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면 총을 빼놓을 수가 없다. 미국의 상징이 되어버렸다고 할 정도로 이 나라는 총기를 제외하고 말할 수가 없는데, 그렇다 해도 실제 살아보기 전까지 이 정도로 일상에서 총과 함께 하는 곳일 줄은 몰랐다. 제일 처음 놀랐던 건, 대형 프랜차이즈 마트인 ‘월마트’에 장을 보러 갔을 때다. 채소코너, 고기코너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 쪽에 총기 코너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우유 한 병을 사듯, 마트에서 쉽게 총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어 장 보러 갈 때마다 신기하게 쳐다봤다.
총을 보는 게 처음은 아니다.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 덕에 우리 집에는 진짜 권총이 있었다. 커서는 국내에 있는 사격장에 몇 번 다니면서 오히려 사격에 재미를 붙이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미국처럼 일상에서 총을 마주하는 건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일이었다. 머리맡에 총알이 장전된 권총을 두고 자는 것도 그랬고, ‘건쇼’라고 부르는 총기 박람회에 가는 것도 그랬다. ‘건쇼’는 정말 별세계로, 총은 당연하고 총기와 관련된 온갖 물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총이란 총은 다 모아둔 것 같고, 나는 가히 상상조차 못 하는 이상한 총기 액세서리도 넘쳐난다. 성인만 출입이 가능할 것 같은데도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도 많으며, 심지어 부스를 차리고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도 아이를 데리고 하는 걸 봤다.
미국인이라고 전부 다 총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거너는 총을 좋아하는 남부 시골 남자다. 그런 남편을 둔 덕에 나도 덩달아 여러 종류의 총기를 구경 하고 사는 데다 집에는 그것들을 위한 공간까지 따로 있다. 간혹 누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할 게 없어 사격장으로 데리고 가는데, 미국 사격장은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에서는 혹시나 있을 사고를 대비해 방탄조끼를 입고 총구는 다른 방향으로 돌리지 못하게 양쪽에서 끈으로 잡아놨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격장에 갔을 때 그걸 본 거너는 너무 웃기다며 한참 웃었다. 당시에는 안전을 위해 이렇게 해 두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뭐가 웃기는지 몰랐는데, 미국 사격장에 가보니 보이는 풍경이 사뭇 달랐다.
일단 미국 사격장에는 개인 총과 총알을 가지고 간다. 저마다 자기 총을 가지고 있으니, 굳이 사격장에 가서 총기를 빌릴 필요가 없다. 총알은 일회용이니 부족하면 가게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사격장에서 빌려주는 건 눈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 안경과 청력을 보호하기 위한 헤드셋이다. 방탄조끼 뭐 그런 거 없다. 그냥 알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쏘지 않겠거니 믿어야 한다. 개인 총으로 사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처럼 총기를 양 옆을 묶어 두는 일도 없다. 만일 누구 하나라도 정말 나쁜 마음을 먹으면 순식간에 옆에 있는 사람에게 총을 겨누는 건 일도 아니다. 너무나 ‘프리한’ 사격장 풍경에 놀라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총이 지천이니 서로 조심하게 되는 것 같아 오히려 안전해 보이기까지 했다.
미국이라고 사실 총기를 아무 데나 들고 다니는 게 합법은 아니다. 집에 총기를 휴대하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주에 따라 총기를 휴대하고 이동하는 건 허가증 같은 게 필요한데, 안전 관련 수업을 듣고 간단한 시험만 보면 어렵지 않게 딸 수 있다. 당연히 거너는 총기 휴대 허가증을 진즉에 딴 후 차에 넣고 다니는 상태고, 나에게도 허가증을 따는 걸 요구했지만 굳이 나까지 늘 총을 갖고 다녀야 하나 싶어 미루고 있는 상태다.
우리 동네는 위험한 곳은 아니라고 되뇌어도, 그래도 미국에 온 이후로 밖에서 ‘탕 탕’ 소리가 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었다면 신경도 안 썼겠지만 여기에선 이게 총소리인지 뭔 소리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집에 총알이 굴러다니는 건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데, 도무지 이 탕탕 소리는 실체를 알 수가 없어 적응이 어렵다.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총기 규제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거의 매일 같이 총 때문에 죽고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는 지금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거 보면, 미국에서 총기 규제법을 만드는 건 북한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규제를 한다 해도 어떻게든 암암리에 거래가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에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확실히 미국에 살면서 총기와 완전히 멀리 하는 삶은 어렵다는 걸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