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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Dec 31. 2019

이렇게 혼자만의 송년회를 치렀다

독감 걸린 아이들과의 혹독한 송구영신


첫째 아이의 독감 판정 후 이틀이 지났다.

둘째 아이도 독감 판정을 받았다.

말 내내 독감 걸린 아이들을 홀로 돌보고 나니, 나 또한 독감이라도 걸린 듯

몸과 마음에 몸살이 오기 시작했다.


몸을 위해 누울 것인가 

마음을 위해 외출할 것인가를 잠시 고민했다.

이 숭고한 송구영신의 때에

몸만 돌보고 있을 수 없다.

후다닥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휴일인 남편에게 아이들을 떠맡기고 현관을 나서자 나왔다는 안도감에 숨통이 트인다.


굳이 버스를 타고 동네를 벗어났다.

도망자의 기분으로

더 집과 아이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화려한 중심가로 들어갔다.


평일 오후인데도 연말이라 그런가

스벅은 빡빡하게 붐비고 있었다.

산만함이 서운하다. 내가 어떻게 나왔는데...

아니다,

몰입하기 위해 대중의 틈으로 들어왔지, 그랬지. 이건 산만함이 아니라 나의 몰입의 배경이 되어준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조용히 송년잔치를 벌인다.


이건 송년회니

아메리카노도 그란데로 주문한다.

이건 송년회니

굳이 얼그레이 생크림 케이크도 통 크게 주문한다.


한참을 바라보며, 잠시  멍한 시간을 보냈다.

이 한 해가 간다고

다음 한 해가 온다고 내게 말해 준다.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번갈아 보채다 싸우다 잠들다를 반복했던

꼬박 이틀의 시간 보내며

나는 왜 하필 이 때냐고 원망했다.

포근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무너질 게 뻔해도 비장한 계획들을 세우며

설렘이 폭발하고 싶은 그런 시간에 말이다.


뜨거운 커피로 몸을 녹이고

달콤한 케이크로 마음을 녹인다. 

불평과 분노도 사그라든다.

'엄마, 커피는 영어로 아메리카노지?'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아들의 목소리에 피식 웃음도 나온다.


겨우겨우 감사의 마음을 회복해 나간다.

짐짝처럼 던져 놓고 나온 아이들의

그 귀한 존재감에 대해 다시 깨닫는다.

(누군가는 생명의 질감이라고도 했던가)

기침을 해 대고

콧물을 이부자리 여기저기에 묻혀 가며

밤새 뒤척이는 두 아이 틈에서

이틀을 보냈는데,

나는 독감의 늪에 빠지지 않고

멀쩡히 걸어 나왔으니

그 또한 감사할 일이다.


감사했던 일들 감사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송년의 분위기를 부추기고

내년 나는 또 어찌어찌 살아보겠다는 각오로 신년의 분위기를 내고.


이렇게 혼자만의 송년회를 치렀다.


사람이 혹독한 시간을 건너고 나면

이후의 일상들이 좀 수월하게 느껴지는 법인데 1+1으로 찾아온 이번 아이들의 독감은 내게 혹독한 고난을 메시지로 받는 법을 경험하게 한다.


혹독한 독감 전쟁에서

나만의 송년회는 더 고귀하게 빛이 났다.

아이들이 건강한 게, 내가 건강한 게

그토록 특별한 선물이고 그토록 대단한 기회였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삶이라는 선물을 삶이라는 기회를 꽉 붙잡으라는 메시지를 이번 독감이 쥐어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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