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La fête de l'insignifiance》
근 몇 주간 제대로 글을 쓰지 못했다. 사실 쓰지 못했다기보다는, 몇 번을 썼다가 지웠다가 고민하다 때려치우기를 반복했다. 자꾸 힘을 들여 멋있게,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쓰려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자괴감을 느끼고 나서는 아예 집어치우고 싶어져 브런치는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힘을 빼고 적당 적당히 되는대로 휘갈겨 쓰고 아무 데나 집어던지는 식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참 웃기는데, 독서 모임 지정도서가 이 책으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지정도서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였는데, 다 읽고 나름대로 의견도 정리해 놓고 메모도 빡빡 해놓고 드러누워있다가 밴드나 한번 들어가 볼까 하고 봤더니 책이 바뀌어 있었다. 무려 모임 일주일 남겨놓고. 사실 내가 너무 늦게 확인한 거지만.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책이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이거 읽으면서 정말 기묘했던 게, 막 분석하고 이래저래 안 뜯어보고 싶은데 자꾸 보이더라. 소위 심리극(Psycho drama)이라 부르던가? 아무튼 그런 기묘한 요소들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내가 잘못 보고 있겠거니 하면서 적당 적당히 휙휙 넘기다가 마지막에 원제를 보고 머리를 한대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l'insignifiance... 직역하면 무의미지만, 풀어서 설명하면 "의미작용의 실패". 라캉이 말하는 무의식의 지점, 대상 a, 증상, 주체가 도래해야 하는 지점... 뭐 그렇게 설명하는 "진리의 장소"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서평에다 써놓은 아! 세상은 무의미해요 하는 그런 소위 공허하다, 헛되다의 감정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단어다.
다시 읽으면서 그런 심리극적 요소들을 다시 뜯어가며 보니 꽤 즐거웠음. 막 라몽이 다르델로-카클리크를 비교하며 "연애"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도, Lacan Séminaire 20 Encore - "Il n'y a pas rapport sexuel"의 맥락에서 해석해 보면 정말 그럴듯하거든. 끝없이 어머니를 증오하고 거부하고 튕겨나가면서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어머니의 배꼽을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Wiederholung) 알랭의 예시라던가, "파키스탄어"라는 것을 상징으로 지극히 분석가적인 담화를 이어가는 그.. 샤를과 칼리방이던가.
마지막에 뤽상부르 공원에서 세상의 무의미를 설유하는 라몽은 꽤 뜬금없었는데, 사르트르의 "구토"를 연상하게 되더라. 거기서도 그 로캉탱이 부빌 공원에서 나무뿌리 보고 토악질하다가 "무의미"에 대해서 깨닫게 되잖아. 물론 로캉탱은 굉장히 염세적인 방식으로, "개자식들" 운운하지만. 사실 이건 라캉도 "어차피 자아는 없다. 주체의 언어는 모두 타자의 언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에 충실하는 것이 삶이다"라는 식으로 "욕망의 윤리"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