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폼기버 / FORM-GIVERS 에 관한

디자인뒷담화 03

by 폴스


#디자인뒷담화


[장소에서 얻는 메시지가 폼기버 / FORM-GIVERS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소고]



최근 설계사들 홈페이지를 잠깐 보다가 세종아트센터 생각이 나서 디엠피 홈페이지에 들었다. 벌써 12년 전인 것 같다. 세종아트센터 국제공모에 참여한 지가.


당선작이 발표된 후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가 떨어졌다는 것과 당선작은 그 무엇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함께 작업하던 팀원 중 외국인(?) 한 명은 당선작 발표를 보고 오더니 "팀장님! 아니.. 지난번 컨셉에서 스케치하신 거던데 어떻게 그렇게 같을 수 있죠?.."

(당시 난 어쏘 파트너였지만 아이아크는 호칭을 대수롭지 않게 사용했었고, 과거 팀장이었던 적이 있었으니 계속 주욱.. 팀장으로 불렸다. 소위 엿장수 맘인데 직원들이 다 엿장수였다는..ㅋ )

나도 놀라긴 했지만 아닌 척하며 뭐라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대충 동시대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각이 비슷하니까.. 굳이 말하자면 패러다임 같은 게 있는 거지 라며..


세종아트센터 국제현상공모 제안 작업. 컨셉 구상을 하던 몇 가지 안 가운데 하나다.


세종아트센터 조감 뷰 (출처. dmp 홈페이지)


세종아트센터 거리 뷰 (출처. dmp 홈페이지)


작업 초기 내 머릿속엔 세 가지 디자인 스킴이 있었다. (ALT를 여러 개 만들지는 않는다. 그런 과정, 즉 수많은 대안 양산 방식의 접근을 싫어한다. 이 경우는 ALT 이전에 간단한 스킴 단계인데 평소 이런 스킴을 대안을 펼쳐 놓듯 내놓지는 않는다. 그냥 내 안에서 여러 스킴 가운데 하나를 정하는 과정을 거친 후 하나를 내놓고 나머지는 덮어버리니까.. 근데 이때는 생각하고 있는 걸 최대한 전달해 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 머릿속에만 두지 않고 스케치와 모형 어떤 방식으로든 간단히 기록을 남겼다. 세 가지 생각을 긁어모은 것을 당시 미국에 머물고 계시던 유걸 선생님께 보내드렸다. 그중 하나에 유독 관심을 보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안은 아니다.


그러고 나서 안은 선생님이 제안하는 안으로 진행했다. 지금 생각해도 선생님 안이 좋았고, 선생님 사무실에서 선생님 안으로 리드해 가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다. 단순한 직사각형의 박스를 대지 위에 띄워 놓았는데, 인공물인 건축을 자연의 대지에 애써 섞어 놓으려는 어설픈 작위적 몸짓보다는 차라리 이처럼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게 낫다 생각했다. 그 사이를 사람들이 오가며 채우도록 하는 것이 자연에 도시가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방식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생각한 것이다.


과거의 스케치를 소환하고 남의 사무실 작업을 끌고 와서 하는 얘기가 이리저리 같은 생각을 했네 라며 상황을 펼쳐 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팀원 앞에서 얘기했을 때는 비슷한 환경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럴 수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학생 때 인용이나 참조는 수없이 했어도 정확히 정독했는지는 기억에 없는, 크리스티안 노르베르그 슐츠 / Christian Norberg-Schultz 의 '장소의 혼 / Genius Loci' 를 떠올렸다. 그것에 대한 이해가 내 머릿속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명확히 규명할 수는 없지만 패러다임 얘기보다는 난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 패러다임을 얘기하는 것은 하고픈 얘기를 보다 넓은 영역에 맞기는 것이라면, C.N 슐츠의 장소의 혼은 영역을 좁혀 땅에 대한 소위 '케바케'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 본 것이다. 장소를 생각하고 거기에 건물을 구축하는 문제에서 말이다. 나는 항상 땅과 장소가 갈망하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건축가로서 설계하고 제안하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이런 경우는 두어 번 더 있었던 것 같다.

그중 기억나는 것은 내가 직접 관여한 프로젝이 아니었다. 사무실 내에서 다른 팀이 진행하고 있었다. 모든 프로젝은 계획 과정에서 디자인 리뷰를 두 번 정도 거쳐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사무실 구성원들은 자신의 프로젝이 아니어도 관심만 있으면 참여해서 내용을 충분히 공유받곤 했다. 평소 작업공간은 핀업된 작업물들이 항상 공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따로 시간 내어 관심을 갖고 볼 수도 있었다. 나 경우 보면서 머릿속 정리 되는 것이 있다든가 무언가 잡히는 게 있으면 스케치를 해놓곤 했다.

이 또한 그랬다. S기업의 패션 계열사 플래그십 스토어 빌딩 신축으로 지명 현상설계에서 제안하는 것이었다. 난 그것에 대한 생각을 작은 수첩에 스케치를 해놓고 묵혀두었다.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작업 결과물이 제출되었고, 곧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굉장히 볼드한 음각과 양각이 수직으로 반복되는 매스였는데, 스케치한 것 또한 그랬다. 나중 사이트 앞을 지나갈 일이 있어 보았는데 기업 사정이 있었던 건지 실행되지는 못한 것 같다. 당선작은 '운생동' 작업이었다.


땅이 갈망하는 것

난 이 하나의 주제만으로도 참 할 일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말이다. 건축이 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 다양한 분야가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다. 땅이 갈망하는 것에 반응한다는 것에는 그것에 직접 해당하거나 파생되어 일어나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그에 비하면 극히 제한된 영역에서 건축은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그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 생각했다. 건축이 그 일을 해주니 생색낼 일이 아니라, 그 일에 관여할 수 있게 여지를 남겨두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생각했다. 땅은 그런 곳이다. 땅이 품고 있는 오랜 기대를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장소의 혼을 구축되는 무기물을 통해 살아나게 하는 것이라 믿는다.


같은 땅, 같은 장소에 같은 제안을 할 수 있는 것은 특정인들의 예지력의 규합이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모범 답안 같은 것이 있을 리 또한 만무하다. 타인이 어떤 생각으로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반응하고 제안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얘기도 제한적이다. 그것은 무엇이다라고 규정하기에 앞서 그 땅과 장소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각자가 반응했을 뿐이다.


이 즈음에서 나는 땅이 주는 메시지, 장소가 주는 메시지가 폼기버 / Form-Givers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아크는 비공식적으로 SDG(Sustainable Design Group) 와 DCG(Design Computation Group) 를 운영하였다. 내부에서 합의된 바는 없지만, 나는 그 둘의 궁극적인 목적이 Form-Givers 를 찾아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는 기후환경적인 요소에서 다른 하나는 컴퓨터를 통해 제공하거나 만들어내는 매개변수 / parameters 를 통해서이다. (15년 전에 운영했으니 상당히 앞서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이제 AI, AGI가 개입되었으니 앞으로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를 통해 건축화된 형태를 생성하는, 또는 그것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을 찾아내고 활용하는 것을 탐구했다.

땅과 장소에서 얻는 것은 계량화된 것도 아니고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따져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폼기버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 놓고 이렇게 즉답을 해서 미안하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세종아트센터와 몇 가지 경험들을 통해 보는 것은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땅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있고 그걸 알아채는 이도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할 수는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땅을 의인화시켜 그들에게 끊임없이 답을 구하는 것이다. 묻고 또 묻기로 했다.

"그래 어떻게 해주면 좋겠니?.."



(오해가 있을까 해서.. 현상설계에서 당선작이 그것의 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일 수도 아닐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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