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5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있다. 장성한 지금은 나이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어릴 때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동생이 아직 초등학생일 정도로 큰 차이였다. 하나밖에 없는 형제에, 같은 성별에, 적지 않은 나이차이 때문에 주변에서는 안 싸우고 사이좋게 지낸 자매인 줄 알지만, 우리는 그 나이 차이에도 지겹게 싸우면서 자랐다. 성인이 되면 자매는 굉장히 의지가 되고 세상 가까운 친구가 된다는데, 솔직히 우리 사이는 자매치고는 아직도 꽤 데면데면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동생이 성장기 때 우리가 떨어져 산 것도 그 원인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혼자 가족과 따로 산 것이지만 말이다. 아빠가 산골로 발령을 받거나, 전근 명령이 자주 떨어지면, 나는 학교 때문에 따로 떨어져 나와 도시에 사는 이모네 얹혀살았다. 나중에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며,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도시로 이사 와서 주말 부부를 자처하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쭈욱 동생과 같이 살게 됐다. 하지만 살기만 같이 살지, 같은 뱃속에서 나온 게 의심될 정도로 동생과 나는 성격도 취향도 완전히 다른 데다 서로 말을 예쁘게 하지도 못해 별 일 아닌 걸로도 원수처럼 으르렁댔고 서로의 사생활이나 관심사에 대해서도 흥미가 없었다.
내가 베트남으로 이사를 간 후에도 딱히 가족 행사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연락을 안 하고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혼자 놀러 오겠다고 했다. 마침 동생은 회사를 관둬 시간이 많을 때라, 놀러 갈 휴양지를 찾고 있었고, 아직도 엄마 눈에는 어린 막내가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니 불안했는지 언니 있는 데로 가라고 한 모양이었다. 사실 동생이 온다고 했을 때 기쁘다는 감정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동생과 집에서, 그리고 가족 행사 외에는 별로 시간을 보낸 적이 없기에, 다른 나라에 있는 내 공간에 동생이 온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동생이 거너의 존재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동생에게 남자친구를 제대로 소개한 적도, 함께 셋이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없었다. 그 정도로 동생과 나는 서로의 사생활을 공유하지 않는 사이였다.
동생이 공항에 내렸다는 연락을 받고 30분 후에 집 앞에 택시가 한 대 멈춰 섰다. 동생을 오랜만에 보는 건 아니었지만, 맨날 집에서 초등학생 때부터 입던 잠옷 차림의 동생만 보다가, 외출복을 입고 택시에서 내리는 동생의 모습은 너무도 낯설었다. 훌쩍 큰 숙녀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집에서 볼 때는 여전히 철없는 초등학생에 머물러 있는 애 같았지만, 밖에서 동생은 어엿한 사회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지내겠다는 동생을 데려다 주기 위해 택시를 불렀는데, 우리 집 오토바이를 보더니 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거너가 태워주겠고 했을 때 낯가림 때문에 거절할 줄 알았던 동생이, 바로 오케이를 하고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사람 가리는 애가 베트남에 오자마자 거너가 모는 오토바이에 망설임 없이 올라타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호텔에서 내린 동생은 오토바이 타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며 귓속말로 거너 몸집에 대해 언급했다. “근데 거너 왜 이렇게 살쪘어? 허릿살이 너무 많아서 어딜 잡아야 될지 몰라서 난감했어.”
동생의 뜻밖에 반응에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거너 여자친구로서의 나와, 동생 언니로서의 내 자아가 충돌하며 이 낯선 상황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혼란이 왔지만, 내 우려와 다르게 두 사람은 원래 잘 알던 사이처럼 편하게 대화했고, 여느 친구들처럼 내 흉을 보며 깔깔거렸다. 동생은 특히 거너가 내 트림 소리를 흉내 내는 게 너무 똑같다며 배를 잡고 웃어댔고, 그 때문에 분위기가 무겁지 않을 수 있었다.
낯선 장소에서 보는 동생은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집에선 그렇게 식사 때마다 까탈스럽게 굴던 애가 고수랑 피시소스 범벅이 된 음식도 잘 먹었고, 관광지에 가서는 잔뜩 바가지를 씌우는 상인들을 상대로 가격 후려치기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얻어먹을 줄만 알았는데, 밥까지 사고 거너 생일이라고 케이크도 본인이 준비하겠다는 모습을 보며, 언니 남자친구라고 나름 신경 써 주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내 인생이 바빠 동생이 이렇게 클 때까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양심을 쿡쿡 찌르기도 했다. 동생이 와서 또 싸우면 어떡하나, 동생과 거너가 서로 불편해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내가 동생 덕분에 관광객모드로 베트남을 둘러볼 수 있었고, 거너도 가족처럼 대해줘서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살면서 동생과 둘이 여행 가 본적이 거의 없다. 가족 여행 자체가 많지 않았는데, 어색한 자매 둘이 여행을 다녔을 리 만무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동생의 방문은, 자매끼리 여행을 즐기는 느낌이었다. 그전까지 동생은 그저 같은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난 혈육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베트남에서는 잊고 있던 형제애가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지난 관계를 청산하고 갑자기 엄청나게 살가워졌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서로 속 얘기도 잘 안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터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동생의 새로운 면을 본 기회가 된 건 확실하다. 비록 내가 물리적으로 멀어져서야 이런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건 아쉽지만, 때로는 멀리 있어야 더 잘 보이는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