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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은 May 06. 2022

사워도우 치아바타 도전기

세 번째 실패

이 글은 실패에 대한 기록이다. 

이스트를 쓰지 않고 천연발효빵을 만들어 먹기 위해 르방을 키우기 시작했다. 호밀빵 만들기를 무난히 성공해서 평소 자주 만들어 먹던 치아바타도 도전해 봤다. 평소에 쉽게 성공했던 빵이니 만큼 이번에도 쉽게 성공할 줄 알았지만, 나는 이번으로 세 번째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두 번째 시도까지는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딱히 사진을 찍지 않았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일단 두 번 모두 발효가 제대로 안 됐다. 그동안 성공했던 경험으로 얻은 자신감으로, 그리고 평소에 하던 습관대로 나는 첫 도전부터 약 6개 정도의 덩어리가 나오는 반죽을 계량했다. 유튜브에서 참고한 영상 모두 다 손쉽게 성공했기 때문에 당연히 나도 성공할 줄로만 알았다. 


(이런 걸 라깡은 선취된 확실성이라고 한다. 상상계적 타자 이미지를 통해 선취된 자아, 선취된 확실성. 그 확실성이 내 것이 아님에도 신경증자들은 그것을 내 것인 것 마냥 선취한다.)


르방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이걸 이용해 사워도우 빵을 만든다는 것은 어쨌든 살아 있는 미생물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을 내가 설정할 수 없다. 냉장고에서 꺼낸 르방의 반을 덜어내고 물과 밀가루를 섞어 밥을 주고 난 다음 쓰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나는 기다려야 한다. 통상적으로 밥을 주고 4~6시간이 지났을 때, 12시간이 지나기 전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막연히 시간을 재기보다는 반죽을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반죽이 두 배 이상으로 부푼 시점에서 꺼지기 전에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며, 만약 육안으로 살펴보았을 때 알 수 없다면  플롯 테스트를 통해 확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플롯 테스트는 간단하다. 사용할 르방 안에 이산화탄소가 많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살짝 떠서 물 위에 띄워 봤을 때 뜨면 사용해도 좋다. 사용하기 좋은 르방 반죽에서는 시큼한 향과 과일 향, 알코올 향 같은 것이 난다.


이 정도의 지식을 주워들은 나는 무모하게 사워도우 치아바타 만들기에 도전했다. 막연하게 오후 5시에 냉장고에서 르방을 꺼내 리프레시를 하고  밤 10시 전후로 사용하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오후 5시에 르방에 밥을 줬다. 그런데 아무리 반죽을 살펴봐도 두 배까지 부풀지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 아이들은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받는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다. 냉장고에서 꺼내 밥을 줬다고 하지만 20도 전후인 실내 온도에서 이 아이들이 왕성해지는 속도는 더뎠고 결국 내가 빵 반죽을 시작하려는 시간이 되어도 이 친구들은 사용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되지 않았다.


완성된 반죽은 밤새 냉장고에서 저온숙성을 할 계획이었지만 나는 계획을 수정해서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반죽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5시 정도에 눈을 떠서 반죽을 살펴봤음에도 여전히 반죽은 두 배까지 부풀지 않은 상태였다. 나중에서야 생각한 거지만 이때의 반죽은 내가 자는 사이 두 배 이상 부풀었다가 이미 꺼진 상태였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못 했던 당시에는 긴가민가하여 플롯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반죽이 물에 둥둥 떠서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찾아본 레시피대로 반죽을 해서 12시간 저온 발효를 하기 위해 냉장고에 넣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반죽은 부풀지 않았다. 속도가 더뎌서 그런 걸까? 반죽이 원하는 상태까지 부풀기를 좀 더 기다려 보고자 20시간 남짓 냉장고 안에 넣어 두었지만 반죽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구워서 먹어보지 않아도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궁금하기도 했고, 또 버릴 수 없어 일단 구워보았다. 그리고 나는 망한 반죽으로 빵을 만들면 어떤 맛이 나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두 배까지 부풀고 막 꺼지기 시작한 때에 반죽을 시작했다. 당연히 플롯 테스트는 통과. 전보다 반죽이 더 잘 부풀기는 했다. 원하는 정도까지 활발하게 부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첫 번째 시도보다는 나은 결과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실패하고야 말았다. 두 번째 시도에서도 습관적으로 나는 6개 정도의 빵이 나올 분량으로 반죽을 해버렸고 총 12개의 맛없는 반죽을 버릴 수 없어 꾸역꾸역 먹고 나서야 소량 제작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세 번째 시도에서부터는 내가 빵을 구울 타이밍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르방의 상태를 보고 빵을 굽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타이밍을 잘 살펴야 하기 때문에 빵 만들 시간을 여유 있게 확보하는 것이 좋다.) 전날 르방 리프레시를 하고 다음 날 오전 반죽 상태를 보았을 때, 그동안 내가 자느라 보지 못 했던 쓰기에 가장 적당한 르방의 상태를 볼 수 있었다. 표면 가운데가 살짝 솟아 있고 가장자리가 꺼지지 모습 말이다. 



위에서 살펴 본 모습


르방 가장자리가 꺼지지 않고 가운데가 살짝 부풀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랴부랴 반죽을 하고 르방을 넣었다. 이번에는 딱 한 덩어리가 나올 정도로 시도를 했고 냉장고에서 저온숙성을 하기보다는 상온에서 2시간 정도 최종 숙성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반죽 표면에 기포가 올라오는 모양새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전의 도전보다는 발효가 잘 되는 듯 보였다. 물론 내가 원한 것은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기포였지만. 





그러나 이번에도 결과는 실패였다. 기공이 골고루 생기지 않은 데다가 어딘가 미묘하게 빵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식감을 내는 음식이 탄생했다. 반죽 수율이 85%여서 그런지 자꾸 퍼져서 모양 잡을 때 반으로 한 번 더 접었는데 그래서 그런 걸까? 그러나 전체적인 식감이 마치 떡처럼 꾸덕한 것으로 보아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기공 모양도 고르지 않고 어딘가 잘못된 반죽은 맞는 듯하다. 세 번 시도했던 빵들 중 그나마 가장 맛이 괜찮았지만 하나만 만들기로 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아무래도 얕은 지식으로 사워도우 빵을 만드는 것은 무리인 듯하여, 좀 더 깊게 공부를 해보고 재도전해보려고 한다.


부디 네 번째 시도는 성공에 대한 기록일 수 있길.      






** 참고로 아래 사진은 플롯 테스트는 통과했지만 가장자리는 꺼진 반죽 상태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도에서 저 상태의 반죽을 썼다가 실패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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