 와 발코니 문틈을 틀어막아 물이 계속 들어오는 걸 늦췄다. 거너는 빗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더 넓히고자 망치로 하수구 주변 타일을 몇 장 깼다. 그런데도 워낙 퍼부어대는 양이 많으니 소용이 없자, 이번에는 화장실용 작은 대야를 가져와 발코니에 고이는 물을 퍼서 다시 밖으로 쏟아부었다. 발코니에는 지붕이 없어서 모두 비를 쫄딱 맞으며 해야 했다. 다윗과 골리앗에 비견되는 승산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최대한 집 전체가 물로 흥건해지는 걸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었다.


거너와 나는 식사도 잊은 채 하루 종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물을 푸고 닦고, 위아래로 들이닥치는 비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날은 월요일 아침이었는데 거너를 포함해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출근을 포기했다.


밤에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오래된 집이라 비가 많이 오자 침실 벽 한쪽에도 물이 새서 젖기 시작했고, 그 물이 다시 바닥을 타고 흘러, 침실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때문에 대걸레를 침대 옆에 두고 중간중간 일어나 젖은 바닥을 확인하며 닦아냈다. 안타깝게도 물이 새는 벽에는 벽장이 있었고, 나중에 발견한 것이지만 벽장 안에 있던 거너의 옷들은 전부 곰팡이가 펴서 버려야 했다.


비에 젖은 채 종일 집 안을 뛰어다녀서 그런지 다음 날에는 근육통과 몸살이 찾아왔다. 그런데도 약을 먹을 수 없었다. 비가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장마 기간에도 비가 세차게 내리다가 잠시 잦아드는 순간이 있는데, 베트남의 비는 처음 내릴 때와 한결같이 단 1초도 쉬지 않고 일주일 내내 밤낮을 계속해서 퍼부어댔다. 도로는 여전히 물에 잠겨 있었으며 나와 거너는 집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진짜 걱정거리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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