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책상의 쓸모
끝내지 못한 일들로 가득한 책상
꾸준한 퇴보
by
조인
Jul 24. 2020
책상 위에는 밀린 학습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때론 월별로 주별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꽂혀 있었고
,
때론 급박한 마감일을 알리듯 책상 위에 올려져 있기도 했다.
'저걸 빨리 해야 하는데... 할 거야! 할 거야
!
!'
언젠가는 저걸 해 버리고 말겠다는 의지와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져 버린 적이 없었다.
며칠 몇 주 몇 달을 해내지 못한 채 가지런히 쌓아가기만 하는 동안, 마음의 부담과 압박과 스트레스도 함께 두둑해졌다.
그리고
공간도 마음도 포화상태에 다다른 어느 날 그것들은
엄마 몰래
재활용 수거함으로 싹 다
버려지고 말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
학습지를 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진심으로 그걸
펼치는 게 힘들었다.
그 날들의 무력감이 생생하다.
무력감은
빠르게 전이된다.
밀린 학습지의 파장은
삶의 다른 영역까지 침범했다.
나는 자주 무력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자꾸 책상을 정리만 하며... 보냈던 것 같다.
꽤 야무지고 강단도 있던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떡볶이를 해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곤 했는데, 그날 그녀는 함께 공부계획을 짜자는 제안을 했다.
그날은 시험 성적이 나온 날이었고 성적이 떨어져 선생님께 한소리 들었던 그녀는 비장해 있었다.
빈 종이 하나를 주욱 뜯더니 거침 없이 날짜를 적고 공부 계획표를 작성해냈다.
뭐 대단한 거야 있었겠냐마는, 매끄러운 글씨체로 종이 한 장을 빼곡히 채워내는
거침
없는 진취성에 나는 놀랐다.
더 대단한 건 그녀의 실천력과 끈기였다.
그 종이를 학교에도 들고 다니며
그녀는 계속해서 미션을 지워나갔다.
계획표는 금세
실행의 빨간 줄
로 죽죽 그어졌다. 빨간 줄의 세찬 기운에 나는 살짝 주눅이 들었던 것도 같다. 나는 무언가를 그렇게 진취적으로 해본 적이 없는 소극적이고 무력한 스타일이었기에.
.
다음 시험에서 그녀는 일 등을 했던가. 다음 선거에서 그녀는 반장도 되었던가.
나름 꽤 상위권을 차지했던 나의 공부 실력은 점점 밀려가는 학습지와 함께 꾸준히 퇴보했다. 불행히도 말이다.
전적으로 체력이 달리고 근력이 부족한 나는 여전히 몸과 마음이 무력이 날들이 많다.
육아도 살림도 열정도 뭔가 남들보다 더딘 삶.
이 더딘 행보를 '나의 속도'라 규정하고
살살 달래며 살아가지만,
오늘은 문득 밀려 있던 책상 위의 학습지 뭉치들이 생각나고 내 마음은 껄끄럽다.
이를 악물고 다 풀어낸 후 성취감을 만끽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차라리 그냥 빨리 학습지를 끊어 버렸다면 어땠을까.
어쨌든 '방치'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못했다.
오늘 나의 책상 위에는
정리되지 못한 메모들이 가득하고,
읽지 못한 책들과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즐비하다.
오늘은 적어도 '방치'하는 최악은 선택하지 않겠다.
해치우든 포기하든, 추진력을 발휘하여 진보를 경험하겠소.
keyword
책상
무기력
진보
12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조인
직업
에세이스트
글과 삶의 호환. 글이 고여 글을 씁니다. 지금은 아마도 혹독한 '마흔앓이'중인 것 같아요.
팔로워
84
제안하기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를 권하는 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