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반 동안 함께 해서 즐거웠다 얘들아
사워도우 브레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르방을 키우기 시작한 지도 두 달 반 정도가 흘렀다. 호밀 스타터로 하나, 통밀 스타터로 하나. 르방과 이스트를 함께 사용하면 빵을 굽기가 쉽지만 르방만을 이용해서 빵을 굽기에는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한 듯하다. 빵을 계속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좋겠지만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 바빠진 일상 때문에 르방 밥만 주고 냉장고에 넣어 놓기만 한 지 한 달가량이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르방 상태가 안 좋은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버리는 르방이 아까워서 상태 좋은 애들은 활용하여 호두과자나 양파감자전이나 브라우니 등등을 만들어 먹기도 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게 문제였나 싶기도 하다. 생각보다 비활성 상태의 르방을 활용해서 만든 것들이 맛있어서 르방을 버릴 때가 아니라 호두과자를 만들어 먹고 싶을 때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르방을 꺼내 쓰기도 했기 때문에.
냉장고에 르방을 보관하는 이유는 르방 밥 주는 기간을 늘이기 위해서이다. 보통 냉장고에 보관하는 르방 밥 주는 시기는 일주일로 잡지만, 상태를 보고 밥 줄 시기를 정해야 한다. 상태가 안 좋은 것은 윗부분에 물이 생기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물이 생겼다는 것은 르방이 배고프다는 뜻이니까. 어느 순간부터 물이 생기는 주기가 짧아지더니 급기야는 어제 밥을 줬는데도 바로 표면에 물이 생기는 일까지 벌어 지고야 말았다. 이때부터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부랴부랴 냉장고에서 꺼내 밥을 주고 실온에 두고 지켜보았다.
보통 밥을 주고 나면 2배 이상 부풀고 꺼져야 하는데 힘이 없는 르방은 반도 채 부풀지 않다가 푹 꺼지고는 반나절도 되지 않아 표층에 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물이 생길 때마다 하루 두 번씩 밥을 주고 지켜보았는데 2~3일 반복해서 밥을 주어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 덜어낸 양보다 밀가루를 조금 더 줘 보기도 했지만 호전은 없었다. 힘이 없이 묽은 상태가 지속되길래 물을 조금 적게, 밀가루를 조금 많이 넣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처음 상태가 좋은 르방이었을 때에는 시큼하면서도 아세톤 같은 향과 알코올 향이 났었는데, 상태가 안 좋아진 르방에서는 요거트 향이 났다. 아마도 효모가 아니라 유산균이 자라기 시작했던 것 같다. ㅠㅠ
르방 안에는 어쨌든 살아 있는 발효종들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왕성하게 활성화되지 않았던 르방에게 밥을 준답시고 반복해서 덜어내면, 그 안에 들어 있던 발효에 필요한 효모의 개체수가 줄어들게 된다. 계속 르방을 덜어 쓰기만 하고 활성화를 잘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효모 대신 유산균이 증식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3월 14일부터 키웠던 이 르방들을 버리기로 결정했다. 호밀 발효종 100g, 통밀 발효종 400g을 배양하고 있던 나는 이 르방들을 살리기 위해 하루 두 번씩 호밀 발효종에 25g, 통밀 발효종에 100g의 밀가루를 먹이로 주었는데, 두 번씩 밥을 주었으니 하루에 총 소비되는 밀가루의 양이 250g이 되었기 때문에. 게다가 이 르방은 재활용할 수 없어서 계속 버려야 했다. 그래서 오늘 나는 호밀 발효종 전체와, 그나마 상태가 괜찮았던 통밀 발효종 50g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버렸다.
그리고 남겨 놓은 통밀 발효종 50g에 물 20g 밀가루 30g을 섞어 놓았다. 당분간은 이것만 잘 키워보려고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빵도 제대로 만들어 먹지 못하면서 괜한 욕심을 부렸던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로써 르방 키우기 첫 번째 도전은 반 즈음은 실패로 끝이 났다. 물론, 살려보기 위해 남겨놓은 통밀 스타터가 되살아난다면 이 실패는 반만 실패한 것이 되겠지만. (이제 6시간가량이 지났는데 아직은 상태가 좋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