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스토프의 파스칼에 대한 에세이를 일부 번역해 올린다.
글 전체의 초벌 번역은 이미 끝냈으나, 각주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부만 올린다.
「겟세마네의 밤」은 그가 프랑스로 이주한 1922년 무렵에 『팡세 』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글이다. 그의 이전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에 대한 에세이만큼이나 셰스토프의 명성을 확립한 텍스트라고 평가 받는다.
셰스토프의 모든 주제가 이 작품에서 이미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주제들은 무한, 무에 비해 유한한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모순, 불안과 비참함의 영구적인 상태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신에 대한 철학자들과의 대립, 당대 지배적이었던 합리주의 비판까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겟세마네에서 그리스도의 '고뇌'과 '불면의 밤'에 주목한다.
레비나스는 불면의 상태에 대해 존재론적 접근을 취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존재의 숙명이 자아를 점령한다. 더 이상 외부도 내부도 없다. 불면 상태에는 전혀 대상이 없다. ....우리의 눈을 열어놓고 있게끔 하는 불면의 깨어있는 상태에는 주체가 없다....그 상태는 부정의 한복판에서 '있음'의 깨어남이다. 그것은 존재의 무오류성(infaillibilite)인데, 여기서 존재의 작업은 전혀 태만해지는 법이 없다. 이런 상태가 존재의 불면 자체이다.
셰스토프는 파스칼을 데카르트에 반대하며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와 같은 맥락에서 "존재론 철학자"로 읽는다. 이제 이를 확인해보기로 한다.
파스칼의 『팡세 』에 대한 국역본의 참조는 나중을 기약한다.
인명 및 지명은 국내에서 출간된 서적을 표기 원칙으로 하고, 정보가 없을 시에는 원문 그대로 표기한다.
<1>
예수께서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극심한 고통 속에 계실 것이고 그 동안에는 한시도 주무실 수 없을 것이다.
- 파스칼,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 김화영 역, 29쪽)
파스칼이 태어난 지 300년이 지났고, 그가 죽은 지도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파스칼은 총 39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 300년 동안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17세기의 한 인물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만일 그를 불러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그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그가 우리에게서 더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파스칼은 동시대 사람들 사이에서 “반동적” 때문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라는 심연을 향해 후퇴하는 것을 스스로 느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배교자 율리아누스처럼 그는 시간의 수레바퀴를 되돌리고 싶었다. 그는 사실 그 자신이 배교자였다. 그는 축복받은 미래세대가 “르네상스”라는 이름을 붙인 두 세기 동안 인류가 공동의 노력으로 얻은 모든 것을 배척하고 부정했다. 전 세계는 스스로를 새롭게 하고 있었고, 이 쇄신의 과정에서 역사적 운명의 성취를 보았다. 그러나 파스칼은 무엇보다도 그 새로움을 두려워했다. 그는 쉼없이 모든 힘을 다해, 심오하고 집중된 마음으로, 그 자신 역사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가면서 역사의 흐름에 저항하였다.
과연 역사에 맞서 싸우는 것이 가능할까?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이가 우리에게 어떤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와 함께 한 모든 일들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의 전조를 보이지 않않았던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 하나뿐이다. 역사의 평결은 배교자에게 무자비하다. 파스칼은 일반적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인쇄되고 읽히고 있으며, 심지어 칭찬과 찬사를 받고 있으며, 그의 8월의 인물은 성자의 형상과 같으며, 그 앞에는 하루 동안 내내 타오를 램프가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미워하고 싸웠던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은 그가 목숨을 바친 진리를 찾기 위해 가는 이들이었다. 우리가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는 파스칼이 아니라 데카르트이며, 우리는 파스칼이 아니라 데카르트의 진리를 받아들인다. 진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철학말고 또 어디서 찾을 수 있단말인가?
이것이 역사의 심판이다.
파스칼은 존경은 받지만 지나쳐 가는 사람이다.
항소할 수 없는 평결인 것이다.
파스칼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역사의 유무죄의 판단에 대해 무엇이라고 답할까? 한가한 질문일 것이다. 역사는 살아있는 이를 다루는 것이지 죽은 자를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파스칼을 위해서라도 이번 한 번만이라도 역사가 죽은 자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일은 쉽지도 않고 간단하지도 않다. 헤겔 철학은 적용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될 것이기 때문에 역사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새로운 철학을 발명해야 할 것이다. 헤겔을 스승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그렇다고 고백하는 것이 헤겔 철학이며, 그의 시대 훨씬 이전에 그것을 고백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간의 수고를 감수하는 것이 그렇게 끔찍할까?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헤겔을 옹호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까지 역사는 항상 인간은 일단 죽으면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후손의 심판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살아있는 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가정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따라 기록되어 왔다. 그러나 역사가들조차도 죽은 자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었다고 느낄 때가 올 수도 있으며, 그러면 그들은 더 신중한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죽은 자는 침묵하며, 우리가 그들에 대해 어떻게 말하든 항상 침묵할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자 오늘날 우리의 강한 신념이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가 이러한 신념을 빼앗긴다면, 죽은 자들이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무덤에서 일어나 우리의 삶을 침범하여 동등한 존재로 우리 앞에 설 수 있다고 갑자기 느낀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죽은 자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력하고 모든 힘을 잃고 “죽은”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그 철학은 영원함 속에 있는in saecula saeculorum 역사가들에게 죽은 자들이 오늘날 떠나는 것과 같은 동일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해부실에서는 시체를 마음껏 해부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해부학 교실이 아니며, 역사가들은 언젠가 죽은 자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신의 책임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이 판사에서 피고로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과거를 조사하는 헤겔적 방법을 버리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다. 율리아누스 황제가 역사의 판결을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파스칼은 생전에도 과거와 미래 세대에 대한 답을 준비했다. 다음을 보자.
여러분은 스스로 오류가 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낫다. 정죄받는 자신을 보고 나는 내가 잘못 쓴 것이 두렵지만 많은 경건한 글의 모범은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내 편지가 로마에서 정죄를 받으면,
내가 그 안에서 정죄하는 것은 하늘에서도 정죄를 받는다.
(Ad tuum, Domine Jesu, tribunal appello.)"
살아 있는 파스칼이 로마의 위협에 이렇게 대답했으니, 역사의 판결에 대한 파스칼의 대답도 이와 같을 것이다. 그는 「시골 친구에게 보낸 편지 Provincial Letters」 에서 단호하게 선언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 세상의 부귀도 인정도 필요 없다.
그는 우리의 비난에 겁을 먹거나 우리의 협박에 굴복할까?
역사는 그에게 정당한 항소 법정, 궁극의 법정으로 보일까?
나는 이 말 속에 파스칼 철학이 제시하는 수수께끼의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차이의 최고 판단자는 인간이 아니라 모든 인간 위에 계시는 그 분이다. 따라서 진리를 찾으려면 인간이 일반적으로 진리라고 여기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오랫동안 파스칼이 데카르트주의자라는 신화가 널리 퍼졌지만, 이제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파스칼은 데카르트의 제자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데카르트는 파스칼이 반대했던 모든 것을 통합했다.
그는 『팡세 』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한다:
데카르트처럼 과학을 너무 깊이 파고드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에 대한 이유를 제시한다.
나는 데카르트를 용서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철학 전체에서 할 수만 있으면 신 없이 지내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세계를 움직이기 위해 신의 손가락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신을 개입시키지 않았다.(단장 77, 국역, 428쪽)
“나는 용서할 수 없다"는 이 말은 데카르트뿐만 아니라 데카르트가 자라온 모든 구시대의 철학과 데카르트가 기초를 닦은 모든 근대 철학에 적용된다. 이 철학은 세계가 “본질적 의미로 설명될 수 있다”는 확신, 인간이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이 생각을 Homo emancipatus a Deo라는 문구로 공식화했다)
파스칼이 로마에서 신에게 호소해야 했던 로마의 본질이 이 확신 외에 있었을까?
파스칼은 이를 아주 일찍 느끼기 시작했고, 그의 생애 마지막 몇 년은 신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과 로마에 대한 길고 지속적인 투쟁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의 철학과 인생 개념은 수수께끼와 역설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을 진정시키는 것들은 그에게 가장 심각한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반대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은 그에게 가장 큰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개념을 더욱 확고하게 굳힌다. 따라서 그는 인간에게 점점 더 낯설고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파스칼이 위대한 사람, 영감을 받은 천재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의 글 한 줄 한 줄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그의 모든 글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의 글들은 인류에게 쓸모없고 적대적이다. 그의 글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은 “긍정적인” 무언가를 필요로 하며,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두려움을 진정시켜줄 무언가를 원한다. 그들은 침울한 고뇌에 잠긴 파스칼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오히려 큰 소리로 외치는 파스칼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극심한 고통 속에 계실 것이고 그 동안에는 한시도 주무실 수 없을 것이다.(국역,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