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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Mar 11. 2020

이천 원과 한 시간

행복의 마중물

코로나 19. 


지쳐 버렸다.


아이의 육아와 삼시세끼 식사,

그리고 잡다한 기타 등등.

나는, 아이만큼이나 섬세하게

아이보다 먼저 돌봐주어야 하는

약하고 악한 나의 자아를 미처 돌봐주지 못했다.


돌봐주지 못한 자아는 탈이 나고 만다. 

한 동안 내 시간도 내 공간도 누리지 못한 나는

잔뜩 심술이 올랐고,

구정물 같은 파장은 아이들과 남편에게로 향했다.



힘든 사람들이 많은데,

그저 감사하고 일상에 충실해야지 하는 다짐은 '여력'이 없어지니 '무력'해지고 말았다.


친정 방문조차 꺼려졌지만

나도 아이들도 숨통을 터야 했기에,

마스크 중무장을 하고 친정길에 나선다.

아이들을 먹여 놓고 씻겨 놓고는,

염치 무릅쓰고 잠시 '탈출'을 한다.


친정집 바로  카페로 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앉았다.

친정집 앞 커반, 야무진 아메리카노

이 천 원.

값도 싸고 양도 적지만 맛과 향이 꽤 야무지다. 커피와 함께 한 시간을 머물렀다.

잠시 멍도 때리고,

불안한 마음에 손 소독도 한 번 해 주고,

천천히 책도 조금 읽었다.


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났지만

가뿐 숨이 차분해지고, 마음이 좀 풀린다.


집에 갇혀 아이들과 부대끼면서도

나는 부단히 노력했었다.

성실하기 위해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

그러나 애를 써도 좀처럼

주저앉은 마음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겨우 이 천 원의 돈을 쓰고

겨우 한 시간의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내게 '마중물'이 들듯

회복의 기미가 나타났다.



전염병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도 중요하지만

육아와의 거리, 살림과의 거리,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거리 또한 참 중요하다. 


바삐 또 일상으로 돌아간,

한 줌의 마중물을 채웠으니

나름 밑천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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