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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위로는 수고롭다
마음만이라도 전한다는 말의 거짓
by
조인
Mar 15. 2020
'마음만이라도 전해요.'
내가 잘 쓰는 말 중 하나였다.
위로해야 할 사람이 생겼다.
나는 카톡을 열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절주절...
이렇게 마음만이라도 전해요."
그런데 바로 보내지를 못하고
자꾸 읽어보며 망설이게 된다.
오늘은 이 말이 영 거슬린다. 마음에 걸린다.
나는 나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묻는다.
너 진심이니?
물론 진심이다.
유산 소식을 듣고 시술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다. 아이 낳아 키우는 내가
어찌 진심이 없을 수 있겠는가.
나 또한 배 속에 생명을 품고
걸음조차 조마조마 걸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진심으로 나도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메시지를 쓸 때
나는 정작 그 마음을 잊고
나의
체면
에 대해 곤두섰다.
어떻게 써야 뭐라고 써야
내가 너를 걱정했고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생색
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를 들킨 것이다.
물론 맛있는 음식도 플레이팅은 중요한 법이다. 그러나 음식보다 플레이팅에 더 관심이 갔나 보다. 내가 스스로 마음이 껄끄러웠으니 말이다.
스륵 한 문장 써 날리면,
그것으로도 기본적인 관계의 유지와
체면치레가 가능하기는 할 것이다.
평소에 그런 기본도 못 하고
때를 놓치고 사람을 놓치는 경우도 많았지 싶다.
그런데 나는
문장을 사랑하고 문장의 힘을 믿는다하며 사는 사람으로서,
한 문장도 허투로 날리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자꾸 내게 묻는 것이었다.
내가 쓴 한 줄 글에 대한 진심과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인생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 맞다.)
무엇이 나의 진심을 오염시킨 것일까.
잠시 멈추어 생각했다.
마음은 전한다는 말보다
나눈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내 마음이 이랬다 하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내 마음이 이러하니 나의 것을 나누어 가진다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수고가 필요하다.
시간을 나누어 주든 물질을 나누어 주든
어떤 수고를 감내하든,
내 것을 나누어야 그 마음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 본질은 쏙 빼 먹고
이거 내 진심이다 하며 말로만 퉁쳐버리는 삶은 쉽지만 진짜는 아닌 것 같다.
자연은 말하는 대신 보여준다, 노랑이 보여준 봄.
아이를 임신했을 때, 출산했을 때
많은 축하를 받았다.
말로 축하해 준 사람들 또한 진심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고마웠다, 지금도 고맙다.
그러나 내 몸을 아껴주며 편한 자리를 배려해 주었던 사람,
편한 사람들과 가서 실컷 고기를 먹으라고 고깃집에 선결제를 해주었던 사람,
이런 사람들의 마음 나눔은
내게도 더 깊게 와 박힐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백일도 안 된 아기가 입원했을 때 직접 병원에 찾아와 주고, 나의 먹거리를 챙겨다 주던 사람들은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두 아이가 동시에 독감에 걸려 감금생활을 했던 지난겨울, 옆집에서 보내준 간식 한 보따리는 눈물겹도록 큰 위안이었다.
아, 알았다.
내가 양심에 찔려했던 건,
이것들이 내게 '빚'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내게 어떤 독촉도 하지 않지만
나의 양심은 나를 독촉했다.
한 문장 쓰기가 왜 그토록 힘이 들었는지, 알았다. 진심을 전하는 건,
문장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그 마음을 안고 가는 나의 어떤 수고다.
무엇으로 그 사람을 위로할까
어떤 수고로 그 사람의 아픔에 함께 앉을까를 고민하니 이제야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마음만이라도 전한다는 말은
이제 나의 사전에서 지워버리기로 한다.
'힘내세요'라는 문장에 커피 한 잔이라도 함께 실어 보낼 수 있는 정직한 삶이기를 다짐한다.
진짜 위로는 수고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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