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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pr 08. 2020

모퉁이를 돌면 봄이 있을까?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다시 자유를 꿈 꾸며...

밴쿠버의 겨울은 참 길다. 여름이 끝나면 그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그러면서 긴긴 겨울이 시작된다. 한국처럼 많이 춥지 않지만, 늘 으슬으슬 추우며, 비는 일주일에 여덟 번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씨. 비를 낭만이라고 즐기기에는 참으로 길고 또 길다.


내 삶의 겨울도 그렇게 길었다. 행복하지 않았던 결혼생활을 끝내기까지 암흑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어느 순간 모퉁이를 돌면 분명히 봄이 있을 거라고 믿고 그 희망으로 살았었다. 처음에는 다시 뭔가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했고 또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원하는 것이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서 동거하는 것이 서로에게 모두 고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끝내기는 쉽지 않았다. 서로를 원망하거나 기대하기에도 지친 상황까지 갔을 때, 과연 봄이 정말 오려나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오히려 어딘가 있을 봄을 꿈꾸기 시작했었다.


When I was small, not much bigger than a pollywog,
my father said to me,
“Son, this is a cold, gray day but spring is just around the corner.”

당시에 영어를 가르치던 북클럽 어린이 동화책 Frog and Toal All Year라는 책에서 위의 문장이 나왔다. 너무나도 짧고 얇은 책이었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 어느 비 오는 날, 어쩔 수 없이 집안에 갇힌 두꺼비는 나가 놀지 못해서 짜증이 난다. 친구 개구리는 차와 케이크를 준비하고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자기 어릴 때 이야기를 해준다.


모퉁이 돌면 봄이 있을 거라는 아빠의 말을 믿고, 주인공 개구리는 그 모퉁이를 찾아 나섰다. 걷고 또 걸었다. 이번 모퉁이, 다음 모퉁이..."I went around the corner to look for spring.”이라고 덤덤하게 말하는 개구리의 문장을 읽고, 번번이 모퉁이 돌아 실패하는 나를 떠올리며 참으로 설움이 북받쳤던 것 같다. 어린 개구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비를 맞으며 먼 곳을 돌고 돌아 결국 집으로 돌아왔더니, 봄은 바로 집 앞 모퉁이에 있었다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에 나는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한동안 내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는 "Spring is just around the corner." 였다. 내게 그 모퉁이는 어디일까 고민하며 희망을 키워갔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실망하고 좌절하며 지쳐갔다. 어쩌면 하나의 인생에는 단 하나씩만의 계절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봄은 이미 지나갔으니 더 이상 봄 같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 내 나이는 가을인데, 지금 아무리 겨울처럼 춥다고 해서 또다시 봄을 맞을 수 있을까? 죽고 다시 태어나야만 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내 인생에 다시 봄이 왔다. 모퉁이 앞에 서 있던 순간까지 그게 진짜 봄을 향한 곳인 줄 알 수 없는 바로 그 모퉁이 앞도 여전히 추웠지만, 모퉁이를 돌자 꽃이 피는 봄이 찾아왔다. 너무나 다정하고 배려심 깊은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봄을 맞아 나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연일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인생은 사계절을 한 번만 거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아무리 늦었어도, 나이를 먹었어도 다시 봄을 피울 수 있다고...





길고 긴 밴쿠버의 겨울도 끝나고 밖에는 꽃이 피고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렇게 계절이 있는 것이겠지. 그런데 지금은 모두에게 겨울인 거 같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바로 봄일 거 같은 마음으로 초조하게 기다리는 늦은 겨울이다. COVID-19가 우리에 겨울을 가져왔다. 날씨는 분명히 봄인데, 우리는 지금 아무도 봄을 만끽하러 나갈 수 없다.  


오늘로 자가격리 14일째이다. 캐나다에서는 비행기로 입국 시 자가격리가 의무사항이고,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은 억대이다. 그리고 6개월 징역이라고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 자가격리 의무로 인해 막상 남편은 집에서 나가서 큰 딸네 집에서 지내고 있다. 원래 내가 나가서 지내겠다고 했으나, 나 편히 쉬라고 배려해주고 나간 남편은 지금 사는 것이 참으로 불편할 것이다. 재택근무까지 바쁜데, 도와주지도 못하니 안타깝다.


그리고 딸은 혼자 한국에서 자가격리 중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데리고 와서 엄마 밥 먹이면서 쉬게 해 주었을 텐데, 혼자 그곳에서 그러고 있는 딸 때문에 나는 마음이 참 아프다. 딸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엄마에게 웃어주지만 많이 힘들 것이다. 원래 피난은 가족에게 가는 것이 맞는 것인데 말이다. 혼자서, 엄마가 지내던 빈 집에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



우리 집 앞마당에는 아주 큰 벚나무가 있다.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서 행인들을 기쁘게 하는 이 나무는 거실 창문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나는 창 안쪽에서 꽃구경을 한다.


마법의 탑에 갇힌 공주도 아니건만 나는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저 창가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더 자세히 즐기고 싶으면 다가가서 조그만 창문을 연다. 그러면 그 밖에 봄이 있다.


꽃으로 가득 덮인 창밖의 풍경이 있고...


자유로운 푸른 하늘이 있다.
그리고 현관 앞으로 이어지는 길이 손짓하며 나를 부른다.


저 바깥으로 나가면 봄의 색이 다를까? 그냥 여기서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해야겠지. 꽉 막힌 곳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음을 감사해야겠지. 넓은 집이 있고, 부엌이 있고, 침실이 있고, 내 노트북이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비록 갇혀있어도. 또한 딸을 페이스타임으로 만날 수 있고, 남편을 또 그렇게 만날 수 있다. 옛날에 가난하던 유학시절, 30년 전, 부모님께 전화하려면 큰 마음먹고 돈을 써야 했던 당시를 생각해보면 이렇게 감사할 일은 또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 왜 울적한 것일까?


이렇게 문명화된 사회에서, 점점 더 글로벌 시대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그래서 세계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이제는 하나의 나라에 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던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터지면서 다들 각각 국경을 닫고, 주별 이동을 금지하고, 심지어 프랑스는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지정하고 있다. 모두 하나가 되었던 것들에 갑자기 담장이 쌓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게 장본 것을 주러 이 기간 동안 두 번 집 앞에까지 왔었고, 우리는 창을 사이에 두고 쳐다보았다.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집으로 돌아온 지 두 주 가까이 되었지만, 나는 이웃집 소닐라에게 안부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자유롭게 국가를 넘나들던 우리는 이제 이웃집조차 방문하지 못한고 금을 그어야 한다.


프랑스의 작가 슬리마니(Leïla Slimani)는  인간의 피부는 가장 무겁고 가장 넓은 기관이다. 갓난아기의 피부는 엄마의 배 위에 포개지고, 우리는 태양의 애무와 사랑하는 이의 시선에 자신의 피부를 드러낸다.”라고 하며 “코로나19 전염병이 타인의 피부를 점점 덜 만지게 되는 경향을 악화시켰다.고 말했다고 한다.


손 발이 묶인 듯한 이 기분, 감금당하고 자유를 잃어버린 듯한 이 기분, 그리고 밖에는 봄이 왔지만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는 감히 봄을 불러들일 수 없는 이 기분이 착각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현관문을 열고 한 발을 떼어 보았다. 여기는 여전히 우리 집이다. 단지 문만 열었는데도 기분이 달라졌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우리 집도 쳐다보고,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한 꽃잎도 만져보았다. 우리 앞으로 다가온 이 봄은 가짜가 아니라 이렇게 만질 수도 있구나.


내일은 나의 자가격리 의무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다. 그가 없어서 텅 빈것 같았던 이 집에 그가 돌아온다. 이 벚꽃들은 그를 반가이 맞을것이다, 나와 함께. 그리고 나면 곧 진짜 봄이 찾아오면 좋겠다. 우리의 마음 속을 따뜻하고 들뜨게 할 수 있는 봄이...


딸이 다시 집으로 올 수 있는 날도 다시 올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찾아오듯이 말이다.


작년에 왔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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