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너씨와 나는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편이다. 먹는 영양분이 족족 머리카락으로 흘러 들어가는지, 둘 다 자라야 할 키는 안 자라고 머리카락만 덥수룩하다. 베트남 가기 전에 미리 머리를 자르고 갔는데도 날씨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부터 미용실부터 찾아야 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미용실 아무 데나 들어가기는 무서웠다. 머리 스타일은 인상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데다, 한 번 바꿔버리면 한동안 되돌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트남 사람들의 머리 스타일은,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걸 보지 못해 참고하기도 힘들었다. 내 시원찮은 베트남어로 원하는 모양을 잘 설명할 자신도 없었고, 결국은 가깝게 지내는 현지 친구에게 미용실에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도 다양한 가격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용실이 있는 것처럼, 베트남도 미용실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시설이 좀 고급스럽다 싶은 곳들은 한국에서 지불하는 만큼 돈을 내야 하는 곳들도 있다. 내가 미용실 소개를 부탁한 현지 친구 ‘짱’은, 알뜰살뜰하게 사는 사람인데, 모든 베트남 사람들이 타는 오토바이도 안 타고 일부러 버스와 자전거를 이용해 이동할 정도였다. 그녀에게 부탁하면 합리적인 금액의 미용실을 찾아줄 것 같았다.
‘짱’이 데리고 간 미용실은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한 재래시장 거리에 있는 곳으로, 재미있게도 이름이 ‘김치 미용실’이었다. 이름을 보고 한국인이 하는 곳인가 싶었지만, 전혀 한국과는 연이 없는 베트남분이 운영하고 있었다. ‘짱’은 이 미용실에 꽤 오래 다녔지만 본인도 왜 미용실 이름이 김치 미용실인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내가 간 현지 미용실은 세 평 규모의 작은 동네 미용실이었다. 한쪽에는 세 개의 손님용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맞은편 벽에는 온갖 미용 도구가 담긴 큰 찬장들이, 마지막으로 공간 가장 안 쪽에는 머리 감는 세면대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작지만 갖출 거 다 갖춘 미용실이었다. 하지만 에어컨이 없는 곳이라 입구에 문이라고 할 만한 것 없이 완전히 뚫려 있었다. 사람들이 오며 가며 머리 하는 나를 볼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생전 처음 해 보는 머리 모양이 나올까 두려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타일을 부탁했다. 머리는 그냥 일직선으로 자르고, 층과 숱은 그대로 둬 달라고 했다. 부쩍 흰머리가 늘고 있던 터라 탈색 없이 할 수 있는 밝은 색으로 머리 전체 염색도 부탁했다. 염색약을 헹구기 위해 머리 감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뒤로 젖혔다. 미용사가 열심히 머리를 감겨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의 젖은 손이 목 뒤를 통해 등으로 훅 들어왔다. 내가 등을 대고 누워 있어 손을 넣기도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든 목 뒤로 손을 구겨 넣었다.
같은 동성끼리의 성추행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옷 속에 들어간 손이 등부터 목 뒤까지 훑으며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이것이 마사지라는 걸 깨닫고 몸의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머리 감다 말고 젖은 손으로 해 주는 게 불편했지만 불평을 하기에 그 마사지가 너무 시원했다. 한국에서도 간혹 미용사 분들이 샴푸를 해 줄 때 간단한 두피 마사지를 해주는 일이 있다. 그런데 여기는 두피뿐만 아니라 목 뒤, 등 윗부분까지 손님 머리 위에서 손이 닿는 곳에 한해 전부 마사지를 해줬다. 체감상 10분이 훌쩍 넘을 정도로 마사지가 계속되어, 머리는 언제 끝나는 것인가 궁금증이 생길 때쯤, 이번에는 그녀의 양손이 내 얼굴을 감쌌다. 갑자기 얼굴이 훅 덮쳐지니 너무 놀라 몸이 움찔거렸다. 이번에는 세수까지 시켜주는 모양이었다. 아니, 세수가 아니라 거의 빨래 수준이었다. 얼굴 피부라 부드럽게 문질러 줄 걸 기대했지만, 밖에서 흙먼지 뒤집어쓰고 놀다 들어온 아이를 씻기듯, 무자비하게 얼굴을 빡빡 문질렀다. 얼굴 때라도 벗기려는 것인지 집게손가락을 사용해, 코 양쪽을 엄청나게 비벼서 내 코라도 풀어주는 줄 알았다. 머리를 뒤로 젖히고 앉아 있어서 거친 미용사 손길에 물이 코로 들어가고 입으로 들어가고 난리도 아니었다. 물에 빠진 것처럼 숨을 꾹 참고 있었기에, 얼굴 빨래가 끝난 후 참았던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가 세수도 안 하고 온 것처럼 보여서 얼굴을 씻겨준 것인지, 베트남 미용실은 도대체 머리 감을 때 어디까지 씻겨주는 게 보통인지, 얼굴은 깨끗해졌지만 그와는 다르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얼굴이 빨래질당하는 일은 있었지만, 머리는 주문했던 그대로 완성이 되어 만족스러웠다. 깔끔해진 내 머리를 보고, 거너도 같은 미용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다음 날 같이 가보니 이번에는 남자분이 혼자 일하고 있었다. 거너가 미용실 의자에 앉는 것까지 보고, 나는 근처 카페에 가서 음료를 마시며 기다렸다. 30분 후 등장한 거너의 얼굴 역시 혼란이 가득했다.
“나는 머리만 잘라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면도칼을 들고 오더니 말도 없이 수염을 다 밀어버렸어. 그리고 또 세수까지 시켜줬어! 그 미용사가 얼굴에 물을 끼얹으면서 막 문지르는데, 너무 놀라서 뛰쳐나올 뻔했어.”
눈은 동그래져서 입으로 ‘어푸퐈퐈퐈퐈’ 온갖 의성어를 쓰며 얼굴 씻김을 당했다고 표현하는 거너가 너무 웃겼다. 이 반응을 보고 싶어서 나도 일부러 말을 안 했던 것이다. 거너는 내가 놀랐을 때보다 훨씬 충격받은 얼굴로 카페에 와서도 몇 번이고 ‘오 마이 갓’을 중얼거렸는데, 그래도 외관은 놀라울 정도로 깔끔해진 게 보기 좋았다.
우리 둘 다 베트남의 첫 미용실 경험이 충격과 혼란이었기에, 앞으로 머리가 길어도 미용실을 멀리 할 줄 알았다. 놀랍게도 예상과 달리 우리는 미용실 가는 걸 즐기게 되었는데, 미용실에서 마사지까지 받을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베트남 미용실에서 샴푸를 할 때는 그렇게 두피, 목, 등 마사지가 포함된 서비스가 일반적이고, 그래서 미용실 메뉴판에 아예 ‘샴푸 플러스 마사지’가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걸 일종의 힐링 시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미용실에 가서 샴푸만 받는 것이다. 약 30분 동안 머리도 감고 편안히 마사지도 받으면 스트레스가 풀려 다시 오후에 일하러 들어갈 때 기분 전환이 된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미용실은 ‘머리 감는 의자’가 아니라 ‘머리 감는 침대’가 있는 곳도 있었다. 미용실 안에 있는 방 한 켠에는 세면대가 붙어 있는 침대만 여러 대 놓여있고, 거기서는 오로지 샴푸와 마사지만 해주고 있었다. 금액은 한국 돈으로 약 5천 원 정도였으니, 한국인 입장에서 가성비도 이런 가성비가 없었다. 베트남 문화를 잘 아는 외국인들은, 일부러 동남아 여행 때 미용실 예약을 잡고 온다고도 했다. 씻긴다기보다는 빨래당한다고 여길 정도로 거친 손길이지만, 이 또한 적응되면 그렇게 시원하고, 누워 있으면 생각나는 손길이다. 베트남 여행자들에게 고급 마사지보다는 가성비와 매력이 넘치는 미용실 방문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