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한다는 데에 의의를 다졌던 혈기
흔히 주변에서 내 대표 키워드는 사랑이라고 한다. 맞다.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늘 옥시토신을 뿜어내는 것 같은 성격이어서 오지랖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내가 가진 또 다른 키워드를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무모함이라고 말하리라.
내 무모한 역사를 일컫는다면 한 없이 떠들게 되겠지만, 그중에 1위는 단연 30년 전 프랑스 유학이다. 당시에는 여자가 밖으로 혼자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흠이 되던 시절이었다. 가정형편은 넉넉하지 않았고 유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고 싶어서 교수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했더니, "자네는 장녀이고 밑으로 동생이 둘이나 있는데..."라는 답변을 받았다. 어찌 그리 철이 없느냐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도 아니었는데, 집안 여식은 희생을 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당연시되었던 시대였던 것 같다. 뒤돌아 나오면서 내 앞에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로 가득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결국은 교육대학원에 들어갔다. 야간이었기에 약간의 과외와 근로장학생을 하면서 학비를 해결했고, 프랑스 음성학을 전공하면서, 발음 교정분야로 논문을 썼다. 마지막 두 학기 동안은 고등학교에서 시간강사도 하면서 그렇게 자리를 잡고 정착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꼭 프랑스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결국 고민 끝에 대학원 박사 준비과정에 원서를 넣었고 합격 통지를 받았다. 가진 게 없으면 꿈을 꾸면 안 되는 것일까?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한탄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답답했다. 성공하지 못할 확률이 훨씬 더 높은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만일 이대로 포기한다면 나는 평생을 돌이켜 후회하며, "그때 내가 유학을 갔다면 크게 성공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살아갈 것이 분명했다. 설사 실패하고 돌아오게 되더라도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오고 싶었다.
원망하고 후회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무모하지만 과감하게 유학을 준비했다. 부모님의 반대는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대사관에서 비자까지 받은 후에서야 유학을 선포했고, 절대 손 벌리는 일이 없을 테니 가는 것만 허락해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렇다고 넉넉한 돈이 마련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짬짬이 강사와 과외를 해서 모은 돈 200만 원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도 어찌 그 돈으로 유학 갈 생각을 했던지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비행기에 탔는데 옆좌석에 앉은 유학생이 한참을 펑펑 울었다. 나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비장한 마음뿐이었다. 그 알량한 돈은 파리에 가서 집을 구하고 나니 보증금과 월세로 거의 다 나가고 말았다. 당장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내가 집을 구한 지역은 체류증이 잘 나오지 않는 곳으로 유명했고, 체류증이 없이는 아무 곳에서도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과외로 가르쳤던 아이가 유학을 오면서 주말에 그 아이 봐주며 돈을 좀 벌기도 했지만, 턱없이 높은 프랑스 생활비는 내게 무리였다.
돈이 없는 유학생에게 파리는 아름다운 문화의 도시가 아니었다. 전철역 앞에 앉아서 손을 내미는 걸인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저 옆에 앉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체류증은 6개월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고, 더욱 싼 집으로 이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감당하지 못해서 결국은 수업을 그만두고, 한국계 회사에서 풀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한국계 회사는 현금으로 돈을 지급했고 체류증 없이 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수업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학비가 고작 10만 원 밖에 안 하던 프랑스에서는 학비가 문제가 아니라 먹고살아야 하는 생존의 문제가 있었으며, 내가 하고 싶던 다양한 공부는 고사하고 하루하루 연명하기에 바빴던 시절이었다. 비장한 도전 정신으로 떠난 나의 유학기는 결국 그렇게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나는 처음부터 부실한 꿈을 꿨는지도 모른다. "죽어도 성공하고야 말겠어!" 하는 마음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가 봐서 아니면 그냥 돌아오더라도 꼭 갈 거야."라는 어설픈 마음으로 갔기에 성공을 못했던 것일까?
하지만 살면서 꼭 모든 일에 성공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해야만 하는 도전만을 한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은 너무나 클 것이다. 다시 일어서기 힘들 수도 있다. 그리고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아니면, 성공하지 못할 만한 것은 아예 도전하려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무모함, 비장한 마음, 최선을 다하는 과정, 그리고 불가능한 상황에서 포기도 할 수 있는 용기가 모든 시작과 도전을 가능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했던 수많은 실패가 결국 나를 만들었고, 나중에 다른 것들을 성공할 수 있는 씨앗이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결국 그 유학이 내 인생의 성공을 위한 한 걸음이었다고 말이다.