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미국 집으로 놀라웠지만, 워낙 시골이라 관광할 곳도 할 것도 없었다. 양조장 투어를 다녀온 후 달리 갈 곳이 없어 내가 친구를 데려간 곳은 10분 거리에 있는 시댁이었다. 시어머니는 회사에 나가셨고, 평일 낮 시간에 집에 있는 사람은 시아버지와 시동생이었다.
시댁에 간 이유는 말 그대로 갈 곳이 없어서기도 했지만, 집에 TV 연결도 안 해 놔서 친구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유튜브를 켜 놓고 춤을 추는 걸 보고 시댁이라도 데려가야겠다 생각했다. 시댁에는 친구가 환장하는 귀여운 강아지도 두 마리나 있고, 무엇보다 한국의 일반 가정에서 보기 힘든 재미있는 물건이 있다.
시아버지는 내가 친구를 데리고 가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흔쾌히 오라고 하셨다. 비가 와서 약간 쌀쌀해진 공기를 느끼며 시댁 집으로 들어섰다. 시아버지는 우리에게 안방을 내주셨는데 이유가 있었다. 이 집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놀이를 하기 위해서다.
시부모님 집에는 영어로 ‘페티오’라고 하는 뒷테라스 같은 곳이 있다. 바닥은 시멘트로 깔려 있고, 원형 식탁과 의자, 바비큐 기계를 두었으며, 그 주변으로는 단단하고 촘촘한 방충망 형식의 벽으로 삼면을 감싸, 잔디가 있는 뒷마당과 공간을 분리했다. 반 야외 형식이기에 실내에 있는 듯한 이점을 누리면서 바깥 바람을 쐴 수 있어, 내가 이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 페티오에는 우리 집에서는 누릴 수 없는 거대한 물건이 있는데, 바로 ‘hot tub’이라고도 부르는 ‘온수 욕조’다.
오래전 시부모님이 이 집을 구매했을 때, 같이 딸려 있는 시설이라고 했다. 많게는 네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에 한 번 물을 받아두면 늘 37도에서 40도 정도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제트 스파 기능이 있어 버튼을 누르면 분출구에서 강한 압이 쏟아져 나와 마사지 효과도 누릴 수 있는데, 집에서 이런 온수 욕조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반해버렸다. 한국에서는 아파트에 살면서 욕조에 물을 받고 반신욕은 가능했어도, 바깥에서 찬 공기를 쐬며 온수 욕조를 즐기는 건 상상도 못 해봤기에, 땅 덩어리 넓은 미국이라 이런 게 가능하다는 건 참 좋아 보였다.
온수 욕조를 즐기기 위해서는 수영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안방에서는 거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페티오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고, 화장실도 따로 달려 있으니, 거기서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바로 밖으로 나가 온수 욕조를 즐기라는 게 시아버지의 배려였다. 그래서 나와 친구에게 안방을 자유롭게 쓰라고 내어 주신 것이다. 친구와 옷을 갈아입고 페티오로 나가보니, 혹시나 나와 친구가 불편해할까 봐 거실에 있는 블라인드도 전부 내려서 아예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주셨고, 커다란 타월도 두 개 욕조 옆에 놔두셨다.
비가 와서 약간 쌀쌀해진 온도를 느끼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끈한 물속으로 들어가는 건 극락이 따로 없었다. 말 그대로 야외 온천이었다. 친구는 장시간 비행으로 딱딱해진 근육이 풀린다며 턱 끝까지 몸을 담갔고, 나는 제트 스파 버튼을 누르고 온 몸으로 전해지는 진동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몸이 퉁퉁 불어 수영복 바람으로 찬 바람을 쐐도 오히려 시원함이 느껴졌을 때 비로소 욕조를 나왔다.
내가 아는 온수 욕조는 ‘심즈’라는 게임 속에서 캐릭터들이 즐기는 게 다였는데, 실제로 집에서 이런 걸 즐길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비록 이것 말고는 여행 온 친구와 같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온수 욕조 안에서 콧노래를 부르는 친구를 보고서 시댁에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성공적인 시댁 투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