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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 Aug 30. 2019

서른여덟의 로망

샤랄라 샤스커트

출처 pixup


 다시 걸었다. 새옷같다.

아, 한 번도 입고 나간 적 없으니 새 옷이 맞긴 맞다.

둘째 출산 후 급격히 몸이 망가졌다.

살이 너무 빠져버려 볼품 없고 초라하다.

출산 후 백일이 지나면 시작된다는 탈모도

나는 조리원에서 우수수 시작되었다.
몸을 추스르고 돌아와서도

신생아 돌봄으로 잠을 계속 못 잔 탓에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산후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아기를 맡기고 나간 김에

미친 듯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거리를 쏘다니고

혼자 스시 집에 들어가 스시를 먹었다.

남편과 아기를 걱정하면서도

쇼핑몰을 부지런히 훑었다.  

초라해 보이는 나 자신을 위해

몇 개의 옷가지를  골랐다.


기본적인 아이보리색 니트원피스랑

옷가지들을 몇 개 담고 나오는데

눈앞이 순간 화사해진다.

디피된 샤랄라 샤스커트.

짧은 가죽질감 재킷에  코디된

롱한 기장의 샤스커트였다.

눈이 번쩍 뜨인다.

시간도 없었고 망설이고 싶지도 않았다. 입어보지도 않고 집어들어 계산을 했다.

그레이 칼라의 레이스감이 풍성한 스커트였다.

출처 pixup


이전부터 샤 스커트에 대한 로망 내지는 환상이 있었다.

패션 감각이 딱히 세련되지도 못했고

쇼핑을 즐길 시간이나 돈도 넉넉하지 않아

제대로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튀는 옷은 살 줄을 몰랐다.


20대 초반에 검정색 레이스 롱스커트를 한 번 구매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코디를 해봤지만

어떻게 입고나가야할지 몰라  

다시 벗어놓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날

그냥 버려졌던 것 같다.


이 샤스커트도 결국은 옷걸이에만 걸려 지냈다.

볼 때마다 내게 설렘을 주고

입어보려 할 때마다 내게 망설임을 주는 것을 반복했다.

결국 1년이 다 되어가지만

한 번도 입고 나갈 수는 없었다.


어제도 외출을 위해 입고 갈 옷을 이것저것 걸쳐보는데, 어쩜 하나같이 다 이렇게 구질스럽고 안 어울릴 수가.

그리고 가장 구질스러운 건 뽀루지까지 하나 돋은 나의 얼굴.

신경질이 났다.

얼굴에 화내봤자 소용 없으니

옷에 대해 화내기 시작한다.

입을 게 없다고.


난 기본적으로 옷에 사는 데 소심하다.

좋은 옷 예쁜 옷을 많이 업어보지 못한 탓이기도 하고, 부모도 남편도 돈 많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다. 튀는 옷이나 예쁜 옷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편견이길 바란다) 때문에 늘 평범한 디자인의 칙칙한 무채색 옷을 사입는 나다.

스무살 무렵 친구의 강력한 권유로

빨간 로엠 원피스를 입고 사 입었던 기억. 

그것 뿐이다.


이런 내게도 늘 공주스타일이나 발레리나 룩 따위에  대한 환상은 한 구석에 잠재되어 있었나 보다.  항상 레이스가 달린 옷들을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했다. 물론 선뜻 사지도 못했다.


 이번에는 입고 싶었다.

용기만 내면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으려고 노력도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입지 못했고

비로소 오늘은 저놈의 애물단지를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옷은 여전히 예쁘고 설렌다.

그러나 내게 어울리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다.

서른 여덟에게 예쁜 옷, 편한 옷.

아기 엄마에게 자연스러운 옷.

나라는 사람과 조화가 되는 옷이 따로 있다.


입지도 못하면서 오랜 기간 걸어놓았던 내 옷. 버리려고 몇 번을 망설였지만 미련을 놓기 힘들었던 건 옷이 아니라 나의 집착일 것이다.

인정하고 버리고

비워낸 스커트의 자리에

진짜 나의 옷을 들이려 한다.


설레는, 엄마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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