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열심히 머리에 샴푸질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장실 불이 나갔다. 욕실 스위치가 내려간 줄 알고 밖으로 나왔더니 사방이 새까맣게 보였다. 정전이 된 것이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더듬더듬 거실로 가던 길에, 어두워지자 마음 놓고 돌아다니고 있던 도마뱀들과 마주쳐 심정지가 올 뻔했다. 머리카락에 있던 샴푸가 말라 붙을 때쯤 다시 불이 들어왔는데, 그 이후로도 정전은 심심치 않게, 아니 일상이 될 정도로 반복되었다.
안 그래도 더운 다낭이 여름이 되면 온도가 올라가 지옥불이 된다. 에어컨이 있는 집들은 하루 종일 틀어대는데, 다낭은 휴양지라 호텔도 많으니 전기 수요가 폭발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낭시는 그 넘치는 전기 수요를 감당할 도시가 못 된다. 결국은 과부하되어 전기가 끊어지는 것이다. 느닷없이 도시 전체가 마비되는 걸 막기 위해, 다낭시가 내놓은 대책은 일부러 전기 끊기였다. 아예 전기 시간표를 만들어서 구역마다 대놓고 전기를 끊어대기 시작했다.
전기가 없으면 이 불볕더위를 어떻게 견딜지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막상 전기가 없으니 더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전기레인지, 밥통을 쓸 수 없으니 밥 해 먹기도 힘들었고, 냉장고 속 음식이 상할까 봐 냉장고 문 여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때를 놓치면 세탁기를 돌리지 못해, 냄새나는 옷은 쌓여갔고, 핸드폰이나 노트북 충전이 안 된 날에는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멍하니 창밖만 바라봐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이었다.
베트남에서 회사를 다니고는 있지만 월세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던 거너는, 온라인으로 영어 수업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기가 끊어지면 노트북도 켤 수 없고 와이파이도 없어지니 자동으로 무단결근 처리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수업 전, 갑자기 전기가 나가 노트북을 들고 달려, 불이 들어와 있는 카페를 찾아 헤매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나중에는 우리도 전기 시간표라는 걸 입수해, 그 시간에는 미리 오토바이를 타고 전기가 들어오는 동네를 찾은 후, 적당한 곳에 앉아 노트북 충전을 하고 와이파이를 빌려 썼다. 온라인 수업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그야말로 전기 동냥을 하러 다낭 이 동네 저 동네를 떠돌아다녔다. 게다가 전기만 못 쓰는 게 아니었다.
갈수록 높아지는 지구 온도에, 예년보다 건기가 길어져 모아둔 빗물이 충분하지 않던 도시는, 이제 물까지 끊기 시작했다. 씻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변기 물 내릴 때 쓸 물도 부족했다. 언제 물이 끊길지 몰라, 물이 나올 때는 큰 욕조에 한가득 물을 미리 받아두곤 했다. 왜 굳이 남의 나라까지 꾸역꾸역 와서 전기랑 물도 없이 생고생인지, 거대 바퀴벌레를 마주 했을 때도 안 하던 후회가 스멀스멀 밀려왔다. 받아 둔 물이 바닥날 때까지도 물이 안 나오면 나는 물동냥을 다녔다.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너네 집은 물 나오냐’를 물어본 후, 나온다는 집이 있으면 화장실 좀 쓰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같은 다낭인데도 현지인들이 많이 사는 구역과 관광객들이 많이 있는 구역은 자원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했다. 풍부할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바닷가에 사는 친구들은 나처럼 물에 쪼들리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 집에 찾아가 샤워도 하고 화장실을 얻어 썼다.
물동냥이 어려운 날에는 집에서 졸졸 나오는 샤워기를 들고, 10분이면 감을 머리를 30분 넘게 쭈그리고 앉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물이 안 나오는 호텔에 묵는 투숙객들은, 근처 편의점에서 대용량 생수를 산 후 그걸로 샤워를 했는데, 현지에 사는 나는 그런 사치는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빨리 비가 내려주기를, 전기 통제가 끝나기를 바라면서, 전기 동냥과 물동냥을 다녔다. 그런 생활을 약 한 달 정도 한 것 같다.
가장 힘든 혹서기가 끝나니, 다행히 도시에서 전기 통제를 멈췄고, 나는 더 이상 동냥을 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정전 걱정 없이 전기를 쓸 수 있게 되자 제일 먼저 한 것은 집에 아이스크림을 사다 두는 것이었다. 냉동실에서 꽝꽝 언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을 수 있는 게 이렇게 호화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어릴 때 내가 수십 번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고, 반찬 투정을 할 때마다 엄마는 네가 북한에서 몇 년 살다 와야 현재의 감사함을 알 거라고 잔소리를 하셨는데, 굳이 북한까지 안 가도 될 것 같다.
이때의 경험으로 내가 마련한 두 개의 아이템이 있다. 바로 발전기와 전기 없이 쓰는 정수기다. 지금은 전기 동냥 없이 살 수 있는 집에 있지만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기름을 넣어 쓰는 발전기를 사 뒀고, 전기가 끊겨도 식수 먹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필터에 직접 물을 부어 걸러 먹는 정수기를 쓰고 있다. 내가 겪은 불편함들이 나를 준비성 강한 사람으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이것저것 걱정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인지, 좋은 게 큰지 나쁜 게 큰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