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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스 Mar 31. 2022

0.003  낮게 임하소서

한 평만큼의 세상 03



어떤 곳을 들어가면 천장을 올려다본다.

직업병이다. 물론 공간을 살피는 건 천장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것을 의식하는 것은 장소와 공간을 덮고 있는 것이 지붕이면서 곧 천장이기 때문이고, 이것이 내부 공간에 주는 영향은 한계 짓기가 어려울 만큼 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교회의 천장은 깊고 높다.

창조주가 어디 즈음 있을 거라는 걸 암시하는 것과 동시에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 가져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을 일깨워 준다. 공간이 주는 기호학적 메시지가 아주 효과적인 건축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한 천장의 구조는 그 자체로도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지니는데, 대체로 고딕 양식이거나 간혹 로마네스크 양식인 경우들이다.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발전하면서 건축술의 한계와 한계 속에 발전할 수 있었던 양상이 종교적 성취와 맞물리며 절정을 이루었다.


높고 깊음은 종교적인 마음을 블러 일으키고 유지하는 것에는 꽤 성공적인 것 같다.

동시에 신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좀처럼 좁혀지지 못한 것 또한 그 높고 깊음이 한몫한다. 수천 년 동안 그래 왔다. 공간이 사람의 생각과 의식을 지배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시대정신과 패러다임과 같은 얘기도 할 수 있지만, 인간의 내면이 오랜 세월 그것에 지배된 상태로만 살아왔다고 얘기한다면,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높고 깊은 것을 앙망하는 마음이 컸던 그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우리 인간의 내면 한쪽에는 내가 지금 서있는 낮은 위치에서 함께 하는 신에 대한 욕구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공간적인 메시지가 던져주는 것에 지배되는 것이 컸지만, 사회 제도 속에 눌려 있던 개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오던 것들이 이제는 좀 어깨를 펼 때가 되었다. 사실 이미 그런 시대를 살고 있긴 하나, 우리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게 클 수도 있다. 여전히 공간이 지배하는 힘은 크니까.


해서 난 천장을 올려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참 아름답다. 여느 고딕 성당과 또 다른 감각이 숨어있네. 아름다운데 좀 가까이 내려와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카메라의 줌을 당기는 것뿐이었다.


들어간 곳은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에 있는 성 요한 교회(Eglise Saint Jean de Montmartre)이다. 언덕 위에 있는 사크레 쾨르 성당과 비슷한 시기(성 요한 교회가 조금 빠르다. 1900년/1914년)에 지어졌음에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위치가 소박하고 지어진 재료가 소박하고 외부와 내부가 소박해서일까. 근데 난 거기에 천장까지 낮은 곳으로 내려오라고 당겼으니 지나친 게 아니었나 싶다.


언덕을 오르기 전 길 한쪽에 있는 것이 보였고 동네의 작은 성당 같아 아무런 생각 없이 들어갔다. 나그네는 이렇게 불시에 들어와 뜬금없는 요구를 한다. 나그네 시선이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줬으면..


생장 드 몽마르트르 교회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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