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인 Sep 06. 2019

엄마의 아지트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방이라니.  

목차도 출판사도 볼 것 없다. 책을 샀다.  

 읽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제목이 멋지니 됐다.




라는 동안

내게 특별히 금지된 엄마의 공간은 없었다.

나는 원하면 언제나 엄마의 방을 드나들 수 있었고 화장대와 책상을 겸한 엄마의 공간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가끔 심심하면 엄마의 가계부를 들춰보기도 했던 것 같다.

가계부 속 간단히 메모하듯 써 놓은 엄마의 일기로 엄마의 속마음을 훔쳐 본 기억도 난다.


그랬으면서.

나는 나의 공간을 가족들에게 당당히 주장하고 산다.

아이들에게 '이건 엄마 꺼야!' 라는 말 자주 한다. 첫째든 아직 말도 못하는 둘째든

내 책상 위 물건은 만지지 못하게 한다.

대신 나도 너희들의 공간과 물건을 존중하겠노라며 나의 이기심을 나름 포장은 하고 산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돌맹이가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한 시간들이 지속됐다. 

병원에 갔고 몇몇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이상없음이었다.

의사는 '신경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엄마는 무엇이 내게 스트레스가 되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방'이었다.

당시에 우리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나는 할머니와 함께 방을 써야 했다.

할머니는 내 책상에  앉아 성경도 보시고

내 책상 위에 안경이나 펜 같은 할머니의 물건 올려 놓으셨다.

나는 그것이 소스라칠 정도로 싫었다.  

표현하지 못한 채 끙끙 앓았다.

내 물건 위치나 각도가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

나는 지나치게 날카로워지곤 했다.  


며칠 간 엄마는 고민하는 것 같았다.

이후에 나는 방을 갖게 되었다.

'자기만의 방'

 살 많은 오빠가 할머니와 방을 같이 쓰게 되었고 오빠의 방은 내 방으로 바뀌었다. 

나의 가슴통증은 정신과 방문 없이 싹 나았.


나는 혼자 방을 쓰며 '멀쩡히' 자랐다.

오빠는 잘 지내는 것 같았지만, 몇 년 후 대학을 '굳이' 지방으로 가긴 했다.

조금 미안했지만 오빠는 o형이라 괜찮다 애죄책감을 벗었.


남편과 아이들이 있지만

나는 여전히, 아니 더욱 나만의 방이 필요하다. 수작을 부리고 비밀공작을 펼치는

은밀한 나만의 지트가 필요하다.


옷 방 한 구석에 놓인 작은 책상.


화요일 저녁마다 찾아가는 동네 카페.

특히 제일 안쪽 4인용 소파 테이블.






이전 17화 귀한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