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슈에뜨 La Chouette Apr 29. 2020

업사이클링 앞치마 두 벌 완성

낡은 청바지가 앞치마로 변신했다, 그것도 두 개로...

한창 가드닝에 빠져있는 요즘이다. 뭐든 하나에 꽂히면 한참 정신을 못 차리고 몰두하는 성격이다 보니 눈만 뜨면 마당으로 나간다. 지난번 블랙베리 다루다가 가시에 몇 번 찔려 파상풍 걱정을 하게 되면서 원예용 장갑도 장만했으니, 밖에 나가서 흙 만지는 것이 더욱 편안해져서 좋다. 다만, 밖에 나가서 일하다 보면 전화를 놓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집에서 입는 바지에는 주머니가 없고, 뒤춤에 억지로 끼워 넣고 다니면 자꾸 떨어뜨리니 난감하다. 흠! 옷마다 주머니를 달 수도 없고...라고 생각하다 보니, 원예용 앞치마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직 바느질 쟁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그쪽은 소원해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하나 만들겠다는 생각이 바로 드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나는 바느질 쟁이가 맞는 것 같다.


문제는 내게 이제 더 이상 넘치는 원단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정리했지만 상당히 남아있는 원단들도 모두 한국에 있기 때문에 새로 구입하지 않으면 뭔가를 만들 수가 없다. 캐나다가 천 값이 비싼 것도 한몫을 하거니와 요즘 코로나 사태로 문 열은 가게가 별로 없어서 천을 사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어차피 작업용 앞치마는 튼실한 원단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청바지가 딱 좋겠다 싶었다. 


작년 여름 어느 날, 남편이 버리겠다고 꺼낸 청바지를 냉큼 챙겨놓은 것이 생각났다. 많이 낡아서 여기저기 해진 청바지였지만, 이런 원단을 버린다는 것은 나는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은 방에 챙겨두고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음.... 어떤 모양으로 만들까? 바지를 펼쳐놓고 잠시 고민했다. 이 큼직한 바지라면 앞치마는 걱정 없이 나올 텐데, 최대한 손이 안 가는 방식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어깨걸이까지 않는 좀 야무진 것을 만들 것인가?

제일 쉽고 손 안 가는 방식은, 다리를 제외한 엉덩이 부분까지 잘라서, 뒷주머니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거는 뭐 일도 거의 없다. 뒷주머니가 손상되지 않도록 뒷부분을 넉넉하게 잘라주고, 앞쪽도 그에 맞춰서 잘라주면 된다. 그래서 일단 가위를 댔다. 


우선 뒷주머니에서 넉넉히 4~5cm 내려온 곳을 잘라준다. 앞쪽도 마찬가지로 잘라주는데, 앞 주머니 아래쪽이 잘리지 않게 주의해서 잘라준다. 앞 뒤 한꺼번에 자르고 싶겠지만, 양면을 다 잘 활용하려면 앞 뒤판을 살피면서 따로 자르는 것이 안전하다. 

튀어나온 부분에 가위집 / 겹쳐서 평평하게 놓는다 / 그 상태로 핀을 꽂은 후 고정 바느질 (앞 뒤 똑같이 해준다)


입체적으로 불쑥 튀어나오는 부분은 가위집을 넣어서 얌전하게 겹쳐서 앞 뒤 모두 치마 모양으로 만들어주었다. 앞 지퍼 아래쪽이 많이 해져서 뒤에 원단을 놓고 함께 박아서 구멍을 해결해줬다. 이대로 사용하면 미니스커트처럼 입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에겐 너무나 커서 입어보자마자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래서 남편에게 입혀보니 딱 맞는다. 당연하지! 원래 남편 바지니까! 하지만, 남자인지라 미니스커트는 싫단다.  그래서 앞치마 모양으로 잘라줬다. 벨트 부분만 살리고, 바지 앞판을 모두 도려내고, 뒤를 앞으로 돌려서 입으면 그대로 완성이다. 옆면은 봉제선을 그대로 살려둬서 시접 처리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였고, 벨트 고리는 필요할지도 모르니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매달아두었다.

벨트 고리는 차후 사용을 위해서 미리 떼어주고, 옆면은 시접 부분을 살려준다.


완성! 밑단만 드르륵 박아서 건네줬더니,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다고 하던 남편이, 막상 입고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너무나 편하다고 좋아한다. 끈을 묶을 필요도 없이 단추만 채우면 되고, 원래 자기 옷이니 따로 맞출 필요도 없다. 오늘 몇 가지 요리한다고 바빴는데, 주머니 활용해서 사용하니 참 편했단다.



이게 나에게 사이즈가 맞지 않았지만, 굳이 내가 입자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남편의 바지를 활용하는 분들은 추가로 단추를 하나 더 달아서 몸에 맞추면 된다. 청바지 단추는 꿰맨 것이 아니고 징을 박듯이 박아 넣은 것이어서 떼어서 다시 달 수는 없지만, 추가의 단추는 어디든 쉽게 달 수 있으므로, 집에 있는 큼직한 단추를 활용하면 된다.


왼쪽: 단추를 추가로 달아서 사이즈 줄이는 법 / 오른쪽: 벨트고리를 아래쪽으로 늘어뜨려서 창고 열쇠를 달아줌


이 정도는 바느질 솜씨가 전혀 없는 사람도 충분히 만들어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저 가위질만 잘하면 된다. 밑단도 원래는 두 번 접어서 박아야 하지만 집의 봉틀이가 그리 세지 않아서 그냥 한 번만 접어서 대신 두 번 박아줬다. 외출복도 아니고, 자주 빨아 사용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마저도 재봉질이 어렵다면, 반듯하게 잘라서 아래쪽 올을 살짝 풀어주고 사용해도 무관하리라 보인다.




그렇게 쉬운 앞치마 제작은 끝나고, 내 거는 그래서 결국은 바지의 다리 부분을 사용해서 본격적으로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이거는 자세히 설명을 써봐야 어차피 바느질 잘하는 사람들이나 따라 할 것이고, 또한, 잘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을 보지 않고 완성품만 봐도 대충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간단히 정리만 해봤다.


일단 잘라둔 바지 아랫단은 두쪽이니 원단은 넉넉한 편이었다. 원통 모양의 다리 부분은 갈라서 납작하게 만들어야 재단할 수 있기에 가랑이 안쪽의 곡선 부분을 잘라주었다. 


왼쪽 사진을 보면 오른편에 곡선이 지는 부분이 보인다. 저 쪽을 잘라줘야만 평평한 한 장의 원단을 갖게 된다. 


그리고 청바지 같은 작업을 할 때에는 웬만하면 시접을 뜯는라 애쓰지 말고, 그냥 편하게 필요한 부분을 잘라서 사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워낙 바느질이 튼튼해서 뜯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그러게 뜯어낸 부분을 그냥 잘라서 버리게 되면 참 맥이 빠진다. 지치지 않게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라낸 가장자리의 시접은 예쁘게 닳았으므로 사용처가 있을 것 같아서 잘라두었다. 바느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바지단 시접 처리되어있는 부분을 앞치마 가슴 부분으로 올려놓고, 반을 접어서, 부엌에서 사용하는 내 앞치마를 대고 대충 본을 떴다. 물론 사진에서 보듯이 폭이 많이 모자란다. 자라 보면 앞치마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것이 보일 것이다. 원래는 저 부분을 일자가 되게 반듯이 잘라줘야겠지만, 원래 치마들도 아래로 내려가면서 폭이 넓어지면 입기 편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냥 그 부분을 그대로 살려두었고, 나머지 바지자락 한쪽을 뜯어서 역시 직선으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이어서 A라인이 되도록 앞치마를 제작하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시접선이 앞선 중심에 오지도 않고, 뒷면도 양쪽이 폭이 다르게 되었지만 크게 상관없다. 어차피 집에서 입는 앞치마니까. 그렇게 대충 앞치마 모양을 만든 후에 남는 원단을 이용해서 어깨끈을 만들었다. 그런데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끈의 두께가 짝짝이가 되어버렸네. 그래도 뭐 작업복인데, 절대 다시 만들지 않을 거야! 그러면서 대충 앞치마에 붙여버렸다. 흠, 나름 나쁘지 않네. 어깨 끈을 X자 모양으로 했더니 뒤를 묶지 않아도 몸에 잘 붙어있는다. 


이제 주머니를 어떻게 만들까 생각해보니, 새로이 주머니를 만드는 것보다, 첫 번째 앞치마 만들면서 남은, 바지 앞부분 떼어낸 것을 그대로 붙이면 되겠다 싶었다. 모양을 살짝 다듬어주고, 시접을 안쪽으로 빙 둘러 접어준 다음, 그대로 앞치마 앞에 대 봤더니 딱 적당했다. 


그리고 끈에도 이왕이면 포인트가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 남편 더러 혹시 집에 단추 모아둔 거 없냐고 물었다. 깔끔쟁이 우리 남편, 뭐든 안 쓰는 것은 싹 쓸어 버리기 잘하는 사람이라서, 예전에 모아둔 병이 있다고 말했지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주머니 작업하는 동안 계속 들락거리며 찾던데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단추 통. 틀림없이 처분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우연히 오래된 박스를 하나 열었는데, 그 안에서 골동품이 나왔다!



우와! 아버님의 군복에 달려있던 황동 단추! 70년도 더 된 이 단추는 영국에서 제작되었으며, CANADA라는 글자가 선명히 찍혀있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캐나다 왕실 해군 Royal Canadian Navy_HMCS(Her Majesty's Canadian Ship) 군복에 달려있던 것이라고 했다. 아버님이 남편 젊을 때, 입으라고 군복 꺼내 주시면서도 이 단추는 따로 떼어서 보관하셨단다.  만감이 교차하는 남편의 얼굴... "그런데 내가 이걸 써도 돼?"라고 물었더니, 아버님이 좋아하실 거라고 쓰라고 꺼내 주었다. 그러더니, 빛이 바래서 닦아야 한다고 전용 세정제를 꺼낸다. 나는 다 만들고 나서 마지막에 붙일 거라고 하며 재봉틀 앞으로 돌아왔는데, 남편은 잠시 후 반짝반짝하게 닦인 두 개의 단추를 들고 와서 내 손에 건네주었다. 


주머니 다 달고, 단추까지 달고나니 나름 정신없지만 그대로의 매력이 있다. 앞판을 그대로 붙였더니, 거기 달린 주머니와 더불어 앞판 자체가 주머니 노릇을 해줘서 주머니가 많아서 좋았다. 신이 나서 입고 베란다 화분 보러 나갔더니 이웃집 소닐라가, 자기 밭에 크게 난 블랙베리 뽑았는데 심을 거냐고 부르길래 얼른 내려갔다. 제법 많이 자라서 흐뭇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받아 들고 얼른 밭에 심는데,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무거우니 축 늘어진다. 뭔가 손을 봐야겠다 싶어서 다시 올라왔다. 나는 주머니 윗부분을 본 판에 고정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허리 뒷부분에 잠금장치를 해주면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다 하기로 했다. 


뒷부분은 단추로 고정하면 쉬울 거 같은데, 등에다가 멋진 황동 단추를 하나 더 달긴 그렇고, 더구나 튀어나온 단추는 어디 기대앉으면 불편할 것이다. 결국 마땅한 단추가 없으니 끈으로 묶기로 했다. 처음에 바지 자를 때, 가랑이 안쪽의 시접 두꺼운 부분을 따로 잘라두었는데, 그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끈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벨트고리 잘라둔 것 하나를 주머니 가운데 위쪽에 에 붙여주었다. 그래서 더 이상 주머니가 앞으로 쏟아지지 않는다.



끈을 뒤에서 묶는 것보다는 앞에서 묶는 것이 더 안정적으로 되기에, 안쪽으로 들어간 자락을 옆선으로 뺄 수 있게 구멍을 내줘서 통과시켰다. 이렇게 하면 편하게 앞으로 묶을 수 있다.



이제 진짜 완성! 바지 하나로 커플룩 앞치마가 탄생했다. 단순하지만 부담 없는 버전의 남편 것과, 점퍼스커트 형태로 해서 옷도 제대로 보호해주는 스타일의 내 것까지 두벌이 생긴 것이다. 오랜만에 바느질하느라 종일 분주했는데, 하루를 소모한 보람이 있다. 게다가 대충 잘라서 만든 앞치마에 앤틱 단추로 포인트! 이런 소품이 사람을 참 사랑받는 느낌이 들게 해주는 것 같다. 새 원단, 새 단추 등의 재료로 만든 것보다 더 오래 사랑하며 사용할 수 있으리라. 이제 원예 준비 진짜 완료!



매거진의 이전글 잡초를 키우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