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도심 쪽을 오면 청계천을 건너고 조계사 앞을 지나 광화문 앞을 돌아 세종로 한가운데서 버스를 내린다. 이날은 청계2가 교차로에서 내렸다. 약속 장소까지 가는 경로를 보니 청계천을 살짝 끼고 다니는 것 같아 그러기로 했다.
내게 금요일 저녁 약속은 잊힌 일상의 물건 같은 것이다. 여행 중 사온 잼을 냉장고에 넣어놓고는 유효기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묵혀놓은 것과 같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꺼내 먹을 수 있는 건데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유통기한이 지난 지가 한참 되고 나면, 손도 못 대고 버리지도 못하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매일 머무는 공간 어딘가에 박제되어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금요일 저녁 약속, 불금이다. 그러니 그런 걸 꺼내놓고 어찌해볼까 생각하는 날은 내 안의 각종 의지들이 규합되는 날임에 틀림없다.
버스를 내리고 지나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갔다. 찻길을 건너고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한화빌딩을 들렀다. 필요한 ATM기가 있는 곳인데 리모델링된 한화빌딩도 들어가 볼 겸 해서다. 예전 한화 프로젝을 했을 때 미팅하느라 들렀던 기억이 난다. 그땐 예전 버전이었다. 리모델링했다고 저널에 소개된 것을 봤을 당시.. ‘음.. 그다지….. ‘ 내 반응은 그랬다. 벤 판 베르켈이 했다지만 당시 계속 느끼고 있던 건 소위 동시대 거장이라 불릴 만한 아키텍트가 규모가 큰 건물을 만지면 왠지 감동이 덜했다. 한화빌딩을 수차례 지나치면서 시큰둥했던 이유다.
여하튼 이 날은 목적이 있으니 잠시 들러서 로비 분위기를 느끼고, 화장실이 궁금하니 들리고, 나오면서 로비 벽 마감이 궁금해 만져보고.. ‘어슬렁 건물 답사’는 겨우 이 정도만이다. 어차피 로비 이곳저곳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갈야 할 데가 있는데 여기서 시간을 보낼 이유도 없었다. 근데 또 내 발길을 잡는 건 늦은 오후 햇살.. 이게 어찌 그리 좋은지. 난 가을과 가을 겨울 걸치는 시점을 좋아하지만, 이 시기도 좋아한다. 정확히는 5월 하순의 오후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 그리고 6월의 저녁 일곱 시 전후다. 그러니 난 이곳의 시간과 장소를 도저히 그냥 건너뛸 수가 없었다. 길지 않은 경로를 걷는 동안 그 모든 걸 느끼고 담아야 했다.
청계천을 따라 광교와 청계광장이 있는 쪽으로 걸으면, 지고 있는 해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걷게 된다. 눈을 자극하는 강렬한 해를 나뭇가지들이 적당히 가려주는 것이 꽤 근사한 나만의 공간을 길 위에 만들어주었다. 내가 움직이는 보폭의 너비와 속도에 맞춰 가리고 열고를 반복한다. 어느 정도 걷다 보면 그 열고 닫는 리듬 위에 나도 모르게 내 걸음도 태우고 있었다. 이걸 좀 더 제대로 즐기려면 수표교나 세운교부터 걸어봐야 하나.. 내년 5월 이 즈음 이 시각 다시 나와 볼까.. 아님 곧 오는 6월 저녁 일곱 시 전후라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이날의 짧은 거리는 금세 마감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머릿속에는 다른 계산을 또 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오는 친구들이 5시 30분 정도부터 있겠다 했으니, 난 6시에 도착한다. 퇴근하고 올 서울 친구들이 7시 즈음 오기 시작할 테니 조용할 때 멀리서 온 친구들과 얘기 좀 나눈다. 이후 오는 친구들과 또 섞이면 되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또 의도한 대로 될 것을 상상하면서, 남겨진 시간들을 활용하는 것에 꽤 뿌듯해하고 있었다. 부러 여유를 부렸던 것이다.
그래서 평소 그냥 지나쳤던 보신각을 지금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한번 올려다 보고, 정확히 오후 5시 59분에 만나기로 한 건물 2층에 올랐다.
내가 방을 잘못 찼았나 했다.
15명이 들어간다던 방은 이미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인원에 맞춰져 놓인 의자는 이미 다 차고 몇 명은 의자를 추가해서 앉았다. 내가 문간 자리에 의자를 추가해서 놓고 앉은 게 그 방 입실 커트라인이었다. 소위 입시에서 하는 말로 문 닫고 들어간 운 좋은 녀석이 됐다. 그다음부터 오는 친구들은 따로 작은 방으로 가야 했으니.
4시부터 만난다고 했던 두 녀석도 있었고, 애초 작정을 하고 일찌감치 나온 녀석들도 여럿 있었다. 들어보니 이 집 평일 개점 시각이 오후 5시 30분이다. 모르기는 해도 아마 사장이나 직원이 셔터 올리기 전부터 문 앞에 죽치고 있었을 수도 있었지 싶다. 아주 이른 시각에 도착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나보다 늦은 친구들보다 이미 도착해 분위기에 한껏 취해있던 친구들이 더 많았으니 열기는 대단했다. 8시에 2차를 갔으니 그 열기는 식을 줄 몰랐고.
해서 그날 금요일 모임 제목이 정해졌다. ‘보복 동창회’라고. 코로나 2년 반 동안 누르고 있던 것들에 대한 한풀이 같은 게 작동한 거다.
만나서 얘기들을 들어보니 일찍 온 친구들 가운데 나처럼 다른 곳을 배회하며 약속 장소까지 나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교보문고에서 시간을 보내고 약속한 곳까지 여유 있게 도착한 친구며, 수원에서 당일 오지 못하는 친구와 만남을 따로 갖고 왔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초원 한가운데 먹잇감이 놓인 지점이 있고 모두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하이에나처럼, 우린 각자 머릿속엔 목표하는 곳이 이미 정해져 있었고 각자 자기 방식대로 잠시 시간을 벌고 또 죽이고 있었다.
불금의 시간을 향해 나아가는 각자의 발검음은 여름 초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누구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 위를 내딛는 발걸음 같은, 가벼우면서도 신중한 그리고 생경하면서 엉뚱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그렇게 어슬렁거리기에 날씨는 더없이 훌륭했으니 모든 게 우리를 위해 준비된 하루 같았다.
부산에서 세 명, 세종에서 한 명이 올라왔다. 이 들이 다음날 토요일 부산으로 돌아갔는데, 이날 함께 했던 서울 친구들 몇몇은 부산을 또 내려갔다. 일요일 아래 세 기수와 모교에서 체육대회를 하기로 했는데, 거길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대단.. 정말 대단하단 말밖에. 제대로 한풀이하는 모습에 한참을 웃으면서도 추억을 더듬으며 가능하면 함께 하려 애쓰는 친구들이 애틋했고, 나중을 위해 새롭게 추억을 만들어놓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금요일 꽤 늦은 시각 난 명동 입구까지 걸어가 용인으로 내려가는 버스에 겨우 올랐다. 버스 안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단톡방에 구구절절 모두 수고했다는 글을 남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