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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Jul 12. 2020

할머니와 기저귀

돌이킬 수 없는 후회

    

딸아이의 기저귀를 수시로 갈아댄다. 아직 혼자 용변처리를 못하는 첫째 아이의 뒤처리도 내 몫이기는 마찬가지다. 비위 운운할 처지는 못 된다. 밥을 먹다가도 아이가 부르면 달려가는 거다. 식사 도중 아이의 용변을 처리하고 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식사를 이어가는 나를 본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나의 비위가 진화했음을 스스로 뿌듯해하던 참이었다.      




할머니가 엄마한테 기저귀를 사다 달라고 했단다. 헉, 기저귀라고?! 백 살까지 거뜬히 살아낼 정정한 우리 할머니가 웬 기저귀?! 구순이 지난 시어머니와 일흔을 향해 가는 지친 며느리의 팽팽한 기싸움 정도로 여겼다. 할머니가 어리광을 부린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정정하고 깔끔한 사람이 어울리지 않게 무슨 기저귀란 말인가.


생애 첫 독립을 하신 후, 할머니는 잠시 분가의 자유를 누리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속이 탈 나고 기운을 잃기 시작한 할머니는 눈빛이 흐려지고 목소리까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죽음의 징조임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러나 죽음의 징조가 보여도 나는 죽음을 상상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아프다는 것에 마음이 불편할 뿐이었다.

안부를 물으려 전화를 드린 어느 아침,  할머니는 내가 생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목소리로 못 일어나겠다고 아빠를 부르라고 징징거리셨다. 아이를 잠시나마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는 할머니한테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머릿속에 자꾸 기저귀 생각이 났다. 어른의 기저귀는 본 적이 없다. 가면 기저귀를 갈아줘야 할 것 같은데 노인의 기저귀는 어떻게 갈아야 하지? 딱히 목욕탕 한 번 같이 간 적 없는데 나는 할머니의 몸을 보듬을 수 있을까. 결국 나는 할머니의 집이 아닌 카페로 향하며, 엄마에게 sos를 쳤다. 바로 가보겠다는 엄마의 말에 안심하고, 나는 마음을 좀 추스르고 다음에 가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매일 전해 듣는 할머니의 소식은 자꾸 나의 방문을 미루게만 했다. 좀 더 좋아지시면 가야지, 뭘 좀 드실 수 있게 되면 반찬이나 해가지고 가야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간 어느 주말. 그날은 꼭 할머니를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엄마와 길을 나섰다.  사갈 것이 있어 시장을 먼저 들렀는데 아이들을 보고 계신 친정아빠한테 전화가 온다. 주문한 욕창매트가 도착해서 본인이 할머니한테 야 하니, 일단 집에 오라는 거다. 아... 또 한 번 미루는 건가... 찜찜했지만 성미 급한 아빠의 안달을 듣고 싶지 않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주중에 한 번 가지 뭐.


그러나, 다음은 없었다.

부모님은 그날 저녁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할머니를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 할머니는 목욕재계를 하고 깨끗한 병실에 누워 평안히 잠드셨고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으셨다.

    

마침 내가 사는 집과 할머니가 오게 된 요양병원은 꽤 가까웠다. 나는 이제 기저귀 걱정 없이 마음 편히 할머니한테 드나들 수 있겠구나 마음이 가벼웠는데, 그 가벼운 마음으로 이른 아침 소천 소식을 들었다. 내가 믿었던 바와 달리 할머니는 백 살 수명이 아니었다. 구십도 꽤 장수요, 큰 지병 없이 큰 고생 없이 가셨으니 호상이라면 호상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의 흔적 하나가 남겨졌다. 마침 할머니가 살고 있는 친정 가까이 이사를 온 해였고, 마침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주어 조금은 숨통을 트이는 시기였고, 마침 할머니가 소개받아 온 요양원도 내 집 근처에 있었거늘, 나는 이 모든 기회를 외면했다. 기저귀 탓이라면 기저귀 탓이고, 사람이 이렇게 허망하게 가는 것이라는 걸 정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기도 하고, 그냥 내가 너무 차갑고 냉랭한 인간이라 그것 또한 큰 탓이다.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며 여한 없는 인생에 대해 늘 묻곤 한다. 그러나 아쉬움 없이 사람을 보내는 일에 대해서는 나는 너무 무지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어디 있냐며 늘 당당한 나지만, 이번 실패는 돌이킬 수도 당당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오래도록 당신을 추모하고 더 깊이 애도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뿐이다.      


입관 절차를 밟으며 너무나 평안하고 깨끗하게 누워있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만났다. 그때 떠오른 건 기저귀였다. 나는 왜 할머니의 기저귀가 그토록 두려웠던 걸까. 여기 누운 구십의 이 노인네도 아기처럼 한없이 무력하고 깨끗한데 말이다.      


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세상 모든 죽음에 대해 세상 모든 삶에 대해, 나는 따뜻해졌다. 뱃속부터 성큼 걸어 나오는 아이가 없듯이, 다시 돌아갈 때도 성큼성큼 걸어서 돌아가는 이는 없다. 그걸 알게 되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실패와 마음속 깊은 후회도 경험해 보았으니, 나는 생명을 맞이하는 일 못지않게 보내는 일도 조금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아이의 기저귀를 갈듯, 노인의 기저귀도 기꺼이 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런지 확신은 여전히 없지만 말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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