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유튜브와 오디오 컨텐츠 도전기

by 라봇

베트남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여유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안일에 대한 강박감과 스트레스가 줄고, 자주 가는 마트, 카페, 식당도 생기면서 베트남에서의 ‘일상’이라는 패턴도 생겼다. 그렇게 시간이 남을 때는 이곳에서의 내 일상을 블로그에 기록했고, 더불어 베트남어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려 다녔다. 주로 다낭 시내를 같이 돌아다니는 건 함께 사는 거너였지만, 거너가 먼저 취직을 한 후에는 똑같은 백수나 다름없던 친구 ‘마리에’와 함께 했다.

하루는, 어차피 우리가 만나서 노는 거, 한국과 일본에서 온 두 외국인의 베트남 생활 영상을 기록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고 해도, 한국과 일본은 확연히 다른 생각 방식과 문화가 있다. 그에 따라 베트남에서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둘 다 비슷한 반응을 할 때도 있었지만 다른 대처 방식을 보일 때도 많아, 영상을 제작하면서 한국, 일본, 베트남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또, 나는 전에 1년 동안 방송 제작을 배우고, 잠깐이지만 실제 외주 제작사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다. 너무나 척박한 외주 제작사 환경에 결국 병을 얻어 관뒀지만, 온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으며 배웠던 촬영과 편집일이 종종 그리웠다. 마침 내가 편집 방식도 알고 있고 하니, 그다지 힘들지 않을 거라고 마리에에게 제안하자, 그녀는 심심해하던 차에 잘됐다며 바로 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유튜브 콘텐츠 회의라는 거창한 핑곗거리로 우리의 ‘노닥거림’이 늘어났다.


우리는 그냥 이야기만 하는 영상부터, 먹방, 베트남 가게, 집 구조 소개 등 중구난방으로 여러 주제의 영상을 찍었다. 한식이 당길 때는 한식당으로 가서 ‘마리에’에게 막걸리, 미역국 등의 음식을 소개하고, 고기쌈을 싸 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을 만들었다. 귀여운 동물들이 보고 싶은 날에는 베트남 애견 카페를 소개한다는 핑계로 사심을 채웠고, 동생이 놀러 오면 또 그 핑계로 식당에 가서 베트남 해산물 요리 영상을 찍었다. 딱히 갈 곳이 없는 날에는 마리에가 우리 집으로 오거나, 내가 그녀의 집으로 가서 핸드폰을 켜 두고, 그 앞에서 하나의 주제를 정해 한국과 일본의 차이에 대해서 떠들었다.


촬영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게 궁리하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아니었고, 영상을 빌미로 가고 싶은 곳에 가거나 하고 싶은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으니, 그냥 친구와 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곱 개의 영상을 끝으로 더 이상 유튜브를 만들지 않았는데, 첫 째는 편집 스트레스였다. 겨우 10분짜리 영상을 만드는데도 편집하고, 자막 만들고, 썸네일 만드는 데 하루 종일 걸렸다. 그 이상의 긴 영상은 편집만 이 삼일은 기본이었다. 유튜브 편집을 하면서, 한 달에 하루도 못 쉰 채 편집 때문에 매주 며칠 밤을 새우다 병을 얻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하니 손이 익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더 이상 일이 아니라 재미로 하는 건데도 편집 노가다의 강도는 여전했다. 그래도 만드는 재미가 있어 마리에만 괜찮다면 더 오래 해보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마리에가 다낭을 떠나, 우리 두 사람의 유튜브 도전기는 강제로 막을 내리게 됐다. 다낭에서의 취직이 너무 어렵자, 결국 일 할 곳이 많은 하노이로 간 것이다. 마리에가 없어도, 거너와 같이 유튜브 채널을 이어갈까 생각도 했지만, 이상하게 마리에가 가버리자 유튜브에 대한 열정도 재미도 그녀와 함께 멀리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새로운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었는데, 콘텐츠 창작자를 늘리기 위해 일반인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오디오라면 훨씬 편집이 쉬우니 해 볼만하다고 여겨, 거너와 함께 대충 샘플을 만들어 지원했고, 초기 콘텐츠 제작자에 합류하게 되었다. 오디오 플랫폼에서는 나의 일상보다는 베트남 생활 정보를 중심으로 제작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생활비 내역이나 치안, 외국인이 알아야 하는 베트남 법, 여행자를 위한 쇼핑 정보 등이었다. 베트남 생활의 장, 단점이나 개인적으로 겪은 경험을 얘기할 때는, 나의 입장과 거너의 입장을 나눠서 얘기했다. 한국어도 쓰긴 했지만 영어가 더 편한 거너는 주로 영어로 녹음을 했고, 말이 끝나면 내가 한국어로 간단하게 해석해 덧붙이는 형식으로 만들었다. 이 오디오 콘텐츠를 위해 탁상용 녹음 전문 마이크도 구매할 만큼 하는 동안 즐겁게, 나름 열심히 했다.

목소리만으로 전달하니 사전에 미리 내용을 계획하는 것도 쉬웠고, 신경 쓸 일이 훨씬 적었다. 무엇보다 내 목소리나 콘텐츠 정보가 마음에 든다는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 기분이 좋아, 그 원동력으로 준비했던 만큼의 녹음을 문제없이 끝낼 수 있었다. 수입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본 것 자체가 큰 즐거움과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꼭 외국 살이를 해야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베트남에 있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안 해봤던 걸 해 볼 마중물이 된 건 사실이다.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많았으니 이것저것 관심을 가져보기에도 최적의 조건이었는 데다, 내가 느끼는 이곳에서의 낯섦과 신선함을 무언가로 남기고 싶었던 마음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그 마음에서 이어진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대단한 게 아니어도, 또 주목할 만한 결과물이 나오는 게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환경을, 스스로에게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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