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 슈나이더 Kirk J. Schneider의 주요 저작 『역설적 자아 : 인간의 모순적 본성의 이해를 향하여 The Paradoxical Self: Toward an Understanding of Our Contradictory Nature 』(초판 1988, 개정판 1999, Humanity Books) 중 2장을 번역해 올린다.
그의 학문적 활동과 전기적 약력, 주요 저작에 대해서는 이전에 번역한 <키르케고르와 함께 한 나의 여정 : 커크 슈나이더>에 소개되어 있으므로 생략한다.
이 저서의 의의에 대해서는 롤로 메이의 헌사로 대신한다.
커크 슈나이더의 이 책이 지닌 두드러진 미덕은 저자가 피상적 낙관주의의 공허함과 패배주의적 비관주의 모두를 단호히 거부한다는 점에 있다. 그는 역설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를 수행한다.
이 역설은 폴 틸리히, 키에르케고르, 니체 등 여러 사상가들이 논해 온 삶의 역설이며, 우리의 ‘가짜 번영’의 시대 속에서 잊혀진 것이기도 하다. 슈나이더는 삶의 진정한 기쁨과 창조성이 바로 이 양극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오한 사유자들이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이 역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그의 동행에는 키에르케고르, 틸리히, 어니스트 베커 등 역사 속 수많은 사상가들이 포함된다.
이 책은 키에르케고르가 “오후 낮잠 중에 훑어보기에 좋은 책”이라고 부를 만한 유형에 속하지는 않지만, 우리를 삶과 심리학의 근본으로 되돌아가도록 요청하는 책이다. 이는 틸리히가 가장 근본적이라고 여긴 문구,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을 상기시킨다.
『역설적 자아(The Paradoxical Self)』는 특히 심리학이 그 고유한 소명으로 다시 돌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롤로 메이
롤로 메이가 말한 "심리학의 고유한 소명으로 다시 돌아가기"가 명확하게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울과 불안이 우리 시대의 감기라면,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의사가 준 처방전으로 약사가 조제해 준 감기약을 복용하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의 과학적 진단 기준으로 의학적 처방을 받게 되면 마음의 문제가 해결될까? 적어도 나에게는 주류 심리학과 심리치료가 현대인의 마음의 병에 대해 이러한 생리화학적, 물질주의적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스럽다.
"우울은 나의 가장 충실한 애인이다. 그러니 내가 우울을 사랑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이것이냐 저것이냐』)
키르케고르가 오늘의 우리에게 준 많은 가르침 중의 하나는 불안과 우울을 정신장애로 분류하고 우리의 삶으로부터 추방하고자 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이다.
오늘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가고자 하는 길, 묵묵히 걸어 나가겠습니다.
2장 간략 개관
커크 슈나이더는 심리적 병리 혹은 기능 장애를 기존의 정신의학적, 임상병리적 분류 대신에 '초수축'–'초확장'이라는 연속선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푸코의 통찰처럼 광기란 이성의 결여가 아니라 이성의 '한계'로 파악하고자 하며, 키르케고르가 말한 바, 의식은 파괴성과 창조성의 두 극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그러하다.
한 극단으로서 '초수축'이란 세계가 좁아지고 정지하며, 자아가 위축되는 방향의 병리이다. '우울'은 세계가 닫히고 선택 가능성이 사라지는 상태이며, '강박'은 지나친 세부 집중·경직성·의례화를 보인다. '의존'은 자기 가치와 결정 능력이 타인에게 과도하게 매여 있는 구조이며, '불안'은 정체성의 핵심 능력이 수축된 상태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삶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지점이다. '공포증'은 특정 대상이 비현실적으로 확대되며 시공간 전체가 왜곡되는 경험이고, '편집증'은 사회적 신뢰의 붕괴이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몸에 투사된 자기 가치의 급격한 축소로 나타난다. 이들 모두 초수축 병리의 공통점으로서 가능성의 차단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극단으로서 '초확장'은 기분·자아 이미지·행동이 조절되지 않은 팽창·분출 방향으로 기운 병리다. '조증'은 상승·폭발·허위의 높이에서의 부유로 나타나며, '자기애'는 근거 없는 자기 팽창과 대인적 착취성을 특징으로 한다. '연극성 성격'은 주목·조작·감정적 과장에 치우치고, '반사회성 성격'은 적대적 정동성과 위험 추구가 핵심이다. '과잉행동·충동성·자극 물질 남용'도 초확장의 변형이다. 이들은 현실적 기반 없는 확대라는 구조적 유사성을 갖는다.
두 극단의 혼합형은 '조현병'으로 대표된다. 조현병은 과도한 수축과 확장이 순환하며 세계·자아·시간의 구조가 해체되는 경험을 낳는다. '조현성·경계선 성격'은 이러한 혼합 구조의 덜 극단적 형태로서, 결속·흡수에 대한 공포와 분리·버려짐에 대한 공포 사이에서 흔들린다.
저자는 기능 장애를 '결함'으로 보기 보다는, 억압된 욕망·상상·자율성이 되돌아오며 창조성을 낳는 잠재적 자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병리는 정상과 단절된 예외가 아니라, 인간 실존의 '보편적 수축/확장' '잠재성의 과장된 표현'으로 재정의한다. 지금까지 살폈던 기능 장애의 극단들은 강제성·통제 상실·내적 압도감이라는 공통 구조를 가지며, 이러한 분석은 이후 장에서 전개될 역설적 자아와 창조성 논의를 위한 개념적 기반을 마련한다.
2장 심리적 기능 장애의 극단들
“광기, 그것은 하나의 지시이기 때문에, 매혹적이다 Madness fascinates because it is knowledge.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광기의 역사』
푸코의 작업에서 빛나는 진주와 같은 통찰이 있다면, 그것은 광기가 이성의 한계를 규정한다는 그의 흥미로운 주장이다. 키르케고르 역시 보여주었듯이, 의식의 수축적·확장적 극단들은 인간 잠재성의 파괴적 측면뿐 아니라 창조적이고 예지적이며 통찰적인 측면을 함께 드러낸다. 사이코 패스·자기애 narcissism·강박 obsessions 등은 피해야 할 결함일 뿐 아니라, 활용되어야 할 자원이기도 하다.
이 이론이 다소 감상적으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상학적 연구phenomenological research는 다른 합리적 결론을 지시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네 가지 관련된 자료가 있다. 첫째, 매우 창조적인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기능 장애을 겪는다. 둘째, 반대로 기능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 창조적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 셋째, 기능 장애의 극단은 기능적 극단의 경계를 규정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 반대는 아니다. 넷째, 기능 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가장 초월적 시민층transcendent citizenry조차 경험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더 많은 시공간적 변형을 더 오랜 시계 시간동안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제 광기의 변전vicissitudes of the mad을 서술하려 한다. 이 묘사는 포괄적이거나 공식적인 진단을 의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암시적이며, 향후의 경험적·이론적 연구, 그리고 이 책의 다음 장(章)을 위한 무대 설정의 성격을 갖는다. 여기서 나는 나 자신의 관찰과 더불어 다른 이들의 현상학적 관찰로부터 자료를 끌어왔다.
Ⅰ. 심리적 기능 장애의 묘사
이제 이어지는 논의는 역설 원리paradox principle가 이해하는 극단적 혹은 초수축(超收縮)hyper-constriction과 초확장(超擴張)hyper-expansion의 개념을 다룬다. 나는 이러한 용어 체계를 사용하는데, 그것이 신경증neurosis과 정신병psychosis의 구분보다 기능 부전적 행위의 연속성과 구조를 이해하는 데 더 유용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초수축과 초(超)확장에 관해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사항이 있다(진단적으로 필요하다면 각각 앞에 ‘경도mild’, ‘중등도moderate’, ‘중증severe’을 붙일 수 있다). 첫째, 이 둘은 거의 결코 단일차원적이지 않다. 수축과 확장은 거의 언제나 일정 정도 상호 침입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연속적 성격때문이다. 다시 말해, 확장은 일정 정도의 수축을 함의하고, 수축 또한 일정 정도의 확장을 내포한다. 그러나 때로 이러한 상호침입은 프로이트와 융이 말한 억압된 것의 회귀the return of the repressed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이 현상은 본질적으로 어떤 단일한 경험 방식도 무기한 고착될 수 없으며, 서로 모순되는 요소가 필연적으로 다시 떠오른다는 점을 가리킨다.
이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프로이트(『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가 제시한 것이다. 말실수, 필기 실수slips of the pen, 그리고 우연한 사건accident 등은 모두 억압된 것의 회귀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대체로 부적절한 시점에 일어나며, 무의식적 동기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들은 억압된 성적 혹은 공격적 욕망을 해방시키거나(즉, 의식적 자각으로 불러올) 역할을 한다. 예컨대, 어떤 남성이 한 여성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고 있다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성적인 뉘앙스가 담긴 말을 하거나 그녀 앞에서 걸음을 헛디딜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여성이 남편에게 무의식적 적의를 품고 있다면, 그녀는 자신의 결혼 후 성씨married name를 잊어버릴 수도 있다.
역설 원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실수들은 수축과 확장의 양 측면에서 이해된다. 예컨대, 성적 충동과 공격성은 더 넓은 맥락에서 확장의 원리—즉 ‘터져 나오고bursting forth’ ‘뻗어나가는extending’—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다. 창조, 상상, 열망, 유대affiliating, 신뢰뿐 아니라 유혹이나 공격을 통해서도 확장은 일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성을 억압할수록(성적 욕망의 억압과 마찬가지로), 그 억압된 내용이 회귀할 가능성은 커진다. 예를 들어, 상상력을 지속적으로 억누르는 남자는 원치 않는 순간에 공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유대 욕구를 반복적으로 부인하는 여자는 부적절한 시점에 그 욕구가 폭발적으로 복합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유사한 논리를 수축적 잠재성constrictive potentialities—즉 의무, 책임, 우선순위 등, 자신을 ‘물러서게draw back’ 하고 ‘제한confine’하는 모든 방식—의 부정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기 절제self-discipline를 끊임없이 거부하는 소년은 결국 타인으로부터 통제를 받게 될 가능성을 높인다. 마찬가지로, 직무상의 책임을 계속 회피하는 소녀는 결국 그 의무감에 짓눌리는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사례들의 요점은, 억압된 것의 회귀 현상이 확장적 측면뿐 아니라 수축적 측면에서도 작동한다는 점이다. 성적 충동과 공격성은 그 수많은 양상 가운데 단 두 가지에 불과하다.
두 번째로 유념해야 할 점은, 수축적 및 확장적 극단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절대적인 극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그것을 경험하는 당사자(those concerned, 예: 내담자) 혹은 그 당사자의 관점을 공감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관찰자의 판단만이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기능 장애의 극단은 ‘강제적forced’ 혹은 ‘강박적compulsive’ 성격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상태에서 개인은 자신이 그것을 주도하거나 중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보다 건강한 사람은 주로 흥미에 의해 탐색적 행동을 수행하며, 어느 정도의 선택과 통제 가능성을 지닌다. 반면, 조증적 성향을 가진 사람manic person은 이러한 행동을 주로 공황panic의 감각 속에서 수행하며, 마치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내적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이제 다양한 형태의 기능 장애 증후군들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자.
Ⅱ. 초수축(超收縮)
우울depression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개인의 경험 세계가 궁극적으로 붕괴된 상태로 묘사되어 왔다. 우울은 심각한 지체, 고립, 압박, 그리고 무력감으로 특징지어진다. 개인의 세계는 문자 그대로 닫히고 어두워진다. 사르트르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슬픔은 다음과 같은 억압의 행위로 특징지어진다. 근육은 이완되고, 안색은 창백하며, 사지 끝은 차가워진다. 그 사람은 구석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자리에 앉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세상에 가능한 한 가장 적은 표면만을 드러낸다. 그는 밝은 대낮보다 그늘을, 소음보다 침묵을, 공공장소의 군중보다 방 안의 고독을 더 선호한다. (Sartre, 1948a, p.64)
사르트르는 이렇게 덧붙인다.
“슬픔은 세계의 구조를 변형하거나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야 할 의무를 제거하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 (p. 65)
빈스방거는 우울을 “자신의 ‘세계-설계world-design’가 수축되고 협소해지는 상태”로 묘사한다. 베커 역시 이와 유사하게 말한다.
우울증depressive psychosis은 너무 많은 필요성necessity(너무 많은 유한성finitude, 현실 세계에서 사람의 몸과 행동에 의한 너무 많은 제약, 내적 자아의 , 내적인 상징적 가능성의 불충분한 자유)의 연속선상에서 극단에 있다. 이것이 오늘날 우울증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즉, 우울증은 타자(가족, 직업, 그리고 일상적 의무의 좁은 지평)의 요구에 파묻히는 것이다bogging down. 그렇게 파묻힌 개인은 대안이 있음을 느끼거나 보지 못하고 삶의 어떤 선택이나 대안적 방식도 상상하지 못하며 자신을 의무의 그물망에서 해방시키지 못한다.
(국역,『죽음의 부정』, 154~155쪽)
강박적 성향은 아마도 덜 심각한 형태의 수축적 기능장애 로서, 극단적인 초점화focalizing 와 의례화ritualizing 를 특징으로 한다. 폰 게프자텔Von Gebsattel은 강박적 성향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 특징은 협소함narrowness, 자연스러움이 결여된 단조로움natureless monotony, 그리고 규칙에 매인 경직성과 변화 불가능성rigid, rule-ridden unchangeability이다. 이 모든 것은 도덕적·공간적·시간적 세계 내 존재being-in-the-world의 본질적 변형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 베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나친 절편화fetishization나 부분화partialization, (행동을 위해) 세상을 너무 축소한 결과를 본다. 그 결과는 지엽성 속에 갇히는 것이다. 피가 날 때까지 손을 씻고 하루종일 화장실에 틀어박히는 것은 의례적으로 손을 세 번 씻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국역, 『죽음의 부정』, 306쪽)
마지막으로, 샤피로(Shapiro, D.)는 이러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강박적 성향을 가진 사람의 주의력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집중의 강도와 예리함intense, sharp focus 이다. 이들은 주의가 흐릿하지 않다. 그들은 집중하며, 특히 세부 사항에 집중한다. 이는 예를 들어 로르샤흐 검사Rorschach test에서 자주 드러난다. 그들은 아주 많은 ‘세부 반응detail responses’을 축적하고, 그것들을 정밀하게 구분·묘사한다. …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관찰된다. 따라서 이들은 종종 기술자들 technician 사이에서 발견되며, 기술적 세부 사항에 관심을 가지며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역설 원리의 관점에서 보면, 강박적 성향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세계 속으로 확장, 새로움, 유동성, 불확실성이 침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시간의 모든 간격은, 사슬에 묶인 사람에게 있어 형태form가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의 증가라는 위협으로 경험되며, 그것은 자신의 ‘존재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불안을 더욱 심화시킨다.”
앞서 논의된 증후군들이 정서적·인지적 요인에 의해 두드러진다면, 지나치게 의존적인 사람들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의존적인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의 위험을 회피하며, 자신의 욕구를 타인에게 종속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의존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성취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가진 미약한 자존감은 대부분 타인의 지지와 격려에 의해 결정된다.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사람의 애정과 보호를 잃게 되면, 그들은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의 공허 속에 노출된 듯한 불안을 느낀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의존적인 사람들은 타인의 바람에 신속히 복종하고 순응하거나, 누구도 자신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고 호감 있는 존재’로 만들려 노력한다.
의존은 결국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 하는 상태다. 자율성은 이들에게 자신의 영역 밖, 즉 신체적·정서적·지적 측면에서 도달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된다.
불안 Anxiety 또한 이에 관련된 기능 장애 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안은 모든 방어적 반응에 선행하는 근원적 공포dread 와 구별되는, 임상적 의미의 “불안 장애anxiety disorder”를 가리킨다.)
불안은 개인의 능력—특히 정체성의 중심을 이루는 능력들—이 수축 되는 것을 수반한다. 의존과 우울이 그러한 능력들로부터의 포기resignation 를 의미한다면, 불안은 그에 대한 투쟁의 흔적을 남긴다.즉, 불안한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만 아직 삶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은 상태다. 그들은 종종 긴장되고, 과도하게 경계하며, 불안에 사로잡혀 있지만, 아직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다.마지막으로, 불안은 두려움fear 과 구별된다. 불안은 주관적이며, 명확한 객관적 대상을 갖지 않는다.
메이는 이를 다음과 같이 구체화한다.
신경증적 불안neurotic anxiety 이란, 위협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는 무능력이 객관적 요인이 아니라 주관적 요인에 의해not objective but subjective 발생할 때 나타나는 불안을 말한다. 즉, 그것은 객관적인 약점objective weakness 때문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내적 심리적 패턴과 갈등inner psychological patterns and conflicts 에 기인한다.
(『불안의 의미 The meaning of anxiety』p.189)
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개인이 창조적일수록, 그는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게 되며, 동시에 그만큼 더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 (p.356)
반면, 정신병적 불안psychotic anxiety—즉, 랭이 “석화petrification”라 부른 상태—은
아마도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파괴적인 형태일 것이다. 신경증적 불안이 무력감을 예견한다면, 정신병적 불안은 소멸annihilation 을 예견한다.
특정한 형태의 공포terror, 그 공포에 의해 사람이 석화된다. 즉 돌로 변한다...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dread :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사람에서 행동에 있어 개인의 자율성이 autonomy of action 없는 죽은 물체로, 돌로, 로봇으로, 자동장치로automaton, 주체성subjectivity을 잃은 그것으로(it) 변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또는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국역,『분열된 자기』, 69쪽)
따라서 불안이란 특정한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어쩌면 삶 그 자체—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질식할 듯한 공포이다. 이러한 질식의 경험은 폭넓게 나타나며, 자율신경계의 마비적 반응으로부터 몸과 마음이 완전히 굳어버리는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공포와 공포증phobias은 특정한 대상 또는 관심 영역에 관련된 현상으로, 이 경우에도 시간과 공간이 왜곡된다. 공포증 환자의 세계 속 사람이나 사물은 엄청난 비율로 확대되어 나타난다. 그것들은 거대하고, 강력하며, 폭발적이고, 때로는 박해적persecutory 으로 느껴진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을 정서적 혹은 신체적 구석으로 몰아넣으며, 그 사람의 구체적 욕구나 필요를 침범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가게에 가지 못하고, 심한 당혹감embarrassment 을 겪을까 두려워 군중을 피하며, 다른 인종의 사람과는 저주나 오염contamination 을 당할까 두려워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반 덴 베르크Jan Hendrik van den Berg는 자신의 한 공포증 환자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 환자는 자신의 집 안에서 거리를 바라보았다.
그 집들은 모두 굳게 닫혀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모든 창문이 덧문으로 가려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그것들은 폐쇄된 성채closed citadels 처럼 보였다.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을 때, 집들이 거리 쪽으로 기울어진 듯이 보여, 지붕 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좁은 띠strip of sky 는 그가 걷고 있는 거리보다 더 좁게 느껴졌다. 광장에 이르자 그는, 그 폭width을 훨씬 넘어서는 텅 빈 광활함expanse 에 압도되었다. 그는 그곳을 결코 건널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만약 건너려 한다면, 그는 공허함emptiness, 광대함width, 희박함rareness, 그리고 버려짐abandonment 의 실감 속에 휩싸여 다리가 풀리고 쓰러질 것이라고 느꼈다. 그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 ‘광활함expanse’ 자체였다. (p.9)
빈스방거Binswanger는 공포증 환자가 경험하는 시간의 교란time-disturbance 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세계-설계world-design가 이토록 좁아지고 수축될 때, 자아 또한 그만큼 수축되고 성숙을 방해받는다. 모든 것은 이전 그대로 머물러야 한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만약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 연속성이 끊어지게 된다면, 그 결과는 파국catastrophe, 공황panic, 불안 발작anxiety attack 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세계는 실제로 붕괴하며, 그것을 지탱할 어떠한 기반도 남지 않게 된다.“세계는 이 지점에서 멈춰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변해서는 안 된다.” (p.204)
Jose M. Arcaya (1979)는 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간은 수축한다time contracts. 미래와 과거는 무시되고, 오직 즉각적으로 지각되는 상황the immediately perceived situation 만이 남는다. 위협적인 대상이 가까워질수록, 공간 역시 더 이상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영역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그 대신 공간은 한정되고delimited 수축constricted 된다. 공포의 대상은 개인의 삶의 공간lived space 속으로 침입하며, 그 결과 개인은 거의 혹은 전혀 자신만의 경계personal boundaries 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p.175)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 그리고 세계가 적대적이고, 잔혹한 힘이라는 인식은, 이른바 망상paranoid 상태 속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공포증 환자가 주로 사물과 사건에 자신의 불안을 집중시키는 반면, 망상적 인격paranoiacs은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대해 캐머런Norman Cameron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편집적 인격paranoid personality 은 근본적인 기본 신뢰의 결여lack of basic trust 에서 비롯된다. 타인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 불신 때문에, 편집적 인격은 기습적인 기만deception 과 공격 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경계vigilant 해야 한다. 그는 적의hostility, 경멸contempt, 비판, 비난accusation 의 미세한 흔적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p.645)
역설 원리의 관점에서 볼 때, 편집증paranoia 은 신뢰의 수축이다. 의존과 불안이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의 부족을, 공포증이 환경에 대한 신뢰의 결핍을 의미한다면, 편집증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신뢰social trust의 부족을 의미한다.
이 절을 마무리하면서,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 에 대한 한 가지 기술로 끝맺고자 한다. 비록 이 질환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현상이지만, 깊은 죄책감, 수치심, 그리고 작게 남고자 하는 욕망이 그 핵심적 특징을 이룬다. 다음의 사례는 빈스방거Binswanger가 보고한 것으로,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나는 살이 찌거나, 키가 큰 여자의 모습으로 변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작은 소녀little girl 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사랑을 덜 받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p.333)
[나디아(Nadia)]는 타인으로부터 도망치며flees from others, 그들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고통을 겪는다. 그녀는 타인의 눈에 띄는 것, 그들과 다르게 보이는 것, 그들에게 덜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수한 ‘장치들devices’ 을 만들어낸다. … 이러한 징후들은 모두, ‘수치심의 저주the curse of shame’에 사로잡힌 존재가 드러나는 돌파 지점breakthrough-points 에 불과하다. (p.337)
만약 편집증이 신뢰의 수축이라면,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많은 경우 자기 가치self-worth의 수축이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신체에 반영되는 방식에서 그렇다. 말 그대로, 그것은 신체적 우울bodily depression 이다.
과도한 수축은, 요약하자면 자신의 세계를 불균형하게 ‘잘라내는disproportional carving up’ 행위로 정의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을 미세한 조각들로 분할하거나, 혹은 그 분할을 대신 수행하는 외적 힘에 자신을 내맡기거나한다. 어느 쪽이든, 그는 중심성을 상실하고, 내적으로 빈곤해지며, 위축되고, 질식된 존재가 된다. 그는 내적 풍요로 나아가는 길에서 차단된다.
이로써 과도한 수축에 대한 논의를 마치며, 다음의 현상들 또한 이 병리적 극성과 관련됨을 지적하고자 한다. 즉,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 신체화 somatization , 회피적 성격 avoidant personality, 피학성 masochism, 물신주의fetishism, 그리고 자율신경계 기능을 억제하는 약물sedative-hypnotics 의 남용— 이러한 사례들 역시 모두 과도한 수축의 동일한 축 위에 위치한다.
Ⅲ. 초확장(超擴張)
조증mania은 확장의 가장 과도한 형태 중 하나로, 빈스방어가 말한 바와 같이 “솟아오름springing forth”이며, 시점에서 시점으로 “도약leaping”하는 현상이다. 이는 강렬한 움직임, 감정, 의도의 폭발적 분출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조증의 삶의 양식에서 드러나는 불균형은 존재분석학적 관점 daseinsanalytically에서 ‘경박함flightiness’이라 불린다. 이는 인간 문제의 ‘사다리ladder’ 위에서 진정한 발판을 얻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하며, 이 점에서 또한 진정한 결단, 행위, 성숙이 불가능함을 뜻한다. … 지나치게 멀리, 그리고 성급하게 앞으로 몰아붙여지고 위로 끌어올려진 조증자는, 자신이 설 수 없고 ‘자기충족적self-sufficient’ 결단을 내릴 수도 없는 허위의 높이 위를 부유한다. (pp. 346–347)
따라서 조증은 우울의 반대면으로서, 기분·지각된 능력·주장의 과도한 확장hyperextension이다.
조증이 개인의 기분을 팽창시키고 폭발시킨다면, 나르시시즘은 자아상self-image을 확장시킨다. 나르시시즘(자기애성 성격장애)의 본질적 특징은 카렌 호나이가 말한 바와 같이 “자기 팽창self-inflation”이다. 그녀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정신적 팽창은 경제적 인플레이션과 마찬가지로, 실제보다 더 큰 가치를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이 충분한 근거가 없는 가치들에 대해 자신을 사랑하고 찬양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이 실제로는 갖고 있지 않거나, 있다고 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은 자질에 대해 타인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기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신분석의 새로운 길 New ways in psychoanalysis』, pp. 89–90)
자기애적으로 규정된 다른 특성들로는 “대인관계적 착취성interpersonal exploitativeness”, “확장적 상상력”, 그리고 “부족한 사회적 양심” 등이 있다. 빈스방어가 “탐욕”이라 부른 특성 또한 여기에서 관련된다.
탐욕이라는 비이성적 특성은 바로 ‘몰록Moloch과 같은’ 성질이며, 그 결과로 세계를 일정한 공간적 의미로 해석하게 된다. 즉, 채워지고, 은폐되고, 덮이고, 숨겨진 공간의 중요성을 강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신체는 비어 있는 것hollow으로 인식된다. 탐욕스러운 자에게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시간은 오직 붙잡고 채워 넣는 이미지로부터만 그 의미를 얻는다. 짧은 시간의 틈새들은 마치 상자 속에 물건을 꾸역꾸역 채워 넣듯 분주히, 끊임없이 메워진다. 결국 시간은 덩어리나 조각처럼 더해질 수 있는 ‘시간의 합time sums’으로 변한다. (Sadler, 1969, p. 134에서 재인용)
연극성 성격장애 histrionic 성향을 지닌 사람들도 유사한 확장적 특성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초점은 사회적 이미지, 주의, 그리고 조작적 성향manipulativeness에 있다. 멜라니 클라인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연극성 성격장애 성향의 사람들]은 변덕스럽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하며, 무책임하고, 피상적이며, 사랑에 취하고love-intoxicated, 들뜨고, 근시안적이다. 유혹적이고, 조작적 성향과 착취 성향exploitative을 가졌고, 성적으로 도발적인 그들은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으로 사고한다. 아첨과 칭찬에 쉽게 넘어가며, 소유욕이 강하고, 탐욕스럽고grasping, 요구가 많으며, 낭만적이다. 좌절하거나 실망할 때는 비난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모욕하고abusive, 앙심을 품는다. 거절에 대한 민감성rejection sensitivity은 아마도 이들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된 특징일 것이다. (p. 237)
이에 대하여 샤피로는 히스테리 환자의 인지가 인상적이며, 비교적 즉각적이고, 전체적이라고 덧붙인다. 히스테리 환자의 인지적 경험은 세밀하게 관찰된 사실이나 충분히 숙성된 판단의 경험이 아니라, 빠른 직감 hunches과 인상으로 구성된 경험이다.
반사회성 성격 장애사람들 또한 매우 극적이고, 조작성 성향이 있으며, 즉각적인 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반항적이고, 폭력적이며 무모할 수도 있다. 밀론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요한 특성은 내가 “적대적 정동성hostile affectivity”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는 이들 성격 중 다수가 쉽게 분노로 치닫고 논쟁과 공격으로 폭발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또 다른 특징은 “사회적 반항성”으로, 이 환자들이 권위, 전통, 감상성, 인도주의적 관심을 경멸한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특성은 그들의 빈번한 무공포적 태도이다. 그들은 단순히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을 자극하고 위험에 끌리는 듯한 경향을 보인다.
신체는 적대적 정동성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스테빅Stevick은 분노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체는 터져 나오는 것으로 경험되며, 각 개인의 사전 반성적 제약pre-reflective restrictions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공적이든 사적이든 확장적이고 폭발적이며 비전형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위에서 기술된 증후군들 외에도, 과잉 확장은 과잉 행동hyperactivity, 주의력 결핍attention-deficit, 반항성, 폭발성, 충동성, 그리고 자율신경계 항진autonomic nervous system arousal과 연관된 물질남용—예컨대 암페타민amphetamines과 환각제hallucinogens—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자면, 과잉 확장이란 개인의 경험 세계가 조절되지 않은 추진, 확장, 혹은 팽창을 겪는 현상이다. 이는 개인이 스스로 이러한 행동들을 시작하거나, 혹은 그것이 외부의 힘에 의해 개시되었다고 지각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Ⅳ. 혼합된 기능 장애(수축/확장 혼합)
위에서 언급한 단일양식적 형태와 달리, 혼합적 기능장애는 이중양식적bimodal 성격을 지닌다. 푸코는 이러한 병리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포착하고 있다.
긴장과 이완, 경도와 연성, 경직과 이완, 울혈과 건조—이러한 질적 상태들은 신체만큼이나 영혼soul을 특징짓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불분명하면서도 복합적인 정동적 상황을 가리키는데, 이는 사유의 연쇄, 감정의 흐름, 섬유의 상태state of fibers, 체액의 순환 위에 자신을 강요하는 것이다.
(『광기의 역사』p. 87).
조현병schizophrenia은 아마도 혼합적 기능장애의 정점일 것이다. 조현병 환자를 다루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광범위한 행동 스펙트럼을 관찰했을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지나치게 세세하고 경직된 강박에서부터 가장 과장된 정신생리적 상태에 이르기까지 변화한다
로널드 랭은 자신의 한 환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관찰한다.
그는 선사시대의 투시력prehistoric clairvoyance, 무한히 작은 것의 문제problems of the infinitely small, 그리고 행성 간의 방문interplanetary visitations 같은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들은 항성 간 공간 속에서 의식의 안개mist of consciousness처럼 떠다니는 어떤 형태로 존재했다.
(『Wisdom, madness, folly: The making of a psychiatrist』, pp. 141–142)
빈스방어 또한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많은 경우에 … 단 하나의 세계구성world design만을 고려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이것은 조증에서처럼 병적 우울의 경우에는 우리의 목적에 부합하지만, … 소위 정신분열적 과정의 경우에는, 환자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세계들을 초점화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예컨대 엘렌 베스트 Ellen West의 경우, 우리는 하늘로 치솟는 환희의 새 a jubilant bird의 형태로 존재를 보았다—빛과 무한한 공간의 세계 속의 비상a flight . …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그것을 썩어가는 무덤과 좁은 구멍 속 진흙을 기어가는 눈먼 벌레(a blind worm crawling in muddy earth, in the moldering grave, the narrow hole)의 형태로도 보았다.”
‘회복된’ 조현병 환자인 마크 보니것Mark Vonnegut은 이 증후군에 대해 직접적으로 서술한다.
“작은 일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복잡해졌다. 그것은 과수의 가지치기에서 시작되었다. 톱질 한 번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는 부드럽게 땅으로 떨어지는 톱밥, 손에 닿는 톱의 감각, 나무껍질에 나타난 믿을 수 없는 무늬, 팔 근육이 뒤로 당기고 다시 앞으로 밀어내는 움직임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모든 것이 사방으로 무한히 늘어나는 듯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느려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가지를 끝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후 보니것은 자신이 “어느 한 그루의 나무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몇 시간이고 일한 것 같았지만 태양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내 몸이 모든 몸들의 복합체가 되어 있었다. 내 얼굴의 절반은 아시아인이었고, 한쪽 팔과 다리는 흑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보다 훨씬 미묘한 것이었다. 지금 내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를 이루기 위해, 지금껏 살아온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가장 훌륭한 세포를 기여한 듯했다.”
마지막으로, 높은 표현 능력을 지닌 또 한 명의 정신분열증 환자 ‘Rene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 광기는 분명히 질병의 상태가 아니었다. … 그것은 오히려 현실Reality에 맞서는 하나의 나라였다. 그곳에서는 무자비한 빛implacable light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그 빛은 눈부시게 빛나 그림자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경계도 한계도 없는, 평평하고 끝없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기묘하게 몸을 돌리고, 의미 없는 제스처와 움직임을 보였다. 그들은 무자비한 전등빛pitiless electric light 아래에서 짓눌린 채, 무한한 평원infinite plain 위를 회오리치는 유령들 같았다. 그리고 나는—그 안에서 길을 잃고, 고립되고, 차갑고, 목적 없이 벗겨진 채—그 빛 아래 서 있었다.”
(Sechehaye, 1970, p. 33)
로널드 랭은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외적 현실의 행렬pageant이 얼마나 실체 없는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대신하거나 혹은 그것과 나란히 존재할 수 있는 숭고하고도 기괴한 존재들을 결코 완전히 인식할 수 없다.”
(『Politics of experience』, p. 133)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정신병리’—더 나아가 존재Being—의 구조에 대한 혁명적 통찰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랭, 보니것, 빈스방어, 그리고 ‘Renee’는 이전의 철학자들, 예컨대 키르케고르 등이 이미 예감했던 바를 실증적으로 드러낸다. 즉, 조현병은 우주론적 규모의 전투를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적이거나 비범한 삶의 경계를 훨씬 넘어선 곳에서 일어나는 전투일 수 있다. 무한의 관문에서 벌어지는, 상상할 수 없는 미세함과 끊임없는 거대성이 교차하는 전투일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조현병은 단순한 질병이라기보다는 인간 조건의 찢김이며, 모든 인간적 가능성—심연적이면서도 장엄한—에 이르는 경로 portal이다. 그것은 어쩌면 정신의 최종적 행로일지도 모른다.
‘광인(狂人, raving)’ 블레이크Blake가 이렇게 썼던 적이 있지 아니한가:
“지각의 문들이 깨끗이 닦인다면,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인간에게 무한하게 보일 것이다.”
만약 혼돈과 미세한 세부에 맞서는 것이 조현병증자의 운명이라면, 그 가장자리를 떨며 맴도는 것은 조현성 인격schizoid의 숙명이다. 조현병증자가 완전한 소멸과 완전한 폭발 사이에서 얽혀 있다면, 조현성 인격자는 그보다 덜한 형태의 갈등—혹은 랭이 암시했듯이, “완전한 분리 혹은 정체성의 완전한 통합”(국역, 81쪽)이라기보다 분리와 관련성사이에서—에 씨름한다.(국역, 81쪽) 건트립Guntrip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폐소공포적clautrophobic 상태에 빠지며, 이것을 익숙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즉, 제한받고, 묶이고, 감금되고, 가두어지고, 숨 막히는 느낌을 받으며, 자유로워지고 회복하며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대상관계object-relations로부터 후퇴한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낀다. 즉, 타인을 자기 안에 받아들일 때는 폭발하는 것 같고, 자신이 타인에게 흡수되어 자아를 잃는다고 느낄 때는 질식할 것 같다.
위의 서술이 ‘경계선 borderline’ 성격의 특징과 매우 유사하게 들리지만, 두 가지 중요한 구별점이 있다. 경계선 인격 장애는 일반적으로 더 사회적이고 감정적이다. 분열성 인격schizoid은 전반적으로 사회적 접촉을 회피하는 반면, 경계선 인격은 주기적으로 그런 접촉을 열렬히 요구한다. 또한 조현성 인격이 결속으로 인한 질식과 분리로 인한 버려짐abandonment을 방어하기 위해 인지적 방어를 사용하는 데 비해, 경계선 인격 장애는 정서적 방어를 사용한다. 따라서 경계선 인격은 우울, 자기혐오self-hate, 의존 속으로 수축하며, 반대로 적대, 조작적 성향, 충동성으로 확장된다.
부정성의 정도degree of negativism가 위의 증후군들과 조울증 혹은 양극성 장애bipolar experience를 구분짓는 특징으로 보인다. 조현성 성격과 경계선 인격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절망하는 반면, 양극성 인격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일정한 낙관성을 간직한다. 조울증 환자가 왜곡되어 있더라도, 여전히 삶에의 의지—즉 조증기 동안 ‘활력을 잃은 수동성devitalized passivity’에서 심리를 밀어내는 능력—가 남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유형 외에도, 조현형 schizotypal, 수동-공격형passive-aggressive, 폭식형bulimic 등 다양한 혼합적 기능장애가 존재하며, 이들 또한 위축withdrawal, 우울, 의존, 과잉 반응overreactivity이라는 유사한 범위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