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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꾸 Aug 05. 2018

채식주의 트렌드, 배민의 ‘치킨 마케팅’을 위협하다

YOMA Vo.5_2018년 8월호_주제 "음식"

얼마 전 세계적인 코워킹 스페이스 브랜드 위워크(WeWork)의 공동창업자 미구엘 맥켈베이는 6000명의 직원들에게 메일을 한 통 보냈습니다. 메일에는 앞으로 위워크의 사내 행사에서 고기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며, 직원들이 고기가 포함된 식사를 할 경우 그 비용을 회사에서 지원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기업가치 200억 달러(한화 약 22조 4천억)를 자랑하는 혁신적인 글로벌 기업이 전사적인 차원에서 육식을 지양하고 ‘채식’을 강력하게 장려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위워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채식주의*는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민텔은 2017년의 푸드 트렌드로 ‘채식주의의 확대’를 꼽았는데, 이를 증명하듯 네덜란드에서는 2014년부터 2017년 사이에 전체 인구에서 베지테리언이 차지하는 비율이 4배나 증가하였습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식물성 원료로 고기를 만들어내는 대체 육류 시장은 2020년까지 30억 달러 규모로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11번가나 옥션과 같은 오픈 마켓에서 대체 육류 콩고기의 매출이 매년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평소에는 채식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육식도 같이 하는 ‘플렉시테리안’부터 육식 성분 자체를 거부하는 순수 채식주의인 ‘비건’까지, 채식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논의의 편의성을 위해 채식의 의미를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 목축용 고기를 되도록 멀리하는 식습관’이라고 단순화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식물성 패티로 만든 햄버거로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임파서블 버거' [출처: 임파서블 버거 홈페이지]

이러한 채식주의 열풍이 유행에 그칠까요, 아니면 우리의 식문화를 바꿀 메가트렌드로 진화할까요? 제 생각에는 후자에 가까울 것 같은데요. 오늘은 채식이 앞으로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 어떤 원동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씀드린 후, 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마케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배달의 민족’의 사례를 통해 살펴볼까 합니다.


#01 점점 더 젊고 트렌디해지고 있는 채식주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서로 공유하며 문화로 발전시키는 주체는 흔히 말하는 ‘젊은이’들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 젊은 세대들이 채식주의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인데요. 캐나다의 델하우지 대학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밝힌 캐나다인들의 절반 이상이 35세 이하의 젊은 청년들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영국의 언론 매체 텔레그래프는 영국 비건(육식 성분 자체를 거부하는 순수 채식주의자) 인구의 42%가 15~34세였고, 그 중 도시 거주자 비율은 88%에 달했다고 보도했는데요. 이를 통해 채식주의가 트렌드에 민감한 도시의 젊은층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럽 내에서 채식주의를 선도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를린에는 비건들을 위한 거리 ‘쉬벨바이너’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170개 이상의 비건 식당, 카페, 식료품점, 옷 가게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독일의 젊은이들은 쉬벨바이너 거리를 찾아와 비거니즘(식습관 뿐만 아니라 옷, 화장품 등 모든 소비재에서도 동물성 제품을 거부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습니다.

쉬벨바이너 거리의 '비건 로드'를 대표하는 비건 슈퍼마켓, 비건즈(Veganz). [출처 : 비건즈 홈페이지]

우리나라에서도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서울시립대 등 서울 시내 주요 대학교에서 채식 동아리가 활동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렇게 젊은 대학생들이 주도하여 젊고 세련된 느낌의 비건 페스티벌이나 비건 파티를 기획하고 있면서 채식 문화를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비건 베이커리를 중심으로 채식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는데요. 우유와 버터 대신 두유나 현미유, 코코넛 오일을 사용하여 빵을 만드는 비건 베이커리는 영원한 핫플레이스 홍대에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러한 베이커리들은 하나같이 ‘인스타그래머블’한 매력을 뽐내며 채식주의자 뿐만 아니라 건강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젊은 층에 의해 트렌디하게 소비되고 있는 ‘채식주의’. 채식주의는 식문화이자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대중문화 속에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좌) 제 5회 비건 페스티벌 포스터 [출처:비건페스티벌 코리아 페이스북] (우) 홍대에 위치한 비건 베이커리 야미요밀 [ 출처 : 야미요밀 인스타그램]


#02 ‘가치 소비’와 맞닿아 있는 채식주의


‘미닝아웃’은 2018년의 소비 트렌드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던 개념입니다. ‘신념’을 뜻하는 ‘Mean’과 ‘드러내다’라는 뜻의 ‘Coming Out’이 합쳐진 말인데요. 오늘날 소비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가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이나 선호하는 브랜드를 통해 신념과 가치관을 선언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들은 특히 도덕적이고 공익적인 가치관을 내보이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데요. 이러한 성향은 윤리적 가치를 가진 제품에 기꺼이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가치 소비’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채식주의는 ‘동물권’과 ‘환경’, 두 가지 측면에서 ‘가치소비’와 맞닿아 있습니다. 하나씩 천천히 살펴볼까요?


동물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 채식으로 이어지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품 패션 브랜드 구찌, 마이클코어스, 지미 추는 올해부터 천연 모피와 동물 털을 사용한 제품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갑, 가방 등 가죽 제품들로 유명한 브랜드들이 이렇게 파격적인 선택을 한 데에는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오래 전부터 동물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배경과도 맞물립니다. 러쉬는 동물 실험 반대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여왔고, 매출의 일부를 동물 보호 단체에 기부해 왔는데요. 또한 러쉬는 동물실험 반대 운동과 대체 실험 활성화를 위해 총 4억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러쉬 프라이즈'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윤리적인 가치, 특히 동물의 권리를 브랜드 정체성의 전면에 내세운 결과 러쉬의 매출은 2016년에 1조원을 돌파했고, 연평균 1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러쉬가 동물 실험 근절을 위해 시행하는 시상식, '러쉬 프라이즈' [출처 : 러쉬 홈페이지]

이처럼 동물권을 외면해왔던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의 요구로 인해 동물 친화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동물권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로 소비하는 육류가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생산’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만큼 채식은 동물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모든 도살장이 유리벽으로 지어졌다면 모든 사람은 채식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라는 폴 매카트니의 말처럼, 동물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상황 속에서 채식주의도 더욱 빠르게 트렌드로 안착할 것입니다.


환경을 ‘덜' 파괴하고 싶은 마음, 채식으로 이어지다


최근 미세 플라스틱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스타벅스의 대응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2020년까지 스타벅스의 전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기로 발표했기 때문인데요. 또한 이케아는 매년 14억개씩 팔리는 식품 보관용 지퍼백 이스타드(ISTAD)의 소재를 사탕수수를 원료로 한 바이오플라스틱으로 바꾸었으며 맥도날드는 2025년까지 매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포장재를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바꿀 것을 선언했습니다.

한편 시장 조사 기관 닐슨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해산물 시장에서 해양관리협의회(MSC, Marine Stewardship Council) 인증 마크가 부착된 수산물의 판매가 27%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MSC 인증 마크는 해양 자원 보호 규정 준수, 환경 영향 최소화, 남획 금지 등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제품에만 부여되는 만큼, 소비자들이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들에 지갑을 기꺼이 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환경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제품에 부여하는 MSC 인증 마크. [출처 : MSC 홈페이지]

이처럼 소비자들이 환경 친화적인 제품들을 많이 소비하고 있고, 세계의 거대한 기업들도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곧 소비의 트렌드가 환경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트렌드는 채식주의와 굉장히 잘 맞아 떨어지는데요. 그 이유는 육류를 생산해내는 과정에서 환경이 어마어마하게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15억 마리의 가축들이 내뿜는 메탄가스는 전 세계의 자동차들이 내뿜는 배출가스보다 더 큰 온실효과를 유발한다고 합니다. 또한 목초지 조성을 위한 삼림 파괴, 사육에 따른 식량과 식수 부족, 대량 사육으로 인한 종 다양성 감소 등 축산업은 환경에 광범위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인데요. 채식주의는 육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환경적인 문제들을 완화시킬 수 있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환경 친화적 소비자들에 의해 소비 트렌드의 한 축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03 배달의 민족의 '치킨 마케팅'에 대하여


지금까지 채식주의가 메가트렌드가 될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흐름이 마케팅과 브랜딩에는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올까요? 채식주의는 동물권이나 환경 등 육류를 섭취하는 것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 ‘불편한’ 요소들에 반응하는 소비자들을 점점 많이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업이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마케팅 메시지나 캠페인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질 텐데요.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의 행보가 가장 궁금한 브랜드가 바로 ‘배달의 민족’입니다. 배달의 민족은 지금까지 ‘배민하면 치킨, 치킨하면 배민’이라는 마케팅 메시지를 통해 많은 성공을 거둬왔는데요.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와 같은 캐치프레이즈, 치킨 맛을 감별하는 ‘치믈리에’ 이벤트, 치킨에 대한 모든 내용을 담은 ‘치슐랭 가이드’ 책 출판까지. 배달의 민족은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치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좌) '오늘은 치킨이 땡긴다' 뱃지 [출처 : 배민문방구] (우) 치킨 가이드북 '치슐랭 가이드' [출처 : 배달의 민족 공식 블로그]

하지만 지난 7월에 진행된 치믈리에 행사장에서는 비건 동물권 활동가들에 의해 닭들의 죽음을 희화화하지 말라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시위대는 단순히 ‘닭고기로 만든 치킨을 먹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닭고기로 만든 치킨을 먹는 것이 재미있는 문화, 즐겨야 하는 문화인 것처럼 포장하는’ 배달의 민족의 마케팅 메시지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는데요. 


이는 치킨을 활용한 배민의 마케팅 메시지에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과거에 비해 더욱 많아졌고, 그 결과 그러한 메시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뜻하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배달의 민족이 치킨을 활용한 마케팅 메시지에 어떤 변화를 가져갈지, 그 변화가 채식주의 트렌드를 올바르게 반영할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소수의 사람들의 특별한 식습관이라고 여겨져 온 ‘채식주의’. 앞으로는 더욱 보편적인 ‘라이프 스타일’의 하나로 자리 잡을 채식주의 트렌드에, 마케터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겠습니다.

채식 관련 글을 쓴 것을 계기로 필자가 직접 다녀온 비건 레스토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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