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시로 '생산성'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나 또한 자본주의의 노예다. 살림을 하는 것이 '생산성'이라는 걸, 두 생명을 낳고 키워 내는 것이 그 어떤 생산성 이상의 '생산성'이라는 걸,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진리고 진실이지만 이상적인 발언으로 치부되는 논리라며 제껴두고, 나도 번듯하게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돈 걱정을 하고 돈 벌 궁리에 빠져든다. 전업주부라는 직업? 전업주부에게도 임금을 주어야 한다는 책 속 주장('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_정아은 지음)이 눈물 겹도록 반갑고 고맙기는 하나,
그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그것도 내가 주부로 사는 이 시대에 실현되리라는 꿈은 꾸지 않는다/못한다.
소모적인, 스스로 소모적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몇 년 간 살아내며
이런 저런 방향으로 참 많이 나의 '생산성'에 대해 변명하곤 했다.
내가 낳고 키우는 이 아이들의 향후 사회적 기여도와 영향력을 생각하면 나의 지난한 오늘은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돈이 전부냐며, 남편을 내조하고 있으니 남편이 버는 돈의 반은 내 몫이라 여기며 당당하려 애쓰기도 했고, 내가 절약하고 현명하게 소비하는 것들에 대한 가계 기여도를 일부러 계산하며 살림에 대한 효능감을 끌어올렸다. 가끔 올리는 글에 공감의 댓글이 달릴 때면 이것도 영향력이라며 즐거워해보기도 하고, 나는 다만 지금 재취업을 위해 준비하는 중이라며 열등감과 초라함을 감추기도 했다. 틀린 항변은 없지만, 딱히 대단한 항변도 없다.
이 모든 것이 맞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고하고 전업주부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실질적으로 사회적인 대우를 받고 명예를 취하고 하는 일은 (당장은/ 일단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냥 나의 열등감을 인정해 버린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경력 단절의 기간이 길어지고, 사회적인 감각은 어찌할 수 없이 떨어져 갈 것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인다. 나는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을 따져볼 틈도 없이 스멀스멀 전업주부라는 자리에 안착했다. 다시 돌아가 하나하나 치밀하게 손익을 계산한다해도 전업주부라는 직업을 선택할 지는 의문이다. 내 인생의 전체 기간을 전업주부로만 살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이곳임을 확신한다. 한 가정의 안위를 영위하는 일, 식상한 구호처럼 느껴지긴 한다만 나라의 미래를 길러낸다는 이 일의 '생산성'에 나는 결국 설득당했다.
전업주부라는 직업이 본디 가장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도 생산성에 대한 열등감을 가지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러니 나의 생산성 타령도 생산성에 대한 열등감도 굳이 나는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살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