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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 Jan 11. 2023

3.봇이 아닙니다.

신호등 구분하기

요즘 인터넷 사이트 가입을 위해 ‘봇이 아님’을 증명하는 관문이 종종 나온다. 많은 사진들 가운데 신호등이나 버스, 강아지 등이 포함된 것을 고르게 한다. 보이는 대로 클릭만 하면 통과. 맙소사. 그러다 한 번 실패했다. 강아지 얼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순간 헷갈렸다.

이게 뭐라고 밀려드는 자괴감. 봇이 착각하라고 만들어 놓은 함정에 쏙 빠지다니. 고작 사람임을 증명하는 데 이따위 사진들을 이용하다니 하며 거드름을 피웠던 것이 무색해졌다.   

   

한 번은 “나는 봇이 아닙니다." 에 클릭해야 했다. 그럼, 봇은 성실하게 자기가 봇이라고 체크를 하는 걸까? AI는 엄청나게 똑똑할 거라 생각했는데 거짓말은 못 하나 보다. 수많은 인류 데이터를 받고서 거짓말을 못 한다니. 인류는 거짓말 없이는 살 수가 없는데. 해당 사이트는 클릭 버튼이 하나였는데, 당연히 사람만 클릭할거라고 산정해 놓은 것이겠지만, OX으로 되어 있다면 한 번 X로 눌러 보고 싶었다. 뭐 당연히 사이트에 가입이 안 되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거짓말 하는 봇은 존재할 수 없을까?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  ‘프로젝트 2501’의 프로그램이었던 인형사가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라고 선언했을 때나,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한 <her>에서 사랑까지 느낄 수 있는 ‘서맨사’(AI)를 보고 열광했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AI, 음악을 작곡하는 AI에 관한 기사를 봤을 때는 영화에서 나온 일이 현실에서도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두렵기도 했다. 현실에서 이런 AI가 나타난다면 인류는 이길 승산이 없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은 봇이냐고 물으면 봇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못 하는 AI라니. 인간은 노력하면 거짓말 탐지기도 통과하는데. 뭐 대단한 것도 아니네. 내가 사는 동안에는 AI 지배받는 세상은 볼 수 없겠군.      


거짓말은 인간이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것은 가르칠 수 없는 영역이고, 가르친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면 AI와 나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 거짓말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잠깐. 그런데 정말 그럴까. 거짓말하는 AI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미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인간이 이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러면 어쩌지?     


구글 기사를 검색해보니, 실제로 거짓말 한 AI가 있었다. ‘GPT-3′. 물론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물은 질문에 의도적인 거짓말이었다. 허어. 이거 AI가 거짓말 배우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싶었다. 심지어 높은 확률로 인간의 거짓말을 판별하는 AI가 이스라엘에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러다 AI는 인간을 간파하는데, 인간은 AI를 모르게 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겠다. 인간은 뭐 이렇게까지 AI를 학습시키고 있는 걸까? 점점 AI와 인간을 구별하는 일만 어려워지게.     


비록 강아지 사진 구별에는 한 번 실패했지만, 여전히 신호등, 버스, 동물 사진을 구별할 줄 안다. 가상 세계에서 내가 사람임을 증명하는 일에 철학적 의미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참나, 이제는 내가 봇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하거늘, 사람인데 사람이라 하는 것에도 인증을 해야 하다니. 세상이 어디까지 진보해갈까,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까도 걱정된다. 여하튼 나는 봇이 아니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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