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사가게 만든 좀비 떼들

by 라봇

일주일 만에 잠시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 장을 봐 오길 정말 잘했다. 거짓말 같이 장바구니를 들고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하늘에 다시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잠시 시멘트를 드러냈던 바닥은 내가 식료품을 정리하는 사이, 불어난 물로 강으로 돌아와 있었다. 조용했던 집 안도, 지붕으로 떨어지는 굵은 빗소리로 가득 찼다. 다음은 또 언제 밖을 나갈 수 있으려나 한숨을 쉬며 현관 유리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크고 검은 점이 유리문 바로 앞에 나타났다. 그 유리문은 바닥과 밀착된 문이 아니라서, 바닥과 유리문 사이에는 약 5센티의 빈 공간이 있었는데, 검은 점은 그 공간을 통해 아주 쉽게 우리 집 거실로 들어왔다. 점으로 보였던 그 무언가가 내게 가까워지며 점차 3D의 입체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갔고, 나는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목청껏 비명을 내질렀다. 바로 나의 천적 바퀴벌레였던 것이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베트남 바퀴의 크기는 한국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아주 큰 것들은 핸드폰 사이즈만 하며, 그것보다 작아도 평균 컴퓨터 마우스 길이 정도는 된다. 그런 것이 한 마리가 들어오는 것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이제 보니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의 바퀴들이 일제히 우리 집 거실로 달려오고 있었다. 미국 좀비 영화에서만 보던 그 장면이 말 그대로 우리 집 거실에서 펼쳐진 것이다.


이해는 한다. 그들도 살기 위해서라는 걸. 필시 하수구에 잘 가꿔진 그들의 공간이 있을 텐데, 이런 폭우에 쓸려 나간 지 오래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수영을 못 한다. 온갖 혹독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지구상 최강자 생물이지만 물에서 만큼은 아니다. 물이 빠져나가기는커녕 하수구에서 오히려 역류하고 있는 상황이라 바퀴들은 살아남기 위해 빗물이 없는 실내로 들어와야만 했다. 그래서 대낮에 엄청난 양의 바퀴 무리가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다.


왜 하필 우리 집일까. 당연하다. 옆 집들은 리모델링을 한 집이라 고무 실링으로 현관문과 바닥이 딱 붙어 틈이 없지만, 우리 집만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 고무 실링 따위 없는 것이다. 다른 집들이 철문으로 이뤄진 집이라면, 우리 집은 짚으로 만들어 후 불면 날아갈 정도의 차이였다.


셀 수 조차 없는 양의 바퀴들이 동시에 우리 집으로 뛰어들자, 나는 패닉 상태에 빠져 비명만 질러댔다. 위층에 있던 거너는 내가 죽을 것처럼 소리를 지르자, 도둑이라도 든 줄 알고 빗자루를 들고뛰어 내려왔다가 거실에 모여 있는 바퀴 떼를 보고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유리문이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철문까지 닫아 버렸다.


내가 사는 베트남 집 1층은 창문이 없어 철문을 닫아버리면 자연광은 완전히 차단되어 버린다. 그래서 자기 전에만 내리는 문인데, 유리문으로 바퀴들을 막을 수 없으니 일단 철문을 내려버린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미 들어온 그 수가 엄청났다. 나는 벌레 공포증으로 정신과 상담까지 받았을 정도니 절대 그들 가까이에 갈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걸터앉아 형광등을 켜고 내려다보며, 거너에게 그들의 위치를 알려주고, 거너는 운동화 한 짝과 벌레 스프레이를 들고 홀로 좀비 떼들과의 사투에 들어갔다. 거너가 살육을 시작하자, 그들은 일제히 흩어졌는데, 벽으로 문으로 옮겨 붙었다.


“ 왼쪽 벽에! 소파 옆에도! 네 뒤에도 있어!”

거너는 벌레들이 자기한테 기어오르지 않게 껑충껑충 뛰면서 도망가는 바퀴들도 잡아야 하니 천수관음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힘들다고 잠시 쉬면 놓친 바퀴들이 집안 어디까지 기어들어갈지 모르니 눈에 보이는 것들은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최선이었다. 철문을 닫아 이제는 밖에서 바퀴들이 안 들어오겠지 싶다가도, 도대체 어디에 틈이 있는 건지 다 치웠나 싶으면 다시금 등장했다. 처음에는 운동화로 때려잡다가 나중에는 길이가 더 넓고 내려치기 쉬운 슬리퍼로 바꿨다. 그들 때문에 대낮부터 1층은 계속 철문을 닫아둔 채로 둬야 했고, 혹시 살아남아 집 안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하루 종일 2층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거너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집에 들어오는 빗물 걱정하기도 벅찬데, 이제는 밑에서 올라오는 좀비 떼까지 맞서야 했다. 눈에 띄는 바퀴들을 처리하고 숨 돌릴 틈이 생기자, 결국 거너가 내게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이사 가자. “


계약 기간을 못 채우고 이사를 가버리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불이익이 있다. 그래서 온갖 문제로 이사를 가고 싶어도 그냥 포기하고 버텼는데, 거너는 이게 마지노선이었던 것이다. 몇 개월은 되는 우기에, 또 언제 집에서 물이 샐지 모르고, 또 언제 하수구에서 좀비 떼가 쳐들어올지 모른다. 둘 중 하나만 생겨도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든데, 이 집은 그런 단점을 다 가지고 있는 완전체중의 완전체였다. 이런 상황을 몇 번이고 더 겪어야 할 수 있다는 불쾌한 가능성에 우리는 보증금을 포기하기로 했다. 베트남에 와서 돈 까먹고 있는 상황에 보증금 포기는 꽤나 큰 결심이었지만, 이보다 우리의 정신 건강이 더 소중했다. 다음 날 바로 집주인에게 이사를 가겠다고 전화를 넣었고, 이는 내가 베트남에서 한 결정 중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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