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문제
https://www.youtube.com/watch?v=f8wKGwwz0fM
지금 약간의 흥분과 고양 상태에서 이 생각들을 잊지 않기 위해 쓴다.
한국에서 소위 라캉을 공부하고 도입하는 사람들, 특히 그것을 미학이 아닌 정신분석의 분야에서 도입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대부분 라캉을 원전 그대로 읽어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세미나, 에크리 등)
그렇지만 라캉을 처음부터 다시 돌아가면, 그것은 "다시 쓰여야" 하는 것이다. 애초에 라캉 역시 독일어로 된 프로이트를 프랑스어로 다시 쓰면서 시작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라캉을 서구권 언어에서 공유할 때는 대체로 서로 잘 들어맞았다. 그들의 언어는 말 그대로 라틴어에서 한 가지로 뻗어나온 친구들이고, 대체로 서로서로 의미나 어순들을 잘 공유하는 편이니까.
한국어는 완전히 다르다. 라캉이 세미나에서 일본어에 대한 편견("일본인에게 무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을 드러내는 것처럼, 애초에 라캉과 동양권 언어는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지 않으면 적용조차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어는 주체(Subject)가 사라진다. 우리는 말할 때, "무의식"적으로 "내가", "나는", "나를"과 같은 주어(Subject)를 빼놓고 말하게 된다. 한국인의 무의식에서 주체(Sujet)는 안개처럼 흩어져 무화되는 이미지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에게 "주체(Sujet)"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다. 한국인에게 주어란 대타자의 공기속으로 흩어져 편재하는 관념이다. 대타자라는 일자(一者, 하나-님)이 보증해주는 존재이기에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극단적으로 대타자에게 동화되려는 의지를 보이고, 타자를 확인하지 못할 때 극단적으로 우울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