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뒷담화 01
커피포차.
5년 더 된 것 같은데 이렇게 방치해 두었다.
영화에서처럼 도시를 누비는 트랜스포머가 되게 해 주겠다 약속하고 만들기 시작했는데 변신도 못한 상태로 잠자고 있다. 뭔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멈췄다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린다.
이것들 미안하네..
최근 가족들 스마트워치 사용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난 아직 없다. 요즘 어떻게 나오고 있나 궁금해서 애플워치 공식페이지를 들어가서 봤다. 디스플레이와 시계 본체가 많은 것을 담으면서 단순화하려는 디자인의 노력이 보였는데, 밴드 디자인도 그것들 못지않았다. 전체를 봤을 때 크게 다루는 것이 소재와 컬러인데 소재가 주는 그 자체의 감성이 있고, 이것이 컬러와 만났을 때 주는 효과는 한 단계 더 증폭되는 것 같았다. 여기에 나이키, 에르메스 같은 브랜드 조합이 더해지면서 그들만의 영감, 철학, 전통, 가치는 그들만의 추구하는 소재, 컬러, 마감으로 표현되고 이것이 스타일이 되고 상품화되어 소비자들 선택지를 넓게 해주고 있다.
이걸 보다가 예전 커피포차를 디자인했던 게 생각났다.
커피를 팔고 난 후 클로징타임에는 다시 접히고 정리돼서 마치 상자 속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된 것 같은 모습을 한다. 도시의 가로에 세워뒀을 때 선물상자가 된다. 낮에 비축해 둔 에너지로 조명이 켜지면 가로 경관에 무언가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상자 속 컴포넌트들은 소재와 컬러가 제각각이다. 포차 주인 마음이다. 주인은 포차가 위치하는 장소와 상대하는 손님들에 따라 자신만의 포차를 꾸밀 수 있다. 손목에 감긴 그것이 그날 기분과 용도에 따라 디스플레이가 바뀌고, 목적에 따라 밴드를 바꾸어 착용하는 것처럼, 때로는 본체에 새로운 케이스를 씌우는 것처럼 커피포차도 그렇게 사용된다. 이 또한 한강공원에 있으면 나이키일 수도 있고 청담동 거리에서는 에르메스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읽고 있는 것들을 통해 느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사람이 직접 관계하는 수많은 디바이스들, 일하는 도구와 노는 도구들, 심지어 생활소품화 되어가는 자동차들은 계속 변한다. 융합되고 새롭게 관계하는데, 이제 그것에 경계가 없다. 사물인터넷, 메타버스, VR, AR, 생성형 AI와 여기서 파생되는 수많은 도구들을 보면서 아... 종국에는 사람과 사물의 구분이 없어지는구나 라는 걸 느낀다.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전하고 어떤 역할을 하고 사람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은 (끝이 없는) 과정이고, 그 결과는 사람과 사물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고 사람과 환경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방치해 둔 이 커피포차들은 나로 인해 이렇게 취급받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와 대등한 무엇이 되어 있을 줄도 모른다. 그래서 긴장하고 있다. 이것들이 나중에 나에게 뭐라 할지..
미리 달래려면 나이키를 입혀야 하나 에르메스를 입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