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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꾸 Nov 07. 2018

청설聽說 - 풋내만이 진하게 느껴지는 첫사랑 영화

영화::청설(2010)

*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를 보고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풋풋하고, 몽글몽글하고, 가슴이 아릿한 느낌을 좋아한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그 감정의 투명함 때문에 생겨나는 복잡한 감정들은 언제나 연민과 추억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곤 한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정말 재밌게 보았던 이유도 이와 같다. 생명력과 연약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나이의 두 주인공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거기에 부드러운 음악과 선명한 반전을 휘핑크림처럼 잘 얹어 놓은 이 영화를 꽤나 달달하게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풋풋한 첫사랑의 감성을 잘 쌓아올린 플롯으로 전해주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그래서 이번에 재개봉하는 <청설>에 대한 기대도 컸다. '대만 첫사랑 로맨스, 그 시작'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우리가 바로 원조다'라는 자신감과 포부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청각장애라는 설정 속에서 풋풋한 두 주인공의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아름답게 가 닿을지 더욱 궁금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청설>은 첫사랑이 자아내는 여러 감정들에 언제든 반응할 준비가 되어있는 나의 감성을 건드리지 못했다. 남자 주인공 티엔커와 여자 주인공 양양의 캐릭터에는 공감을 하기가 힘든 부분들이 있었고, 이러한 부분 때문에 그들의 사랑에도 온전히 감동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청설>의 이야기는 푸른색으로 가득 찬 수영장에서 시작한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양양의 언니 샤오펑은 패럴림픽 수영 종목의 금메달 유망주이다. 양양은 그런 언니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책임진다. 매출이 꽤 괜찮은 도시락 가게의 외동아들 티엔커는 도시락을 배달해주다가 양양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양양과 샤오펑을 보며 티엔커도 양양에게 수화로 대화를 걸고,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이후 사소한 오해와 실수가 생기고, 샤오펑의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는 사건 때문에 둘의 관계는 더욱 큰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헤엄을 치기 위해 물살을 갈라도 곧바로 붙어버리는 수영장의 물처럼, 이들의 순수한 사랑은 다시 이어진다. 4년 뒤에 올림픽에 참가한 샤오펑을 응원하는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순수한 사랑 이야기 속에서, 두 주인공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묘사되지 못했다. 티엔커는 양양이 아무리 자신을 밀어내도 한결같이 그녀만을 바라본다. 그는 자신의 메시지를 무시하는 양양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양양의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 두고 양양에게 전할 멘트를 연습하다가 모니터에 입술을 들이밀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양양을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마치 양양이 자기 삶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부모님이 양양과의 교제를 허락해주지 않으면 그녀를 포기할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백치미와 백치 사이를 오고 가는 듯한 티엔커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또 전형적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순애보도 밋밋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양양의 캐릭터 또한 아쉬웠다. 그녀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언니의 꿈을 자신의 꿈과 동일시하며, 언니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끼니도 거르며 매일매일 아르바이트를 한다. 양양의 꿈까지 지고 가던 것이 버거웠던 샤오펑이 '나의 꿈을 훔치지 마. 너는 너의 꿈을 꿔'라고 말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양양이 자신을 위한 꿈이나 목표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양양의 삶에서 샤오펑과 티엔커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삶은 단조롭다. 또한 사소한 다툼 끝에 티엔커에게 돌아서고, 몇 번이고 용서를 구하는 티엔커를 차갑게 거부하는 모습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심도 느낄 수 없었다. 언니를 대할 때 보여주는 배려심과 그 온도차가 꽤 심해서, 그녀가 티엔커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청설>은 소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티엔커와 양양이 손짓으로 속삭인 표현들은 지극히 달콤했고, 설렘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알고 보니 양양은 청각장애인이 아니었고, 티엔커를 청각장애인으로 착각해 여태껏 수화만 사용해 왔다는 반전도 영화에 신선함을 더해주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가 그들의 주인공을 조금 멋지게 그려주었다면, 그래서 그들의 사랑과 감정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면, 그들의 사랑이 더 많은 이들에게 맑고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첫사랑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마치 우리들의 '첫사랑'처럼, 어딘가 부족하고 아쉬웠던 영화 <청설>이었다. ⓒ라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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