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준비하라!
나는 좀비가 나오는 영상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피칠갑을 하고 뼈와 이를 드러내고 초점이 없는 눈의 좀비들이 '으' '아' 거리며 건들건들 대는 것을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연치 않은 기회에 좀비에 대해 알아봐야 할 일이 생겨 일주일 연속 워킹데드와 좀비 영화와 자료를 뒤적거리다... 모아 놓은 자료를 정리해 본다.
좀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좀비에게 물린 사람이 죽었다가 좀비로 부활하던지 좀비에게 물린 후 짧은 시간 안에 좀비로 변한다. [워킹데드]의 경우 좀비에게 물린 후 사망하고 고열이 동반되며 좀비로 변한다. 좀비가 되면 주로 언어능력이 소실되고 냄새와 소리에 민감해진다. [워킹데드]에서는 좀비가 되는 과정의 뇌 이미지를 보여주었는데 좀비에 물려 사망을 하고 좀비 병원체가 간뇌 만을 활성시킨다. 근육 경련이 일어나고 무감각 및 근육 상실을 동반해 뼈만 앙상하게 남고 이가 훤히 드러난다. 눈은 초점을 잃고 운동성은 저하되나 먹이 앞에서는 공격적으로 변한다. [월드워 Z]의 좀비는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다. 수많은 도서, 영화, 드라마에서 그리는 일반적인 좀비의 특성은 이렇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좀비들은 각각의 창작물에 따라 다양한 특성들을 지니고 있으며, 코믹 작가인 제이슨 탐슨은 무려 350가지의 좀비의 계통수를 그림으로 그렸다.
좀비는 뇌만 살아있는 즉 선택적으로 뇌의 한 부분만 활성이 있거나, 뇌의 한 부분만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렇다 해도 지속적인 움직임을 위해서는 순환계가 역할을 해야 한다. 심장을 통해 혈액이 뇌에 공급이 되어야 뇌가 활성이 있을 수 있지, 좀비들이 먹이를 먹는다고 해서 순환계 없이 에너지가 바로 뇌로 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좀비의 먹이가 되어 좀비가 된 이들의 소화계는 없던데.. 먹이는 왜 먹는단 말인가? (배변은??) 좀비들은 걷기, 뛰기, 물기의 의도적 움직임이 가능한데 이 또한 뇌에 에너지가 공급되어야만 한다. 간뇌만 살아있다는 [워킹데드]의 좀비인 워커들은 오로지 활성이 있는 간뇌 조차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간뇌는 고통을 느끼고, 배고픔, 갈증 등을 조절하는데, 좀비는 고통을 느끼지도 못하며, 배는 늘 고프며 잠도 자지 않는다. 따라서, 뇌가 에너지를 받아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좀비는 살아있는 좀비가 될 수 없다.
영화와 드라마는 좀비의 출현을 질병 역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처음 시작이 어디었고, 무엇이 었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은 코로나 팬데믹 속에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좀비라는 것은 좀비와 같은 증상을 발현시키는 병원체의 감염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며, 감염 경로는 주로 "물기 BITE"로 인한 접촉이다. [월드워 Z]에서 주인공 빵 오라버니(브레드 피트)는 좀비와 싸우다 튄 혈액이 감염성이 있는지를 좀비가 뛰어들고 구조 헬기가 펄럭이는 와중에도 12초를 세면서 기다렸다. [워킹데드] 시즌 1 에피소드에서 워커들의 혈액이나 내장과 접촉해도 주인공은 살아남았다. 좀비랑 싸우면서 혈액만 튀었을까? 침도 튀기고 가까이 씩씩거리며 호흡도 하고 물리적 접촉도 했으나 감염되지 않는 것을 보면 호흡기 병원체이거나 혈액 매계 병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워킹데드]의 시즌이 거듭하면서 좀비에게 물리지 않아도 죽은 사람은 모두 좀비로 부활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인간이 좀비에 대항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자 좀비 수를 늘리기 위한 작가의 새로운 도전이었으리라. 이 과정에서 좀비 병원체의 진화가 일어났음을.. 작가는 좀비 병원체의 물기를 통한 물리적 감염 경로를 공기/호흡기 전파로 변화 시킴으로 모든 인간이 이미 좀비 병원체에 감염이 되었으며 죽음은 좀비 병원체를 깨우는 역할로 바꾸어 버렸다.
앞에서 좀비가 실존할 수 없는 과학적 이유를 들었으나... SF의 상상력을 동원해 끝까지 가보자.
그럼, 어떤 병원체가 좀비 증상을 나타낼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병원체라 함은 인체 내에서 해로운 증상을 일으키는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곰팡이 등을 일컫는다. 이 중에서 '물기'를 통해서 전염될 수 있고, 신경계의 이상을 나타낼 있는 병원체는 뭐가 있을까?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의 저자 맥스 브룩스는 그 병원체를 "솔라눔 solanum 바이러스"라고 가상의 이름을 붙였다. 솔라눔 바이러스는 전두엽을 파괴하는 병원체라고 하는데 많은 이들이 바이러스 중 강력한 후보로 "레비스 바이러스(광견병 바이러스)"를 꼽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숙주에 감염이 되어야 하고, 레비스 바이러스의 잠복기는 10일-12개월로 상당히 길다. 또한 광견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르는데 이는 좀비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설은 전염과 발병이 레비스 바이러스보다 빠른 인플루엔자와의 재조합설이다. 인플루엔자와 레비스 바이러스는 구조적으로 계통적으로 너무 많이 다르며, 유전정보를 자연적으로 공유할 수가 없으며 자연적 돌연변이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를 재조합하고 때로는 필요에 의해 다른 바이러스의 특정 부분을 삽입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바이러스 종류 이거나 유전자의 사이즈 등이 잘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다. 마이애미 대학의 Samita Andreansky 박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피와의 인터뷰에서 이 두 바이러스의 재조합 바이러스의 생산은 어마 무시하게 어렵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설령 이런 재조합 바이러스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인간의 생체나 자연계에서는 증상이 발현되는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이며 결국은 그냥 죽은 바이러스나 다름이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 후보는 기생충이다. 자연계에서 종종 좀비 생물로 등장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뒤에는 숙주를 조종하는 기생충이 있다. 예를 들어, 귀뚜라미는 수영을 못하지만 귀뚜라미에 감염된 약탈모충이라는 기생충은 귀뚜라미를 물에 뛰어들게 만든다. 음지에 사는 달팽이가 눈이 이상하게 변형돼 양지로 나와 있다면 ‘류고콜로디움 파라독섬’이란 기생충에 감염된 것이고, 결국은 새에게 ‘날 잡아잡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중 인간에게도 감염이 되는 것은 ‘톡소플라스마 곤데’이다. 이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를 피하기는커녕 고양이게 스스로 잡아먹히려는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톡소플라스마가 쥐의 신경계를 장악해 자신이 번식할 수 있는 고양이로 옮겨 가기 위해서다. 고양이의 내장기관에서만 생식을 할 수 있는 톡소플라스마는 고양이의 배변을 통해 수많은 알을 배출하고 그 알들이 인간의 입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는 감염경로 따른다.
톡소플라스마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인간의 면역계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임산부가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되었을 경우 태아로 수직 감염되는 경우가 50%에 달하고 유산의 위험이 있어 고양이를 키우는 임산부들은 고양이의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면역체계가 약화된 사람, 특히 후천적 면역 결핍증 환자는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경우 뇌와 관련된 심각한 증상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눈의 통증이 나타나고, 빛에 민감해지며, 폐에 감염이 될 경우 호흡곤란, 발열, 객혈 증상이 나타나고 호흡부전을 초래하기도 한다. 메릴랜드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4만 5788명이 낳은 아기의 톡소플라스마에 대한 항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여성의 자살률을 조사했더니,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53% 의 높은 자살률을 보였다. 스웨덴 연구진들은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사람의 면역세포에서 공포감을 억제하는 ‘GABA’라는 신경물질을 더 많이 분비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신경학적 이상 징후를 보이는 톡소플라스마는 좀비 병원체의 또 다른 후보가 된다. 그러나, 톡소플라스마가 신경학적으로 마인드 컨트롤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감염 경로나 감염의 속도 그리고 인간의 면역계를 뛰어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진화적 도약이 필요하다.
[워킹데드]에서 CDC를 시원하게 날려버린 후, CDC 홈페이지에는 좀비에 대한 글이 실렸다. 많은 미디어들이 좀비 대재앙을 질병 역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봤듯이 CDC는 [워킹데드]의 유행에 많은 이들의 “좀비 대재앙에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허리케인과 지진에 대비하는 대응 매뉴얼을 변형시켜 유머러스한 그러나 교육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http://blogs.cdc.gov/publichealthmatters/2011/05/preparedness-101-zombie-apocalypse/
좀비 재난 대응법은 허리케인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 재난에 대한 표준 절차를 따른다. 우선적으로 응급재난 키트를 준비해야 한다. 응급 재난 키트에는 1갤런의 물 한병, 상하지 않는 음식, 비상약, 도구(손전등, 칼, 테이프, 건전지), 라디오, 위생용품(표백제, 비누, 타월), 여분의 옷과 이불, 중요 문서 (면허증, 여권, 출생증명서 등등) 등 이 포함된다. 이렇게 응급재난 키트를 준비한 후에 가족끼리 모여서 응급상황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집 밖의 안전한 곳에서 만나고, 주변의 적십자 등의 응급구호시설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아두고, 집에서 피난 갈 수 있는 경로를 미리 계획해도 라고 조언한다. 사실 좀비를 홍수와 허리케인으로 바꿔치기하면 우리가 자연재해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떤 계획을 세워놔야 하는지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좀비가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CDC는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조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좀비가 감염된 도시와 주, 그리고 국제 협력기구들과 기술 지원 및 공조에 들어가며, 실험실 테스트와 분석, 환자관리, 접촉 추적 및 감염관리(격리)등이 수행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의 원인, 감염 (바이러스, 독소)의 원인과 감염 경로를 파악하고, 얼마나 쉽게 전염이 되며, 어떤 보호장비가 필요한지 (좀비는 잡지와 덕테이프가 보호장비였음), 전염을 막을 수 있는 백신, 치료제 등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응급상황이 발생할 시 응급대응팀 조직 및 훈련을 위해 리더십 훈련에 좀비 출현이나 외계인 출현의 시나리오도 등장한다고 한다.
위의 개인의 재난 대응과 CDC의 대응의 모습은 실제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코로나 초기 미국은 마트마다 휴지, 소독용품, 고기 등이 동이 났다. 실제 온라인 상에서 응급재난 키트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과학자들은 질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CDC를 비롯한 기관들은 응급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나섰다. 영화 [월드워 Z]에서는 용감한 빵 오라니가 벼랑 끝 비상한 가설을 세워 인류를 구한다. 좀비들은 건강한 숙주만을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에게 다른 병원체를 인위적으로 감염시키면 좀비 백신이 된다는 가설이다. 그의 무모한 도전은 성공했고, 좀비와의 전쟁, 박멸을 위해 노력하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상황들이 짧은 시간에 펼쳐진다. 영화의 시간은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빵 오라버니의 실험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선 다시 동물실험이 필요하고, 임상시험이 필요하고 백신이 나오기까지의 지난한 과정들이 지금처럼 행해져야 한다. 모르는 것에 대한 대응과 매뉴얼은 자연재난에 대한 매뉴얼이 좀비 대응에 100% 들어맞지 않는 것과 같다. 지속적으로 축척되는 연구 결과를 통해 적의 정체를 점점 더 알게되며 대응 매뉴얼도 수시로 변경된다. (사람들은 좀비와 싸우기 위한 무기에 대한 매뉴얼이 없는 CDC의 대응에 대해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ㅋㅋ)
현실적으로 좀비 대재앙은 인류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처럼 언젠가는 또 다른 무언가가 우리에게 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될 수도 있고, 전염병으로 인한 또 다른 팬데믹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빵 오라버니는 영화 마지막에 명언을 남겼다.
Be prepared for any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