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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Apr 22. 2020

잡초를 키우기로 했다!

나에겐 이국적인 블랙베리가 그들에게는 잡초였다니...

영어로 화초 잘 키우는 사람을 green thumb 이라고 한다. 엄지가 녹색이라고 느껴질 만큼 화초와 친하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 반대인 사람은 brown thumb 이라고 하는데, 나는 바로 거기에 속하는 족속이다. 내가 손재주가 좋아서 자질구레한 것들은 보면 그냥 웬만큼 만들 수 있고, 바느질은 선생도 오래 했기에 완성품만 보면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있고, 요리도 예쁘게 만드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보니, 도대체 못 하는 게 뭐냐, 금손이다... 이런 소리를 많이 듣지만, 못하는 게 없을 리 없다. 라슈에뜨 로봇설을 주장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형편없는 근력과 바닥을 치는 암기력, 그리고 식물 죽이기 전문가에 속한다.


한국에선 선인장도 키우다가 죽이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게 나다. 애초에 화초 키우기를 별로 즐기지도 않는다. 애완동물처럼 와서 치대 지도 않으니 존재감을 쉽게 잊게 되고, 따라서 신경 써서 물 주기는 내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냥 나는 처음부터 서울에서 태어나서 쭉 그렇게 자란 도시 깍쟁이라서 그렇다고 주장했다. 한두 번 뭔가 관상용 화초를 키워보다 죽이고 나니 흥미를 완전히 잃기도 했다.


그런데 잘 돌이켜보면, 간간이 집에서 토마토나 상추를 키워서 따먹은 적도 있기는 하다. 그러고 보면, 수확해서 당장 먹는 종류가 관상용 화초보다 아무래도 내 취향에는 맞는 것 같다. 작년에 베란다에서 깻잎과 고추 모종을 키워서 날 추워질 때까지 잘 먹은 것은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좋다. 내가 키운 농작물을 먹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그래서 올해에는 좀 일찌감치 시작해보려고, 여러 가지 허브 씨앗도 뿌려보고, 화분 분갈이도 해보고 그러면서 슬슬 취미를 붙이기 시작해서 최근에는 거기에 추가해서 케일, 상추뿐만 아니라 한국 오이와 곰취, 곤드레까지 사 모아서 베란다를 차지하고 나니 완전히 흐뭇해졌다. (집에서 채소 재배하기 팁은 따로 정리 중)


그러다 보니 제대로 발동이 걸렸다. 뭔가 더 확실하게 수확할 수 있는 맛있는 것이 키우고 싶었다. 흠! 작년에 신혼여행 갈 때, 남편 딸네 집 들러서 운전 부탁했는데, 그때 정원에 있던 블랙베리가 생각이 났다. 나는 베리 종류를 다 좋아하지만 마트에서 사 먹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과일이 냉장고에 들어가고 나면 먹고 싶지가 않고 자꾸 잊어버려서 상하기 일쑤다. 그리고 사면 한꺼번에 다 먹는 것도 즐기지 않다 보니, 하루에 서너 개만 먹을 수 있으면 딱 좋겠는데, 과일을 그렇게 사 먹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노바스코샤 누님댁 데크


돌이켜 생각하니 처음 남편 만나서, 누님 댁에 놀러 갔을 때, 그 집 바닷가 뜰에 야생 블랙베리와 라즈베리가 하나 가득 있었는데, 열리는 대로 나가서 따먹었을 때 정말 좋았었다. 완전 꿀맛이었는데, 그걸 우리 집에서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큰 딸네 집에서 좀 얻어오자고 계속 졸랐는데, 남편은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나는 반복해서 주장을 했고, 정녕 그게 그렇게 키우고 싶냐던 남편은 크레이그 리스트 (Craglist)를 뒤져서 결국 내가 키우고 싶다는 라즈베리와 딸기 모종을 사 오게 되었다. 오호 쾌재라!


과실류는 해가 잘 드는 곳에 심어야 하는데, 우리 귀염이들은 어디에 심을까... 하면서 마땅한 곳을 찾아보다가, 결국 뒷마당 한쪽에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우리 집은 앞마당 쪽으로 해가 들고 뒤쪽은 좀 어두운 편이어서 사실상 방치되어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갑자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쪽에 귀엽게 얘네들을 심고 나서 나는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이번에 아리아나에게 김치 가져다주면서 블랙베리 좀 얻어오면 안 될까?" 남편은 진정 그걸 원하냐면서, 집에서 블랙베리 키운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왜 안 키우지? 슈퍼 가면 돈 받고 파는 블랙베리를?


큰 딸네 집에서 작년에 찍은 블랙베리 사진


큰 딸네 집에서 말했더니 원하면 잘라주려냐는 반응이 나왔다. 남편은 껄껄 웃으며 내게 다시 물었다. 정말 얘네들 데려다 심고 싶은 것이냐고. 평소에 그렇게 협조 잘하는 남편의 반응이 왜 이럴까 의문스러웠는데, 남편이 한마디 덧붙인다. 민들레 같은 잡초를 얻어다가 키우겠다는 것처럼 들린다고! 헐? 잡초? 과일도 열리는데 왜 잡초냐 다시 물었더니, 블랙베리는 번식력이 너무 강해서, 그냥 아무 데나 잘 자라고, 그게 한 번 침범하면 걷잡을 수 없어져서 골칫덩어리라고 했다. 아무도 집안에 원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하긴 정원을 가꾸지 않는 서울 아파트에서는 길가의 민들레도 잡초가 아닌 들꽃 같은 느낌인데, 이곳에선 정원의 골칫거리 대표주자가 민들레라는 것은 어린애도 알 것이다.


잡초인 민들레도 이렇게 꽂아놓으면 예쁘다! 소주잔이어도~


그래도 어쨌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블랙베리 가지를 들고 와서는 일단 양동이에 물 받아서 꽂아두었다. 저러다가 뿌리 나오면 심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심기는 했는데, 정말 저렇게 뿌리가 나올까? 


나중에 알아보니 아마 아닌 거 같다. 저렇게 자라는 애들도 있긴 하던데, 그러려면 뿌리 성장 호르몬에 찍어서 흙에 심어줘야 한단다. 어쩐지 그런 편법은 싫다.


아무튼 이렇게 하면서 신이 난 내 모습을 보더니 남편이, 우리 집 뒷마당 바깥 야산에도 천지에 깔린 게 블랙베리라고 남편이 말하는 것이 아닌가? 왜 난 몰랐지? 생각해보니 그동안 뒷마당 침침해 보인다 생각해서 나는 거의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가끔 곰도 출몰하니 어쩐지 으스스하고 무서운 곳처럼 느껴졌었던 것 같다. 정말 뒷마당 아이비 담장 너머로 보니 블랙베리가 잔뜩 우거져있었다.


아이비 뒤편으로 보이는 연두색이 전부 블랙베리, 담장을 대놓고 넘어오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어쨌든 잘해보자 싶어서 작정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정말 블랙베리는 그렇게 천덕꾸러기인 것인가? 그러면 시장에 파는 블랙베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고 봤더니 블랙베리는 정말 종류가 많으며, 재배용으로 키우는 것들은 가시가 없는 것들이었다. 따로 관리되고, 더 안전하게 키우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처럼 야생 블랙베리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야생 블랙베리 길들이기 프로젝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지 등등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그래서 나도 마당에 블랙베리를 키우겠다고 남편에게 생떼를 부렸다. 남편은 그런 내가 재미있는지, 내켜하지 않다가 결국은 적극적 협조를 시작했다. 이웃집과 맞닿은 담벼락에 작게 화단을 만들고 거기에 키워보자는 것이었다. 그곳은 땅이 온통 아이비로 뒤덮여서 어수선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제법 볕이 들어서 잘 자랄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달려들어 그곳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무 그루터기들 잘라놓은 것들은 남편이 하나씩 들어서 치웠고, 나는 바닥에 기어다는 아이비를 모조리 다 뽑았다.  전혀 바닥이 드러날 것 같지 않았던 곳이 점차 정리가 되어갔다. 아래 사진의 바닥에 보이는 아이비가 땅 전체에 다 덮여있었다.


바닥에 쫙 깔린 아이비 / 뒷마당에서 야산으로 나가는 출구 오른쪽으로  작게 화단을 꾸미는 중

엄마곰이 아기 둘을 데리고 와서 두들겨 팼다는 거름통도 다른 곳으로 옮기고, 한두 시간 열심히 일한 것 같다. 비포 사진을 찍어놨어야 했는데! 완전 변신했다! 남편이 나무를 가져다가 화단처럼 둘러주었다. 그다지 넓은 화단은 아니지만, 여기다가 일단 예쁘게 키워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다음 날은 본격적으로 블랙베리를 심기 시작했다. 큰 딸네 집에서 데려온 녀석들이 뿌리를 정말로 내리기나 할까 잘 모르겠는 상황에서 나는 그냥 무턱대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뒷마당 한 군데에서 작게 싹이 난 블랙베리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담을 넘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블랙베리였다. 그러고 나서 둘러보니 땅 밑으로 침범해서 작게 뿌리내린 녀석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나는 신이 나서 하나씩 삽으로 파내, 새 화단에 옮겨 심었다. 


앞에 보이는 요 녀석이 허락 없이 앞마당에 뿌리를 내린 녀석이다.


그렇게 자잘한 것들을 모으다 보니, 어느새 화단으로 꾸민 곳이 가득 찼다. 저 중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일단 모아 놓고 나니 뿌듯했다. 중간중간 유튜브와 구글을 통해서 블랙베리에 대해서 공부한 결과, 블랙베리는 가지를 꺾어서 꽂는 것만으로는 그냥 번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뿌리 성장 호르몬을 사용하고, 화분에 꽂고, 계속 수분을 공급하고, 굉장히 손이 가는 절차를 사용해야 한다.


반면에 더 쉬운 방법이 있었다. 블랙베리는 원래 기어 다니면서 번식하는 종류의 식물이다. 따라서 그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오히려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놀라운 것은, 블랙베리는 한쪽으로 자라는 식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위아래가 없다. 블루베리의 꼭대기를 땅바닥으로 끌어내려서 거꾸로 꽂아놓으면 놀랍게도 거기서 뿌리가 나온다는 사실! 물론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은 아니고, 한 한 달 정도 뿌리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 윗부분을 잘라서 옮겨 심으면 된단다. 신기하여라!


왼쪽으로 보이는 좁은 창고옆 골목 / 뿌리는 저만치 멀리 있고, 나는 가지 끝을 이렇게 거꾸로 꽂아두었다.


그래서 다음날 나는 우리 집 창고와 옆집 담장 사이를 다시 들여다봤다. 그곳에는 블랙베리 넝쿨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워낙 좁아서 들어가기도 나쁠뿐더러, 그곳에서 새로 올라오는 싹은 지난번에 뽑은 거 하나가 전부였다. 그리고 길게 뻗어있는 줄기의 끝쪽은 내가 파낼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길게 늘어진 가지의 끝을 찾아 모아서 땅에 파묻고, 그곳에 물을 넉넉히 주었다. 이곳들은 조바심 갖지 말고, 한 한 달 걸린다 생각하고 묻어둘 생각이다. 


아래 왼쪽 사진은 어제 깊은 구석에서 찾아낸 싱싱한 새순! 색이 너무 예쁘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잡초로 취급되는 야생 블랙베리는 우리 집 마당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며칠 동안 공부도 참 많이 했고, 평생 몰랐던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블랙베리 뿌리는 다년생이지만 줄기는 2년생이어서, 한 해는 성장하고 그다음 해에는 열매를 맺는다 한다. 그러고 나면 할 일을 다 했기에 그 줄기는 말라죽는단다. 그리고 생명력이 워낙 강해서 순식간에 온 동네를 초토화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한다. 


나에겐 너무나 새로운 세계. 누구에겐 잡초일 수 있지만, 또 누구에겐 소중한 생명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나도 누군가에겐 잡초이고, 또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이겠지? 보다 유용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잡초이기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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